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졸업 후 도쿄외국어대학교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며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환상의 빛』, 『수상한 신호등』, 『케첩맨』, 『괴물원』, 『나는 달걀입니다』 등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이 세상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는 길인지, 그 가치관 자체가 쉽게 뒤집힙니다. 애초에 인류가 너무 많은 거 아니냐, 차라리 인구가 줄어드는 게 지구를 위하는 일 아니냐는 식으 로 '세상과 타인을 위해서'라는 개념 자체를 의심하는 목소리조차 하나의 정답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니까요. 이렇게 모든 사상이 쉽게 반전될 수 있다면, 역설적으로 어 떤 한 가지를 끝까
즉, 어느 각도에서 봐도 틀림없이 본질적으로 옳은 답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어느 지점에서는 '이 시야에서, 어느 정도의 확률로, 틀릴 수도 있다'라는 각오를 다지고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가능한 한 본질적이고 싶은 나머지, 달리 말하면 누구에게도 공격받고 싶지 않 아서 시야를 넓히려고 시점을 자꾸 뒤로 빼다 보면, 어느 샌가 누구의 모습
"뭐랄까, 생명체로서 약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커뮤니케이션 같거든요. 서로 다 힘든 일이 있고,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는 게 기본값인 거죠. 매일 바쁘고 정말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일이다보니, 나 자신과 예전보다 훨씬 더 마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어서 그런지 상대방도 힘든 점이 많겠구나, 하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돼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로 도울 수 있고, 눈에
-떠오른 사람이 아르바이트 동료인 유리였다. 배운 게 많지 않고, 국제적인 이슈는 커녕 일본 뉴스조차 하나도 모르며, 외국인 손님에게 내가 간단한 영어로 응대만 해도 대단하다며 침이 마르게 칭찬해주는 사람. 내가 연락하는 사람 중 가장 시야가 좁을 것 같은 사람. 이곳에 오면 절대로 상처받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왜나하면 은근 얕보고 있으니까. 시야의 폭에서는 절대 나
머릿속만 분주할 뿐, 현실에서는 아무런 행동도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쌓이지 않는다. 뭔가에 상처받거나, 자기혐오에 빠지거나, 속을 끓이거나, 초조해하기를 단편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사 실은 유학생 애들처럼 해외로 뛰쳐나가는 행동력을 갖고 싶은데.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계정세나 사회 문제를 똑바로 마주하며 나만의 의견을 품고 살아가고 싶은데.
당시에는 유행하는 것들을 제 것인 양 손에 쥐고 휘두르는 그 아이들이 무서웠다. 주체성 없는 풍향계 같은 가벼움은, 언젠가 나를 혐오의 대상으로 겨냥할지 모른다는 공포와 표리일체였다 그래. 풍향계 같은 거다. 최첨단 유행을 포착하는 심미안이 있는 게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을 파악해서 그 시점의 다수파에 속해 있지 않으면 불안해할 뿐인 풍향계.그러니 역시 '덕질'은 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