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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I 9
노트 II 74 노트 III 132 부기 200 작품 해설 231 작가 연보 237 |
Kobo Abe,あべ こうぼう,安部 公房,본명 : 아베 기미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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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아내가 실종된 지도 벌써 사흘째다. 소란을 피우지 말라는 건 무리다. 방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테이프를 처음부터 재생해 봤다. 두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다 듣고 나서 다시 거의 한 시간 동안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예상은 배반당했다. 녹음본 어디에서도 아내인 듯한 사람의 그림자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p.14 어느 여름날 아침, 아무도 부른 기억이 없는데 갑자기 구급차가 와서 남자의 아내를 데려갔다. 정말이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사건이었다. 불의의 사이렌 소리에 깨기 전까지 부부는 둘 다 깊이 잠들어 있었기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 애당초 당사자인 아내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자각 증상 같은 걸 단 하나도 호소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들것을 들고 들어온 두 구급대원은 수면 부족 때문인지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위급한 환자가 미리 준비하고 있을 리 없지 않으냐는 태도로 일관했다. ---p.15 부원장 : 나라면 그렇게 망설이지 않겠네. 구급차라는 건, 마음만 먹으면 영구차 못지않은 위장이잖나. 범죄에 안성맞춤인 소도구지. 달리는 밀실 안에,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젊은 여자와 마스크를 쓴 힘센 남자 세 명이라니. 이게 영화라면, 다음 장면은 끔찍할 걸세. 자네 설명대로라면 부인이 입고 있었던 건 얇은 크레이프 같은 재질인 모양인데, 그건 통기성이 좋아서 달라붙지 않는 대신, 축 늘어져서 앞섶이 쉽게 벌어지지 않나? 남자 :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부원장 : 농담이야. 나는 그냥 현실주의자라서 말이지, 너무나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거든. ---p.19 환자는 (여기서 남자들에게 호감을 사는, 이라고 말하려다 정정하며) 사람들에게 호감을 살 만한 인상의 몸집이 작은 여성입니다. 동그란 얼굴에 흰 피부, 크고 둥근 눈에, 얇은 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약간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복장은 유카타(얇은 무명 또는 화학섬유 소재, 분홍빛 바탕에 검은 튤립 꽃무늬.), 허리띠(검은색과 초록색이 섞여 짜인 끈.), 무명 팬티(오렌지색 비키니형.)뿐이며, 그 외의 소지품은 없었습니다. 구급대의 전표에 따르면 나이는 31세로 확인되었으나 이름과 주소는 본인의 협조를 얻지 못해 끝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p.22 어딘가에서 고양이가 울고 있다. 아니, 그것은 수백 갈래 너머 골목길을 달리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다. 드디어 착오를 알아채고 아내를 돌려보내려고 온 걸까. 창문을 열어 보았다. 햇볕을 가리기 위한 물결 모양의 함석에 걸린 거미줄이 밤이슬에 젖어 반짝이고 있다. 사이렌 소리가 끊겼다. 보아하니 발정 난 기계 고양이가 새로운 상대를 만난 모양이다. 어차피 인적이 끊긴 이 시간, 거리 전체는 발정 난 기계 고양이들의 소굴이 돼 버리는 것이다. ---p.24 묘한 일을 떠안고 말았다. 아무리 나 자신을 미행해도, 결국 보이는 건 늘 자신의 등뿐이지 않은가. 내가 확인하고 싶은 건 그 너머다. 이를테면 이 당직 의사의 구두 소리가 끼어들기 전까지는 그 존재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장소……. 그 이후, 나와 아내 사이에 끝없이 펼쳐지는 장소……. 누구나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누구의 것도 아닌 지면……. 용암대처럼 격정의 흔적만 남기고 차갑게 굳어 버린 질투……. ---p.54 “이제 질렸어요. 나 자신과의 술래잡기 같은 이런 짓을 아무리 계속해 봐야 끝이 없잖아요. 지불 조건이 확실치 않은 거래에 응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말은 온화하면서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 몇 페이지를 주의 깊게 훑어본 뒤 손끝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알아챈 건가. 확실히 자네가 의심한 대로 이 노트는 일종의 사상 검증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검증의 목적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는 것 같네. 굳이 충성을 따진다면, 오히려 부인에 대한 자네의 자세일 거야. 부인을 얼마나 진심으로 찾고 있는가, 우선 그 점을 확인해 두지 않으면…….” ---p.75 오른쪽에 좌우로 열리는 널문이 있고, 그 너머는 기름칠 된 판자를 깐 복도였다. 적갈색 가로줄 무늬가 있는 머름 끝에 불빛이 새어 나오는 문이 하나 보였다. 노크를 해 봤으나 응답은 없다. 적당한 변명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널찍한 병실 침대 위에 한 아가씨가 드러누워 있었다. 아가씨가 베개에서 머리를 들어 시선이 마주쳤다. 돌아서려 했지만, 그녀는 반쯤 그의 방문을 예상했던 모양인지 뭔가를 묻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결국 발길을 멈추고 말았다. “아직은 힘들어요……. 부탁해요…….” ---p.117 “예를 들어 고독감이란 건 일종의 귀소 본능인 모양이야. 그리고 결국은 피부 감각이 모든 감정이나 정서의 보금자리인 셈이고. 그런데 돌아갈 그 보금자리조차 없는 거니까.” “제 책임이 아닙니다.” “그녀의 책임도 아니지. 어차피 그녀는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왜 자네가 부인을 찾으려고 이토록 애쓰고 있는데, 자신은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너무 제멋대로예요. 그건 다른 문제잖아요.” “하지만 그녀는 이해할 수 없겠지.” 말은 남은 맥주를 들이켜고, 새 병의 마개를 따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p.139 그러고 나서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의표를 찔렸다. “저와 자고 싶습니까?”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부원장 부인은 종이 롤 위 그래프의 파동을 보며 하얀 이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웃었다. “보세요, 거짓말을 했어요.” “아직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요.” “뭐라고 대답하든, 어차피 거짓말이에요.” ---p.171 구경꾼들에 섞여 재빨리 빠져나간다. 다음 모퉁이는 ‘가면여자’의 방이었다. 이름처럼 얼굴만 마스크처럼 하얗게 칠해져 있다. 그저 흰색이 아니라 진주 가루 같은 광택이 나고 질감이 두드러져서 얼굴 표정이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인기가 많은지 인파가 한층 많았다. “저 사람, 부인 아니에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인정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게다가 아직 다른 방이 하나 더 남았다. 빠른 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자 ‘화식조’ 방이 나왔는데, 게시판의 사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가면여자’ 방의 여자가 아내였던 것일까. 온몸의 모공에서 무수한 새끼 거미가 기어 나오는 듯한, 더는 견딜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어느 정도 각오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각오도 역시 현실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p.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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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자에 대한 사랑에는 늘 살의가 담겨 있다.”
어느 날 새벽 4시 3분, 갑자기 부부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구급차가 와서 자고 있던 남자의 아내를 강제로 싣고 어디론가 가 버린다. 남자(‘나’)는 아내를 찾아내기 위해 수소문하여, 그녀가 폐쇄적인 시스템으로 구성된 거대한 병원에 강제 입원 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는 하나의 마을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거대한 건물과 부대시설을 갖춘 그곳에 몰래 숨어 들어가 아내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구급차에 실려 왔던 아내가 병원에 정식으로 입원했는지, 혹은 어딘가에 강제로 잡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남자는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당직 의사를 미행하다가 병원 측에 발각되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휘말리게 된다. 이 거대한 폐쇄병동은 이른바 ‘인간관계 신경증’을 앓다가 발기 부전이 된 부원장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데, 그는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하반신을 말[馬]로 바꿔 버린 기이한 인물이다. ‘말 인간’인 부원장은 ‘나’에게 아내의 흔적을 찾으려면, ‘나’ 자신의 소리를 몰래 녹음한 도청 테이프를 녹취해야 한다는 임무를 맡긴다. 이 병원은 수많은 도청 장치들을 통해서 환자들이 성적 일탈을 위해 ‘밀회’하는 소리를 포르노 테이프로 녹음하여 이를 치료라는 목적으로 유통하고 있다. 엉겁결에 부원장이 떠맡긴 임무를 수행하게 된 남자는 집착이 강하고 괴이한 성격을 지닌 부원장의 여비서, 폭력적인 경비 주임 등과의 조우를 거친 끝에 뼈가 녹아내리는 골용해증이라는 기이한 병을 앓고 있는 소녀를 만난다. 소녀에게서 묘한 연민을 느낀 그는 아내를 찾는 동시에 소녀를 병원에서 탈출시키고자 한다. 곧 이 병원의 가장 큰 이벤트인, 의사와 간호사에서부터 환자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전야제 연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 연회에서는 이른바 오르가슴 콩쿠르가 개최되는데, 참가자 중엔 남자의 아내일지도 모를 ‘가면여자’가 유력한 우승 후보로 출전하게 된다. 과연 남자는 전야제에서 아내를 찾을 수 있을까. ■ 인간 실존의 의미를 뒤흔드는 초현실적인 세계로의 초대 작가인 아베 코보는 191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성장기를 만주에서 살았고 일본의 패망 이후 도쿄로 돌아온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도쿄 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했지만, 그는 의학보다는 문학에 이끌려 의사의 길을 단념했다. 1947년 아방가르드와 초현실주의 사조에 매료된 그는 ‘세기의 모임’이라는 아방가르드 문학 동인을 결성했고,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열성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나갔다. 1951년 「벽─S. 카르마 씨의 범죄」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그는 “1950년대 일본 풍토 속에서 당연히 출현하지 않으면 안 될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고, 1962년 『모래의 여자』를 출간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급부상했다. 『모래의 여자』는 끝없이 솟아나는 모래 구덩이 속에 세워진 집이라는 허구적인 설정에, 사막과도 같은 만주에서 살았던 자신의 경험과 치밀한 상상력을 더해 모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물들을 감각적으로 그려 냈다. ‘시시포스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서스펜스와 철학적 깊이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는 독자들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일본 전후 문학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한 그는 그 후로도 『밀회』, 『불타버린 지도』, 『상자 인간』, 『타인의 얼굴』 등 심도 있는 실존주의적 작품들을 발표하여 ‘일본의 카프카’로 불리게 되었다. 특히 근미래적이고 초현실적이며 기괴한 스타일과 구조를 지닌 문제적 소설 『밀회』는 전후의 성장기에 들어선 현대 일본 사회의 이면 혹은 발밑의 지옥으로 향하는 일종의 ‘여행 안내서’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베 코보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지옥으로 가는 여행 안내서를 써 봤다. 특별한 장비는 필요치 않다. 다만 입구가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잘 따라가야 한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그 길은 당신에게 익숙한 길과 똑같을 것이다. 지상에서는 사랑과 살의라는 두 개의 가지로 나뉘었던 것이 지옥에서는 하나의 구근으로 녹아 있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혼란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 기계적인 일상을 깨부수는 실험 정신, 체제와 시스템에 대한 근원적 질문 아베 코보는 전쟁에 참전하지는 않았으나 일본의 패망을 직접 경험한 젊은 세대로, 본격적인 창작 궤도에 올라선 이후엔 경제 성장기에 들어선 일본 사회와 문단에 강렬한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그가 일본의 카프카로 불리는 이유는 현대적인 삶을 지탱하는 각종 장치들을 일순간 제거하고 낯설고 초현실적인 환경에 인물들을 몰아넣음으로써 그들을 무의식과 악몽, 원초적 욕망과 공포의 여행길에 오르게 한다는 점에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밀회』, 『모래의 여자』, 『불타버린 지도』, 『타인의 얼굴』은 모두 누군가(특히 주인공의 아내 혹은 가족)의 실종으로 시작되고, 실종자를 찾기 위한 추적의 과정에서 인물은 불가해한 세계로 발을 들인다.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이형(異形)의 인물들과 공간은 주인공뿐 아니라 독자까지도 끝없는 미로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초현실적인 세계의 끝에 기다리는 것은 정확하고 깔끔한 결말이 아니다. 단순히 우화로도, 미스터리로도 정의할 수 없는 이 ‘실종’ 시리즈는 현대인에게서 시스템과 체제를 제거했을 때 본연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상상하게 하는 실험의 여정이다. 일본 본토가 아닌 중국 펑텐에서 일본의 패망을 접하며 살던 집을 빼앗기고 거리를 전전하며 무정부 상태를 경험한 아베 코보는 “국가나 향토에 귀속되지 않은 상황에 놓인 인간 존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경험은 그의 문학 속에서 겉으로 ‘정상적’이며 멀쩡해 보이는 안온한 일상을 소거하고, 인간관계가 본질적으로 불러오는 폭력과 지배, 무의식적 순응과 욕망의 구조를 소환한다. 이런 실험 정신이 이미 60여 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아베 코보의 문학이 당대에 불러왔을 충격을 가늠할 수 있다. 이 같은 ‘실종→탐험→혼돈’의 도식은 이후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찾는 모험 3부작’ 같은 비교적 최근의 일본 문학에서도 그 영향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에로티시즘과 강박, 지배와 감시로 이뤄진 초현실 세계로의 초대장이자 불친절한 여행 안내서인 『밀회』는 6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은 지금도 독자를 실존적 낯섦 속으로 던져 넣고 끝없이 헤매게 하는 매혹적인 아방가르드의 진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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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코보는 능수능란한 스타일리스트이다. - 데이비드 미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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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와 카프카에 비견할 작가. 아베 코보는 페이지마다 예기치 못한 충격을 빚어낸다. 독자는 그저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다. -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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