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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1
2부 181 3부 315 작품 해설 4 93 작가 연보 5 18 |
Richard Y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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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그냥 형편 되는 대로 지내면 안 되었나? 진지하고, 니코틴에 찌든, 장폴 사르트르 같은 사내로서 그냥 진지하고, 니코틴에 찌든 장폴 사르트르 같은 여자로 만족하는 게 간단하면서도 합리적이지 않았나?
--- p.44 이 집이라면 가능해 보였다. 점점 무질서해지고 있는 자신들의 삶도 정리되면서 이 방들 안에서, 그리고 이 나무들 사이에서 안정을 찾을 수도 있을 듯했다. 시간이 걸린들 어떠랴? 이렇게 넓고, 환하고, 깔끔하고, 조용한 집에서 무서울 게 뭐가 있겠는가? --- p.55 그게 바로 문제였다. “미안해.”라고 말해야 할 텐데, 그게 싫었다. 세상천지에서 제일 하기 싫은 것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었다. 레다를 겁탈했을 때 제우스 백조가 미안하다고 했던가? 독수리가 사과하는가? 사자가 사과하는가? 절대 아니다. --- p.158 “모르겠어요? 그게 이 계획의 핵심이란 걸 모르겠어요? 당신은 칠 년 전에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는 거죠. 당신 자신을 찾는 거예요.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생각하는 거죠. 시간을 갖는 거예요. 당신은 평생 처음으로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겠죠. 그리고 그걸 찾아냈을 때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자유와 시간적 여유도 갖게 되는 거란 말이에요.” --- p.169 난 생각해 봤죠. 도대체 어쩌다가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 돼 버린 거지? 어쩌다 우리는 이런 이상한 꿈 같은 세상에, 도널슨네며, 크레이머네며, 윈게이트네가 사는 세상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 당신 인생을 망친 것도 모자라서 이 모든 사태의 전말을 완전히 뒤집어서 당신이 내 인생을 망쳐 놓은 것처럼 보이게 한 거예요. 그래야 내가 희생자가 되니까요. 정말 못된 짓 아닌가요? 하지만 사실이에요! 사실이라니까요!” --- pp.172-173 에이프릴은 남편을 보고 미소 지었다. 구경꾼도, 손님도, 친구도 아닌 모습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셉은 부러움에 가슴이 뒤집힐 것 같았다. 에이프릴은 몸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 “우리 유럽으로 가요. 파리로요. 아주 가는 거예요.” --- p.226 “서른일곱 번의 전기 충격 요법을 받았단 말이죠. 아시다시피 전기 충격으로 모든 감정적인 문제들을 머리에서 다 쫓아내겠다는 게 목적이었겠죠. 하지만 저의 경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어요. 그 빌어먹을 수학이란 걸 다 쫓아낸 겁니다. 완전히 텅 비었어요.” --- p.287 집은 삶이라는 어렵고 섬세한 과정이 진행되는 곳이기에 때로는 행복이라는 놀라운 조화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비극에 가까운 혼란이 발생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이 우스꽝스러운 촌극 역시 발생하는(“다 끝났어요, 여러분!”) 그런 곳이다. 집은 또한, 여름 한 철을 미친 듯 정신없이 보내다가도,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고 외롭게 느끼게 될 수도 있고, 가끔은 상황이 암울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이 다 정상을 되찾게 되는 그런 곳일 수도 있었다. --- p.404 “어이, 그래도 다행인 게 하나 있기는 있어.” 그는 부엌문을 나서기 직전 돌아서며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킬킬대기 시작했다. 그가 담뱃진으로 노랗게 변한 길쭉한 검지를 뻗어 봉긋하게 살짝 부풀어 오른 에이프릴의 배를 가리키며 한마디를 더하자 기빙스 부인은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내가 다행으로 생각하는 게 뭔지 아시겠소? 내가 저 아이가 아니란 겁니다.” --- p.424 프랭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당신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 p.455 그동안 그녀가 늘 알고 있던 사실, 부모님도, 클레어 숙모도, 프랭크도, 그 누구도 그녀에게 가르쳐 줄 필요가 없었던 사실, 정말 절대적으로 순수한 동기에서 해야만 하는 일, 진심으로 원해서 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그런 일은 언제나 오직 혼자서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 p.456 지금까지는 전부 악몽이었어. 다음 모퉁이를 돌면 불을 환하게 밝힌 우리 집을 볼 수 있을 거야.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 그녀가 옷을 다리고 있거나 소파에 누워 잡지를 뒤적이고 있을 거야.(“무슨 일이에요, 프랭크? 바지가 흙투성이가 됐잖아요! 물론, 난 아무 문제 없죠…….”) --- p.4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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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는 있고 미국에는 없는 것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들, 자신과 타인에게 냉소적인 이들 대개 ‘음모’를 폭로하는 소설에서는 전지적 삼인칭 시점의 화자가 줄거리를 중립적인 목소리로 전달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화자는 주인공까지 포함한 등장인물 모두에 대해 상당히 냉소적인데 이 점이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이자 가치다. 『레볼루셔너러 로드』는 두 주인공의 경우만 국한해서 본다면 일종의 성장 실패기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성장을 방해하는 세력 혹은 성장을 실패하게 만드는 힘은 흔히 사회 자체 혹은 사회적, 역사적 정황이다. 이런 식의 전형적인 줄거리에서는 주인공이 이들 적대적인 세력에 맞서고, 투쟁하는 결과가 전체의 결말을 결정한다. 영웅적으로 이겨 내거나, 처참하게 실패하거나, 아니면 ‘진정한 자아를 찾아서’ 탈출하거나. 그런 전형적인 이야기에서라면 화자는, 중립적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대개 주인공에 대해 우호적이다. 그래야 독자들이 주인공의 투쟁에 더 관심을 기울일 테니까. 그런데 이 소설은 좀 다르다. 이 책의 화자는 줄거리의 전 단계에 걸쳐 회의적이다. 말하자면 등장인물과 그들의 배경 혹은 적대 세력이 되는 사회 자체 모두에 대해 냉소적인 셈이다. 프랭크와 에이프릴 두 주인공 자신들도 냉소적이다. 두 사람은 교외 신흥 주택 지역에서 가장은 벌고 아내는 전업 주부인 핵가족을 이루어 전형적인 젊은 중산층 부부로 살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현재의 삶을 부정한다. 뉴욕시에서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과거의 보헤미안적인 삶을 떠나 현재의 ‘중산층 지옥’에 떨어진 것은 ‘두 아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다. 자신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다. 그들의 눈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 ‘평범함을 강요하는’ ‘절망적인 공허’ 속 중산층의 삶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찬양하는 얼빠진 인간들이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그나마 자주 어울리는 가족은 셉과 밀리 부부다. 그렇지만 주인공 부부는 이들도 은근히 무시한다. 중산층 삶에 대한 혐오의 정도가 자신들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실에 대해 냉소적인 이 부부에게는 대안이 없다. ‘절망적인 공허’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에게는 이 폐허를 보람찬 삶의 현장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없다. 이런 그들에게 유일한 해결책은 이곳을 ‘뜨는’ 것이다. 미국은 유럽의 식민지로 출발했다. ‘유럽의 대안’을 건설한다는 거창한 이념과는 별개로 미대륙 식민지 개척민들은 ‘먹고살 만’해지면 언제나 유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실제로 ‘용기 있는’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호기롭게 파리로 날아가 얻을 수 있는 것, 1950년대 미국 신흥 주택가에는 없고 유럽에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무엇일까? 정체성이다. 두 사람은 ‘진정한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발견하는 것’을 궁극적인 행복의 조건으로 간주하며, 당대 미국 중산층의 평범한 삶은 정체성의 형성을 방해하거나 적극적으로 파괴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관련해서는 현재의 인간 관계나 물질적 기반을 부정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 준다. 자신들의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조건들을 ‘자신들의 것’이 아니거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으로 자신들을 파악한다. 이 경우, 우연한 조건들을 초월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근대인 특유의 노력과 유사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런 부정 혹은 초월을 통해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인식’에 닿는 과정을 보여 주지 못한다. 주인공 부부에게서는, 실존주의식으로 말하자면, ‘진정성’이 없다. 두 사람은 당대 미국 사회의 지적 유행을 답습하고 있는 ‘가짜’에 불과하다. 1960년대 미국 문학이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안내판 ‘농지 소유의 자유민’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프랭크는 회사 조직의 기제에 종속된 임금 노동자에 불과하다. ‘사랑의 여신’이어야 할 에이프릴은 사랑에 실패하며, ‘보호자’여야 하는 셉은 그 누구도 보호하지 못하며, ‘성실하고 능숙한 일꾼’이어야 하는 밀리는 수다쟁이에 불과하다. 추하게 늙어 가는 헬렌은 이름에 제값을 하려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녀’여야 하며, 망상에 사로잡힌 존은 ‘선지자’여야 하고, 술에 찌들어 무기력해진 오드웨이는 ‘창으로 무장한 전사’여야 한다. 이처럼 예이츠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을 부여하면서 발화와 의도가 정반대인 언어적 아이러니를 사용하여 이들을 희화화한다. 게다가 예이츠는 이들을 이름값도 못 하는 인물인 듯한 이름들을 부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부모 세대에 비하면 ‘열등한’ 자식 세대로 규정한다. 프랭크의 경우, 아버지는 직업 윤리가 투철하고 성실하며 손재주가 좋은 노동자였다면, 자신은 여자들 앞에서 멋진 척하는 말솜씨만 그럴듯할 뿐 회사 조직의 허점이나 파고드는 불성실한 노동자다. 유럽을 유람하며 파티를 즐기던 유한 계급이었던 부모를 둔 에이프릴은 현재 신흥 주택 단지의 조그만 주택에서 회사원인 남편과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부모 세대보다 열등하며, 신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타락한’ 삶을 살고 있다. 이름에 적용된 아이러니와 신분상의 ‘타락’이란 이들 주제는 모두 예이츠가 1950년대의 미국을 이전보다 못한 사회로 간주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전과 비교해 떨어지는 품질의 어떤 것은 궁극의 결과라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상적이라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적어도 1950년대 미국 사회는 혁명가들이 꿈꾸었던 그런 사회는 아니다. 이 소설 이후 1960년대 미국 작가들은 미국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혁명가 ‘국부’들의 이상을 소환하며 현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반체제적’ 또는 ‘체제 저항적’인 작품들을 쏟아낸다. 예이츠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그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다만 1950년대 중산층의 삶에 깃든 어리석고 불합리한 면을 냉정하게, 그러나 연민의 정으로 그려 내는 과정에서 ‘미국의 꿈’이 구현됐다는 현재 사회가 미국을 건설할 때의 꿈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1960년대 미국 주류 문학이 나아갈 길의 방향을 어렴풋이 가리키는 안내판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