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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와 칼리니치 7
예르몰라이와 방앗간 주인의 아내 30 산딸기 물 50 군(郡 ) 의사 68 내 이웃 라질로프 85 소지주 옵샤니코프 99 리고프 131 베진 초원 150 크라시바야 메치의 카시얀 184 영지 관리인 216 영지 사무소 240 비류크 270 두 지주 284 레베쟌 299 타치야나 보리소브나와 조카 321 죽음 343 노래꾼들 364 표트르 페트로비치 카라타예프 394 밀회 421 시그로보군의 햄릿 436 체르토프하노프와 네도퓨스킨 477 체르토프하노프의 최후 508 살아 있는 유골 566 바퀴 소리가 납니다! 590 숲과 스텝 615 작품 해설 627 작가 연보 657 |
Ivan Sergeevich Turgenev,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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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 집에 있나?” 문밖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칼리니치가 산딸기 한 꾸러미를 들고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 딸기는 그가 친구인 호리를 위해 딴 것이었다. 노인은 그를 향해 기쁘게 인사했다. 나는 깜짝 놀라 칼리니치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농부에게서 그런 ‘다정한 모습’을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호리와 칼리니치, 21쪽」중에서 모든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지위를 갖고 교류를 하며 지내기 마련이다. 어느 농노든 봉급을 받지 못할 경우 적어도 이른바 ‘최저 생활비’를 받는다. 스툐푸시카는 수당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에게는 친척도 없었고, 그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이 남자에게는 과거조차 없었다. 그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가 인구 조사에 포함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가 언젠가 누군가의 시종이었다는 수상쩍은 소문이 돌기는 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의 자식인지, 어떻게 해서 슈미히노의 주민이 됐는지, 까마득한 옛날부터 입고 다니는 물결무늬 비단 카프탄은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어디에 사는지, 무엇으로 생계를 이어 가는지, 이런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솔직히 아무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산딸기 물, 54~55쪽」중에서 “현명해져야 할 때가 왔습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젊은 지주분들이 지나치게 똑똑한 척한다는 점입니다. 농부들을 인형처럼 다뤄요. 계속 굴리다가 망가지면 홱 집어 던지죠. 그러면 농노 출신인 집사나 독일 출신의 관리인이 다시 농민을 손아귀에 넣습니다. 젊은 지주들 가운데 ‘자,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봐라.’ 하고 본을 보여 주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됩니까? 정말 나는 새로운 질서를 못 보고 이렇게 죽는 건가요? 말도 안 됩니다! 낡은 것은 죽어서 사라졌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다니요!” ---「소지주 옵샤니코프, 115쪽」중에서 사내아이들이 다함께 웃음을 터뜨리더니, 야외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이 종종 그러듯 또 잠깐의 침묵에 잠겼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밤이 엄숙하고 위풍당당하게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밤의 건조하고 따뜻한 공기가 늦저녁의 축축하고 서늘한 공기를 밀어 내고는 잠에 빠진 들판 위에 오래도록 부드러운 휘장처럼 드리워 있었다. 새벽의 첫 속삭임과 첫 수선거림이 들리기까지, 동틀 녘의 첫 이슬이 맺히기까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하늘에 달이 없었다. 그 무렵에는 달이 늦게 떴다. 수없이 많은 금빛 별들이 은하수를 따라 앞다투어 반짝이며 계속 조용히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 별들을 보다 보면 단호하고도 쉼 없는 지구의 운행이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듯할 것이다……. ---「베진 초원, 174쪽」중에서 그는 깊이 숨을 쉬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첫 음성은 약하고 고르지 않았다.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 같지 않았다. 어딘가 멀리서 우연히 방으로 날아든 것처럼 들리는 소리였다. 종이 울리는 듯한 그 떨리는 소리는 우리 모두에게 이상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고, 니콜라이 이바니치의 아내는 몸을 꼿꼿하게 폈다. 이 첫 음성에 이어 더 견고하고 느린, 하지만 여전히 현처럼 떨리는 듯한 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손가락을 세게 튕기는 소리가 울리더니, 빠르게 잦아드는 마지막 여음과 함께 노래가 흔들리는 듯했다. ---「노래꾼들, 387쪽」중에서 “음, 좋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나에게, 말하자면, 우연히 일어난 일입니다. 난 시골에서 살았어요………… 갑자기 한 아가씨에게 끌리게 됐죠. 아, 얼마나 멋진 아가씨였는지………… 아름답고 똑똑했어요. 게다가 얼마나 착했다고요! 그녀의 이름은 마트료나였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아가씨였죠. 그러니까, 농노였습니다, 당신도 이해하겠죠, 그냥 농노였다고요. 하지만 내 농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농노였어요. 바로 그 점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었습니다. 뭐, 그렇게 난 그녀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표트르 페트로비치 카라타예프, 402쪽」중에서 결혼한 첫해에 난 따분해서 문단에 진출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잡지사에 원고를 보내기도 했죠.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중편일 겁니다. 하지만 얼마 후 편집자로부터 정중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도 했죠. 내 지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재능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밖에 없으며, 문학에는 오직 재능만이 요구된다고 말입니다. ---「시그로보군의 햄릿, 472쪽」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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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의 비극과 자연의 찬미, 그 모순된 풍경이 일깨운 인간의 존엄
『아버지와 자식』, 『첫사랑』 등 투르게네프가 쌓아 올린 유려한 리얼리즘의 기원은 바로 이 초기작 『사냥꾼의 스케치』에 있다. 그는 사냥이라는 지극히 귀족적인 취미를 매개로 하여, 당시 ‘세례받은 가축’으로 취급받던 농노들을 비로소 ‘말하고 느끼는 인간’으로 문학의 무대 위에 복구시킨다. 투르게네프는 1840년대 중반, 자신의 재능에 회의를 품고 창작을 중단하려던 찰나 우연히 잡지 《소브레멘니크》의 청탁을 받는다. 그렇게 탄생한 첫 편 「호리와 칼리니치」는 러시아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관습적인 인물 묘사에서 벗어나, 철학적 사유를 즐기는 농부와 자연과 동화된 시적인 농민의 모습을 스케치하듯 그려 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사회 비판적인 고발 문학에 그치지 않는다. 투르게네프는 화자 ‘나’의 시선을 최소화한 채, 카메라 렌즈처럼 대상을 응시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때로는 숨죽여 엿듣고, 때로는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이 독특한 거리감은 독자로 하여금 러시아의 축축한 숲 냄새와 노예제라는 가혹한 현실 아래 놓인 민초들의 애환 섞인 노래 소리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집에서 빛나는 것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압도적이고도 정밀한 ‘자연’ 묘사다. 「베진 초원」, 「바퀴 소리가 납니다!」, 「숲과 스텝」 등에서 보이는 자연은 마치 순간적으로 동결되었다가 재탄생한 듯 영원히 빛바래지 않는 신비한 이미지로 제시된다. 이러한 압도적인 생명력을 풍기는 아름다운 자연은 단순히 배경에 그치지 않고, 그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농노들을 귀족과 다를 바 없는 존엄한 인간으로 한층 더 또렷하게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의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이 작품집을 두고 “섬뜩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평하며 그의 재능을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에 비견했다. 『사냥꾼의 스케치』에 담긴 스물다섯 편의 이야기는, 인간을 사유 재산으로 취급하던 비인간적인 시대 속에서도 결코 마르지 않는 인간의 생명력과 예술적 감수성을 증명하는 가장 투명하고도 단단한 기록이다. ■ 관찰하는 ‘눈’과 듣는 ‘귀’: 카메라 뒤의 사냥꾼이 포착한 인간의 초상 『사냥꾼의 스케치』는 제목 그대로 러시아 오룔 지방의 지주 귀족인 화자가 사냥길에서 마주친 인물들을 ‘스케치’하듯 그려 낸 소품집이다. 이 책이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대한 계보 속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회적 메시지 때문만이 아니라, 투르게네프가 창조해 낸 독특한 ‘화자’와 그가 구사한 치밀한 ‘장르적 변주’에 있다. 이 작품집의 화자인 ‘나’는 정체가 모호한 인물이다. 투르게네프는 남성이자 귀족이라는 것 외에 화자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숨겨 그를 하나의 거대한 ‘감각 장치’로 만든다. 화자는 사건에 직접 개입하거나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대신, 카메라를 든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대상을 응시한다. 특히 「예르몰라이와 방앗간 주인의 아내」나 「밀회」 등에서 보여 주는 ‘엿듣기’ 기법은 화자를 관찰자의 위치에 고정함으로써 독자가 인물들의 내면과 진실을 더욱 생생하게 대면하게 한다. 투르게네프는 매 단편마다 새로운 형식과 분위기를 도입해 독자의 감각을 자극한다. 가령 「베진 초원」은 한밤중 초원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사내아이들이 나누는 귀신 이야기를 통해 공포 소설의 형식을 빌려 온다. 낮의 활기찬 풍경과 대비되는 밤의 섬뜩한 미신들은 농촌 공동체의 심연을 보여 준다. 반면 「노래꾼들」은 두 노래꾼의 경연을 세밀하게 클로즈업하며 소설의 시간이 현실과 같은 속도로 흐르는 듯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이는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다큐멘터리적 묘사라 할 수 있다. 또한 투르게네프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고전을 러시아적 맥락에서 새롭게 변주한다. 스스로를 「시그로보군의 햄릿」이라 칭하는 인물은 비범함을 꿈꾸지만 끝내 열등감에 침잠하는 지식인의 초상을 보여 주며, 「체르토프하노프와 네도퓨스킨」의 주인공 체르토프하노프는 몰락한 귀족으로서 돈키호테 같은 광기와 고결한 도덕심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러한 인물 조형은 농노와 지주라는 계급 구도를 넘어 인간 보편의 심리와 실존적 고뇌를 꿰뚫는다. 투르게네프는 농노를 이상화하거나 연민의 대상으로만 가두지 않았다. 삼류 화가, 시종, 말 거간꾼 등 시골 사회의 온갖 군상이 내뿜는 속물스러움과 존엄, 공포와 유쾌함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려 냈다. 말해야 할 것을 섣불리 말하지 않고 오직 감각되는 것만을 묘사하는 이 독특한 거리감은 투르게네프가 자신의 예술에서 평생토록 지키고자 한 예술적 신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