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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판에 붙이는 서문
검은 말 1부 2부 3부 역자 해설: 기나긴 침묵의 세월을 넘어 작가 연보 |
Boris Savink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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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객관적으로 이쪽이든 저쪽이든, 즉 적군이든 그들의 적이든 다 옳은가. 이 물음에 대해 나의 중편소설은 직접적인 대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답은 명확하다. 민중, 수백만의 농민과 노동자 들은 조지와도 함께 있지 않고 심지어 그루샤와도 함께 있지 않다.
그리고 주관적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저울, 이것은 객관적으로는 노동하는 민중의 삶과 평안을 위한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투쟁이 놓인 저울판으로 기운다. 즉 조지의 저울판으로는 기울지 않는 것이다. --- p.11 “무엇 때문에 그들을 증오하나?” “누구 말입니까?” “코뮤니스트들 말이야.” “그 악마 같은 놈들이요? 어떻게 그놈들을 좋아합니까? 집을 태우고 아들을 죽인 놈들인데……. 개도 자기 새끼는 귀하게 여긴다고요……. 그놈들은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태워 죽여야 합니다.” “하지만 백군은 지주들 편이잖아.”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우리는 지주들의 모가지도 비틀 겁니다.” “언제?” “곧 때가 오겠죠.” --- p.19 예고로프의 집은 불타고 그의 아들은 살해됐다. 브레제의 아버지도 살해됐다. 페쟈의 어머니도 살해됐다. 나는 그들이 왜 증오하는지 안다. 하지만 나는 무엇 때문에 증오하는가? --- p.27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두렵다. 우리가 양 떼들처럼 반대로 날뛸까 봐 두렵다. 우리는 날뛸 것이다. 모스크바를 탐욕스럽게 사랑하므로. --- p.30 “이 촌놈들은 다 도망칠 겁니다. 과연 그놈들이 도망가지 않고 남을 수 있을까요? 예고로프가 투덜거리더군요.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모르겠다고요.” --- p.36 맹수는 굶주림에 지쳤을 때 죽이고, 인간은 피로와 나태와 권태 때문에 죽인다. 삶은 그런 것이다. 우리가 창조한 것도 아니고 우리의 의지로 없애지도 못하는 것, 원초적인 것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참회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결코 살인하지 못할 인간들, 자신의 죽음 앞에서 벌벌 떠는 그런 인간들이 성서의 계명에 대해 잡담이나 하라고 만든 것인가? 이 얼마나 불경한 익살극인가! --- p.40 중앙 광장에는 비를 맞아 못쓰게 된 두 개의 초상화가 밧줄에 매달려 있다. 레닌과 트로츠키. 예고로프는 기병도로 밧줄을 자른다. 우리는 승리했다. 그러나 내 안에는 기쁨도, 익숙한 황홀감도 없다. 러시아인들이 러시아인들을 무찔렀다. 벽에서 포고문이 희뿌옇게 빛난다. 나는 포고문을 떼어낸다. 거기에는 우리에 대한, 즉 ‘강도들’과 ‘비적들’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그리고 난 스스로에게 묻는다. 형제들끼리 싸우는 것인가, 아니면 빈대들끼리 싸우는 것인가? --- p.46 나는 어쩌다 악마의 농간질에 러시아인으로 태어나고 말았다. --- p.56 오늘 난 새벽에 일어나 길도 없는 곳을 돌아다녔다. 발밑에는 고사리와 이끼가, 머리 위에는 밤비에 씻긴 말간 하늘이 있다. 아직 아침이다. 아직 햇살이 따뜻하지 않지만 꿀벌들은 벌써 산딸기 위에서 붕붕거린다. 난 부지런한 눈길로 벌들을 지켜본다. 벌들은 짧은 여름을 살고,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산다. 벌들은 일하고, 우리는 싸운다. 벌들은 달콤한 벌집을 남기고, 우리는……. 우리는 무엇을 남길까? 나는 ‘녹색군’이다. 난 푸른 숲에 숨어 있다. 행복하다. 난 러시아의 종복이어서 행복하다. --- p.68 끝이 나지 않는 지긋지긋한 논쟁이 계속됐다. 그들은 무엇에 대해 논쟁하는 걸까? 백군은 죽은 자들이다. 하지만 녹색군도 하느님의 천사는 아니다. 하지만 적군도 내동댕이쳐진 관들이다. 새로운 삶……? 그것은 어딘가에서 건설되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서? 하지만 누가? 하지만 어떻게? ……. 손에 저울을 든 채 말을 탄 자는 어디에 있을까? --- p.84 낮에는 불안 없는 삶이, 밤에는 죽음이 펼쳐진다. 밤이 되면 풀은 눈에 띄지 않게 가만가만 움직이고, 호두나무는 잎사귀를 흔들어 사락사락 소리를 낸다. 무언가 애달프게 찍찍거린다……. 죽기 직전의 그 처량한 울음소리. 난 안다. 숲에서 또 살육이 벌어졌다는 것을. --- p.109 놈들은 ‘코르크’와 모스크바로 그녀를 협박한다. 난 ‘코르크’가 어떤 것인지 안다. 벽, 마루, 천장에 코르크 판자를 빈틈없이 붙이는 것이다. 공기가 통하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다. 사람은 점차 이성을 잃고 힘을 잃고 의지를 잃는다……. 중국에는 쥐 고문이 있다. 살아 있는 쥐를 냄비에 넣는다. 냄비를 죄수의 배 위에 뒤집어 올려놓는다. 쥐는 출구를 찾는다. 처음엔 살가죽을 물어뜯고 그다음엔 창자, 그다음엔 등뼈를 갉는다. 밖으로 나갈 때까지, 사람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화형은 애들 장난에 불과하지 않을까? --- p.113 난 ‘강령’을 믿지 않으며 물론 ‘지도자’도 믿지 않는다. 나 역시 생명을 위해, 대지에서 살아갈 권리를 위해 싸운다. 짐승처럼 발톱을 세우고, 이를 드러내고, 피를 흘리며 싸운다. 난 말했다. ‘대지에서’라고. 틀렸다. 대지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오로지 러시아에서 살기 위함이다. 단조로운 평일이라도 좋다. 쓰레기 구덩이라도 좋다. 어스름이라도 좋다. 하지만 이것은 나 자신의 것이며 내가 사랑하는 것이다. --- p.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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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삼킨 혁명, 영혼을 삼킨 총
모두가 적이 된 시대 속 혁명가의 고백 “나는 어쩌다 악마의 농간질에 러시아인으로 태어나고 말았다.” (본문) 보리스 사빈코프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삶을 산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왕정 타도를 위해 폭력을 주저하지 않았던 무정부주의적 사회혁명당 테러조직의 핵심 인물이자, 플레베 내무장관과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암살을 성공시킨 테러계획의 설계자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도스토옙스키와 니체의 영향을 깊이 받은 문학가이기도 했다. 망명지 파리에서 그는 '롭신'이라는 가명으로 글을 쓰며, 혁명가의 냉혹한 현실과 도덕적 고뇌를 문학의 언어로 형상화했다. 사빈코프의 작품은 혁명의 열정과 피, 윤리적 질문과 인간 내면의 균열을 직시하는 독특한 깊이를 지녔다. 그가 묘사하는 테러는 단지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시험하는 실존의 무대였다. 이처럼 직접 무장투쟁에 몸을 던졌던 경험을 토대로 문학을 쓴 작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며, 그의 글은 단순한 ‘혁명 문학’을 넘어선 심리적·철학적 깊이를 지닌다. 이 작품 『검은 말』은 이렇듯 독특한 삶을 산 사빈코프의 한 격정적 시기를 조명하고 있다. 러시아 2월 혁명의 주역 중 하나였던 그는 임시정부의 군사 총지휘관이자 국방차관으로서 혁명 정부를 이끌었지만, 곧이어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자 즉각 무기를 들고 그들에 맞섰다. 혁명의 한복판에서 시작된 이 반혁명의 길은 역설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는 자유를 믿었고, 그 자유를 또 다른 독재로 삼킨 이들을 단호히 거부했다. 사빈코프의 궁극적인 투쟁 목표는 ‘민중 혁명의 완수’였으며, 그는 구체제뿐 아니라 볼셰비키의 일당독재에도 반대하며 ‘제3의 러시아’를 꿈꾸었다. 러시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 계층에 주목한 그는 백군 세력이 쇠퇴하자 농민 반란 세력인 ‘녹색군’에 합류하여 마지막 투쟁을 이어나갔다. 『검은 말』은 바로 이 역사적 전환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빈코프 자신이 겪은 내면의 갈등과 윤리적 고뇌를 고스란히 담아낸 소설이다. 혁명의 이상과 현실, 신념과 회의, 기억과 책임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초상이 이 작품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거대한 역사를 직조하는 작은 인간들의 이야기 “예고로프의 집은 불타고 그의 아들은 살해됐다. 브레제의 아버지도 살해됐다. 페쟈의 어머니도 살해됐다. 나는 그들이 왜 증오하는지 안다. 하지만 나는 무엇 때문에 증오하는가?”(본문) 『검은 말』은 사빈코프가 혁명가로서의 생애 후반기에 쓴 작품으로, 단순한 정치 소설이 아닌 내면의 드라마를 품은 독창적인 심리소설이다. 이 작품은 러시아 내전이라는 비극적 혼돈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백군 장교들의 심리,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고뇌하고 흔들리는 주인공 ‘유리 니콜라예비치’의 내면을 밀도 높게 그려낸다. 특히 본문은 주인공의 활동 공간에 따라 3부로 나뉜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날것의 고백과 심리적 격동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혁명 전사로 활동했던 과거를 지닌 ‘유리’는 볼셰비키의 전제 권력에 맞서 백군 편에 서지만, 그 안에서도 회의와 살인하는 일의 윤리적 갈등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그의 곁에는 이상과 충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년 ‘페쟈’, 냉소적인 현실주의자 ‘브레제’, 그리고 과거의 연인이자 정반대의 신념을 지닌 ‘올가’가 등장해 유리의 내면에 계속해서 균열을 일으킨다. 이들은 어떤 신념도 온전히 믿지 못한 채 과거의 권위와 미래의 공허 사이에서 방황하며, 독자는 단순히 ‘누가 옳은가’라는 도식을 넘어서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라는 깊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비슷한 제목, 일기 형식, 반복되는 인용문과 공통 인물의 등장 등으로 인해 『검은 말』은 1909년 발표된 사빈코프의 전작 『창백한 말』의 연작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돋보이는 진정한 지점은, 사빈코프 특유의 응축된 문장과 극단적 상황 속에서의 인간 심리를 정밀하게 파고드는 통찰에 있다. 그는 전투 장면보다 인물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정의 그늘과 순간의 망설임을 통해 정치적 투쟁을 인간 내면의 문제로 확장시키며 독자에게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이로써 『검은 말』은 적군, 백군, 녹색군 등 당대 러시아 민중 앞에 놓인 혼란한 교차로와 그에 따른 실존적 갈등을 문학적으로 가장 정교하게 형상화한 문제작으로 평가받는다. “사빈코프는 동시대의 다른 지식인과 달랐다. 그의 영혼에선 음모와 타협의 더러운 악취가 나지 않는다.” ― 소설가·번역가 연진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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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사빈코프는 기록하고, 기록한 것을 지키고,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자였다. 삶의 끝까지 그는 저항하는 혁명가로 남았다. 사빈코프는 모든 권력에 저항한 진정한 민중주의자였다.” - 정보라 (소설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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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빈코프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예리한 통찰력, 날카로운 유머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런 경험과 문장력을 바탕으로, 그는 혁명과 반혁명의 격동기를 가장 생생하게 기록해 낼 수 있는 인물이었다.” -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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