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유산』은 200여 년간 영제국의 네트워크를 타고 흘렀던 피의 폭력과 그 유산에 관한 책이다. 천 페이지가 넘는 지면에 인도, 자메이카, 아일랜드, 남아프리카, 팔레스타인, 말라야, 케냐, 키프로스에서 벌어졌던 극적인 폭력의 순간과 추방, 민간인 수용소, 재판 없는 구금, 살해, 고문, 성폭행 같은 끔찍한 폭력의 장면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폭력의 고발에 있지 않다. 엘킨스는 식민지를 넘나들며 활약한 폭력의 행위자인 ‘괴물들’ 한 명 한 명의 행적을 낱낱이 밝히고, 고위 정치가들이 법치를 포기하고 폭력을 합법화되는 시점과 과정을 특정하면서, 개혁과 억압, 문명화와 폭력은 영국 자유제국주의에서 공존하는 양면이며 분리할 수 없는 하나였다고 역설한다. 저자가 ‘합법화된 불법’이라고 명명한 영제국의 폭력은 결코 예외적 일탈이 아니라 자유주의에 내재된 특징이었다는 것이다.
영제국 통치는 법치와 합법적인 폭력의 연속적 교차로 이루어졌으며 오늘날에도 폭력의 유산이 이어지고 있다는 이 책의 주장은, 여전한 영제국에 대한 향수와 인종차별을 생각할 때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케냐 마우마우 수용소에 관해 연구해온 저자는 2011년 마우마우 재판이 열렸을 때 전문가 증언을 통해 승소에 힘을 보탠 바 있었다. 마우마우 재판으로 선한 제국과 순조로운 탈식민화와 영연방으로의 이행이라는 영제국사 이해가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지금, 이 책은 한국 독자들에게 영제국사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데 훌륭한 항해도가 되어줄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