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동준론은 자못 생급스럽다. 3대가 철학을 전공해 온 드문 집안에서 시를 즐겨 읊어온 노철학자의 이야기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그렇다고 단순한 여기(餘技)의 산물쯤으로 치부했다가는 적잖은 결례가 되고 만다. 현란한 표현, 심오한 철학적 물음 하나 없이 평범한 일상어로 툭 던져두는 그의 시편들은 깊고 서늘하다. 깊다 함은 표층적 언표가 매우 쉬운 것에 비해 그 사유가 심층적이라는 의미다. 때문에 곱씹을수록 생각거리가 우러난다. 유행하는 여느 현대 시들이 여간해서 품지 못한 미덕이다. 서늘하다 함은 우주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춥고 더운 땅의 언어영역을 벗어난 하늘의 영역에 닿아있는 개념이다. 우주를 춥다고 이르겠는가, 덥다고 이르겠는가. 가물가물 현묘하니 서늘하다고 할밖에. 하지만 이동준의 시를 말할 때, 방점은 깊음에도, 서늘함에도 있지 않다. 툭 던져둔다는 데에 찍힌다. 툭 던져둠은 나름대로 공을 들였으되 애면글면 더 어루만지지 않고 무심히 놔둔다는 의미다.
시는 언어의 꽃이다. 사람이 말로 빚은 유위(有爲)의 소산이로되 자연스런 무위(無爲)의 이치에 물들이고자 부러 그런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이동준의 시가 지닌 질박함은 본래 얻은 뜻을 이런저런 표현 기법이 되레 손상시키는 것을 꺼려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