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곳곳이 생의 된비알이다. 오르기에 버겁지 않은 것은 재물, 애욕 따위의 기울기를 신은숙이 지워 준 까닭이다. 비탈이 평지가 된 것이다. 시인은 동음이의(同音異義) 세계를 넘나들며 통념을 바루고 비탄을 달게 본다. 젖은 종이 같은 이미지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를 버리고 홍조(鴻爪)와도 같은 존재들을 사늘하게 표현해 냈다. 자기 연민을 은유한 이미지들을 자전적 상처라며 도금해서 팔아먹지 않는다. 폴라로이드처럼 단 하나의 컷으로 채집해 내는, 후보정을 염두에 두지도 않는 결벽을 견지한다. 명랑한 것 같지만 감정 제어가 섬세해서 조울로 널을 뛰거나 참혹으로 추락하지도 않는다.
신은숙의 시편들을 일독하면 무중력 상태를 느끼게 된다. 결리는 곳이 없고 쓰라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감정의 편향이 없는 것이 시의 정석이다. 매혹은 극(極)에서 분화(噴火)하는 것임에도 거기까지 이르지 않고 가만가만 어루만지는 매력이 충분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인력을 가진다. 사랑했고 미워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부분이겠거니와 언어조차 서로 친밀해지고 때로는 반발하게 마련인데 그 인력과 척력을 다룰 줄 알아서 문장 안에서 결합시키고 행을 가르며 대비해 놓은 것이다. 편편마다 일어나는 정서적 환기 때문에 적바림을 멈출 수 없는 시집이다. 고향을 한 정거장 앞둔 딸처럼 가만가만 손을 잡아 보게 되는 감정의 회목이다. 문자로서는 일현금(一絃琴)인데 천 갈래 만 갈래로 휘어지고 공명하는 진술들의 축음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