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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시인의 말
Ⅰ 013 피아노 조율사 015 새벽 016 플리마켓 018 박하사탕 020 카페 테라스 022 어죽 024 층간소음 026 마르크스 책방 028 오후의 크로키 030 콜드 브루(cold brew) 032 혼자 034 햇살은 가득히 036 수동태 038 막회 040 눈 042 정기검사 044 피아니시모 Ⅱ 049 3월 051 택배원 052 매화 알람 054 희망 사항 056 분리배출 058 피로연 060 셔터 062 바라만 보는 것 064 아무도 모르게 066 넷플릭스 068 생일 070 반계리 072 원생모집 074 소소(昭蘇) 076 참견하지 않는 마음 078 목련 080 능내역 육개장집 082 교체 Ⅲ 087 시트콤 089 첫눈 090 구경 092 납량만흥(納凉漫興) 094 모녀 096 성탄 트리 098 바깥 100 에덴 입장권 102 부품의 탄생 104 사이 106 단맛 108 용역 110 멜랑콜리아(melancholia) 112 생인손 114 바닥 116 내린천 118 빈자리 로드무비 Ⅳ 123 벙어리 종 125 절벽카페 엠클리프 126 파주 성모요양병원 128 새 옷 130 호의 132 다음 날 134 점심시간 136 청평호 138 우기 140 서랍 142 해빙 144 프레임 146 무지개 148 2,000 해설 151 크로키 고현학 | 이재훈(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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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라는 높낮이를 조절해놓고
순서대로 살펴보겠지 하나의 음을 정하면 이전 것은 사라진다 늑골이 어긋나듯 아픈 사랑도 새 인연을 만나면 지워지는 것이다 애인의 노래 음계가 틀려도 웃어주는 마음처럼 어긋남도 알아야 조율할 수 있는 것 피아노 교습에 시달리다가 쉼표 뒤에 숨고 싶은 아이를 찾아 어르고 다독이는 사람 악보 떨어트리고 딴청 하는 아이마냥 이탈하는 음을 데려와 제자리에 앉히는 사람 가라앉은 마음에는 올라오라고 #을 화가 치솟아 누군가가 다칠 것 같을 때는 내리라고 ♭을 붙여주는 감정 조정인인데 조율산업기사라는 자격증이 붙었으니 조화보다 규격을 믿는 세상이다 차별받고 억울하고 울렁거리는 생을 조율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 부탁하련다 --- 「피아노 조율사」 중에서 그는 방을 먹고 산다 쪽방에 갇히고 월세동거가 버거운 우리들이라서 발 뻗을 권리를 그에게 찾는 것이다 예비 무속인처럼 우리가 임장해서 냄새 맡고 만져보고 열어보고 붙박이 가구들이 새 주인에게 누설할 불운 따위를 감지해야 한다 그가 배달음식 스티커 같은 덕담을 붙이는 동안 월세와 출퇴근의 손익분기점을 가늠해야 한다 고독은 일인 가구의 관리비 같은 것 방을 잡는다면 빈방을 잡아먹는 일이니까 방에서 빈방이 생기는 무한회전에 부동산 중개인 그가 터를 잡았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잡아먹고 있는 셈이다 생계형 과장의 그는 후미진 집을 한적하다고 비좁은 거실을 청소하기 편하다고 역까지 30분인데 5분이면 충분하다면서 에덴 입장권을 남발한다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는 새가 부럽다면 이사에 지쳤다는 뜻이다 부동산 중개인은 달콤한 제안을 할 테니까 방을 구하려면 그의 포장술조차 즐겨야 한다 눈총받아도 구겨지지 않는 표정의 그도 귀가할 때는 허우룩해질 것이다 --- 「에덴 입장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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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어와 도시의 장면들
표제작 「에덴 입장권」은 시집 전체의 관문이다. 부동산 중개인의 ‘달콤한 제안’은 “후미진 집을 한적하다고/ 비좁은 거실을 청소하기 편하다고” 포장한다. 현실의 팍팍함이 수사로 미화되는 순간, 시는 그 언어를 그대로 전시하여 아이러니로 전환한다. “고독은 일인 가구의 관리비 같은 것”이라는 문장은 이 시집의 미학을 압축한다. 이는 고독을 비용으로 환산하는 차원을 넘어, 혼자 살아가는 삶에서 고독이 관리비처럼 필수불가결하게 부과된다는 구조적 조건까지 드러낸다. 이러한 태도는 「오후의 크로키」에서도 확인된다. 야쿠르트 이젤, 체육관 전단지를 나누는 할머니, 스콘 부스러기를 터는 여자 같은 장면은 장황한 설명 대신 디테일 몇 개로 포착된다. “노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히치하이킹” 같은 낙차가 큰 비유가 장면 위에 얹히며 관찰과 윤리가 교차한다. 시집은 세태를 고발하지 않고,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참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태도를 보여준다. 자동차와 의료기기도 중요한 소재이다. 「정기검사」는 차량 점검과 관련된 단어들을 질병의 은유로 바꾸는 데서 멈추지 않고, 병과 기계 점검이 서로를 비추는 구조를 보여준다. 기계는 병처럼 진단되고, 병은 기계처럼 점검된다. 절망은 “아팠던 곳이 모두 다 기억나는 일”로 정의되는데, 이는 고통과 기억이 붙어 있는 방식을 시적 장치로 환원한 것이다. 「수동태」에서는 안마의자가 공범, 동지, 카운슬러로 불리며 물건이 인간처럼 호명된다. 동시에 인간은 물건처럼 수동적으로 놓인다. 인간의 수동성과 기계의 수동성이 겹쳐지며,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추상적인 진술은 곧 흘러가지만, 구체적인 손의 행위는 독자의 감각에 오래 남는다. 어루만지고, 닦고, 붙이고, 뜯는 반복이 바로 살아 있는 시간의 증거다. 침묵의 문법 교환과 연대의 장소들 또한 이 시집의 무대를 이룬다. 플리마켓, 책방, 피로연, 막회 같은 공간에서 돈의 가치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나눔의 감각이 드러난다. 「플리마켓」은 슬픔과 상처가 얼어붙어 더는 괴롭히지 못하는 곳을 북극의 빛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고통을 중지하는 장면이 아니라, 상처마저 거래와 나눔의 장 속으로 끌어올려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역설적 힘을 드러낸다. 「마르크스 책방」은 풍자와 유머가 빛나는 작품이다. “가장은 실외기 같은 존재”라는 한 줄은 가장을 비꼬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담함을 감당하는 노동의 그림자를 인정한다. 이 아이러니는 차갑지 않고 따뜻하다. 식물 또한 중요한 표현 방식이다. 「목련」은 하얀색의 폭발과 침묵의 기술로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그러나 “최고의 묘사는 침묵”이라는 선언은 어떤 절제의 미학을 넘어, 언어가 목련의 압도적 감각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자각에 가깝다. 「매화 알람」과 「해빙」은 계절이 오고 감정이 녹는 과정을 발송과 기술의 은유로 번역한다. 시인이 그리는 자연은 초월적인 배경이 아니라 생활의 작동 방식이다. 이러한 문체의 핵심은 생활어와 명제가 교차한다는 점이다. 생활어가 현재성을 확보하고, 그 사이사이에 “고독은 관리비” 같은 명제가 봉합선 역할을 한다. 나열이 길어지기도 하지만 마지막 항목에서 낙차를 만들어 감정의 균형을 잡아준다. 무엇보다 설교가 아닌 습관의 윤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손의 동작이다. 결국 이 시집은 불행을 고발하거나 행복을 선전하지 않는다. 대신 불행의 체류 시간을 줄이고 행복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생활의 기술을 보여준다. 에덴은 약속된 낙원이 아니라 잠깐 열리는 생활의 틈 속에서 드러난다. 『에덴 입장권』은 과잉을 경계하는 눈, 명제와 이미지가 맞물리는 리듬으로 도시의 기록이 시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 에덴은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참견하지 않으면서도 무관심하지 않은 주의 깊은 태도 속에서 잠깐 열린다. 전영관 시인의 작업이 갖는 의의는 만만치 않다. 그는 세계를 웅대한 서사나 추상적 이념으로 재단하지 않고, 생활의 사소한 단어와 장면에서 시의 본질을 길어 올린다. 그의 시는 일상의 사물을 감정의 바로미터로 바꾸고, 언어의 습관 속에서 감각을 새롭게 세운다. 『에덴 입장권』은 도시의 사소한 풍경이 어떻게 시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증거이며, 오늘의 시가 지향해야 할 미학적 절제와 사유의 날카로움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성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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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집은 전영관이 도시의 거리를 소요하며 바라본 슬픔의 고현학이다. 도시의 바람과 빌딩과 거리와 정류장들은 객체인 자연이 아니라 시인의 삶에 주렁주렁 매달린 주체의 이미지들이다. - 이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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