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덕 시인의 시집 『닮은 건 모두 아프고 달리아꽃만 붉었다』에는 한 사람이 나와요. 두 사람일 수도 세 사람일 수도 백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난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읽었어요. 그 사람은 계속 어딘가로 가요. 혼자 가요. 혼자 갈 수밖에 없는 건 “죽은 소년”(「모래북」)과 함께 걸어가기 때문이죠. 누군가 그와 함께 가려면 죽은 소년이 있어야 해요. 죽은 소년은 의미 있는 누군가일 수도 있고, 잃어버린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내밀한 초심이나 순수, 혹은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일 수도 있고, 간직하고 싶은 순간의 무늬일 수도 있어요. 그런 건 너무 섬세하고 개별적이에요. 누구와 같이 간다고 해도 완전한 소통은 불가능해요. 그런데 왜 자꾸 가야 할까요? 더는 남아 있는 자로 남아 있지 않으려고 그럴 거라 짐작해요. 그러나 어딘가로 간다고 해도 죽은 소년을 놓지 않는 한 또다시 남아 있는 자가 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오래전부터 그래 왔고 어쩌면 전생에서부터 그래 왔는지 몰라요. 나도 시를 쓰지만 시인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몰랐는데, 이 시집을 보니 시인이란 “낙엽에서 연둣빛 잎맥”(「밀주」)을 보는 사람 같으네요. 그리고 시란 “쓸쓸함이 머물 수 있는 작은 벤치”(「그라시아」)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