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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어디서 게으름을 피우는가
김개미
걷는사람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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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오래 터지는 폭탄

뱀이 되려 했어
좀비가
폭탄과 나무
꿈을 꾸는 게 좋아
춤추는 자는 노래하지 않는다
단독자
K의 근황
내가 울면 별들이 아름다워져
참나무 아래 누워
뼈가 없는 유령처럼, 나는
초경
엘크를 데려와
혼자 오래 사는 사람은
한성이
인형을 위한 시


2부 따뜻했던 입술과 따끔했던 심장

인형에게서 온 편지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내 심장은 딱딱하게 굳은 고체였는데,
안녕도 안녕
당신, 오래 아파요
네가 나를 탄생시켰으니
어떤 동거
극심한 오늘
오늘의 약
그 언덕은 지금도 겨울일 것이다
붕괴의 기억
사천
나는 암사마귀처럼
나는 이상합니다
장미꽃이 만발하고 향기가 어지러워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중얼거린다


3부 다른 사람의 폭풍

빙벽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조차 알지 못하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찾을 거라고 믿는 남자의 전화
최 노인의 산책 거절
죽어서는 우리와 오래도록 놀았다
쌍둥이 언니
약 냄새가 나
네가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나를 만지면
아무것도 보지 마 아무것도 기억하지 마 아무것도 기록하지 마
한 번의 어제
미치광이풀
조난
또 여름인 거죠
안산 오빠
막사
노을에 대한 내성


4부 피부로 말하는 법

주머니에 손을 넣고 먼지를 뭉치는 동안
인형의 일 1
인형의 일 2
밤 같은 낮 낮 같은 밤
혈관에 별이 떠 있다
악몽
난쟁이 창고
가시 일기
눈을 뜨자 까마귀가 보인다
노끈
나는 아직도
시인의 창세
서예가
신은 모른다
만취


해설

조그만 사랑의 시 ―안지영(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2005년 [시와 반시]에 시, 2010년 [창비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앵무새 재우기』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동시집 『어이없는 놈』 『커다란 빵 생각』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 『레고 나라의 여왕』 『오줌이 온다』 등을 냈다. 제1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제1회 권태응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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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7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54쪽 | 198g | 125*200*10mm
ISBN13
9791189128777

책 속으로

너도 알다시피 집에 뭐 있니
난 이제 누구의 식구도 아니야
난 식구들에게 안 한 이야기를 까마귀에게 한다고
조금 있으면 까마귀들이 몰려올 거야
어제보다 많은 이야기를 지어내야겠지
그러니 집에는 너 혼자 가
누가 나를 궁금해하거든 죽었다고 해
--- 「참나무 아래 누워」 중에서

뉴스에서 ‘내성적’ ‘은둔형 외톨이’ 이런 말이 들리면
내 이야긴 줄 알고 잠시 듣는다

전에는 마음속으로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했는데,
이제는 마음속으로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하지 못한다

나는 죽은 나무에 사는 벌레 같고,
이웃은 달과 별뿐인 것 같고,
손님은 바람과 계절뿐인 것 같다

혼자 오래 사는 사람은 기다리는 걸 잘한다
비든 사람이든 기다리면 올 것 같다
죽은 사람도 올 것 같고,
차가운 기체에서 태어난 유령도 올 것 같다

견디기 힘든 건
정적이면서 정적인 고독이 아니라,
정적이면서 동적인 불안이다
치유된 줄 알았던 불안은
옷장 속에 책 속에 피부 속에 잠복해 있다가
게릴라처럼 기습해 온다

혼자 오래 있으면
신의 목소리도 악마의 목소리도 듣는다
신은 내게 원하지 않는 게 많고,
악마는 내게 원하는 게 많다
--- 「혼자 오래 사는 사람은」 중에서

얼마나 더 살아야 할까
얼마나 더 배를 부풀리며 심호흡을 해야
쉬지 않고 먹이를 갈구하는 욕망의 그림자가
나를 포기할까
얼마나 더 걷고 뛰고 기도해야
두통 없는 밤이 찾아올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네가 빛을 끄고 내 뇌리에서 사라질까
악마는 어디서 게으름을 피우는가
왜 나를 보지 못하는가, 어서 와서
아직 남은 내 젊음을 가져가지 않고
늙고 싶다 빨리 늙고 싶다
극도로 무력해지고 싶다
--- 「극심한 오늘」 중에서

나는 이 시간만 되면 부족한 것 같다
뼈도 하나 없는 것 같다
영원히 잘될 것 같지 않다

나는 망가진 채 태어난 것 같고
어려선 누가 고쳐주지 않아 망가진 걸 몰랐던 것 같고
지금은 망가진 걸 인정하기 싫어 고치기 싫다

(중략)

이제 나는 아무 일도 겪기 싫다 행복하고 싶지도 않다
괜찮고만 싶다 나중 말고 지금, 지금, 지금 좀 괜찮고 싶다

나는 거인의 박동을 가진 난쟁이다
아니 난쟁이가 가지고 노는 쥐다 쥐가 빠져나간 쥐다
눈을 다쳐 덤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어디에 발을 놓아도 편하지 않다
--- 「노을에 대한 내성」 중에서

담 너머 아카시아 꽃이 흔들릴 때면
병들고 싶다 흔들리고 싶다

깊은 밤 구부러진 달빛이 세상을 뒤덮으면
꺾이고 싶다 취하고 싶다
왜 나는 늙지 못할까
왜 나는 달라지지 못할까
이제 그만 말랑한 너에게 닿고 싶다

노란 전등 아래 너를 데려다 앉히고
네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
오늘은 정말이지 네 손톱 밑에 들어가 눕고 싶다

무료하지 않을 만큼 아프고 싶다 아프게 하고 싶다
더 이상 꼿꼿하기 싫다 꿋꿋하기 싫다

--- 「가시 일기」 중에서

출판사 리뷰

2005년 『시와 반시』에 시, 2010년 『창비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감각적 이미지스트’라는 평을 받은 김개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악마는 어디서 게으름을 피우는가』(걷는사람)가 출간되었다.

김개미의 시는 현실과 환상, 그 어딘가를 맴돌며 서늘한 분위기로 발화한다. “숲 가장자리에서”(「춤추는 자는 노래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화자는 “외롭고 답답하”며 “흉측하고 너덜너덜하다”(「좀비가」). 화자를 고립시킨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너를 너무 사랑”했다는 시인의 말처럼, 사랑은 그의 아침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한 방울씩 녹아 사라지게 하고, 어두울수록 희망적이게 만든다. 시인은 이러한 사랑의 연가를 ‘악마’ ‘인형’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키워드로 천착한다. 화자가 말하는 이 지독한 사랑을 한 단락씩 살펴보자.

김개미 시인에게 악마란 혼자 오래 있다보면 목소리가 들리는, 원하는 게 많은 존재이다. 게으름을 피우느라 남은 젊음을 가져가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영화처럼 사랑에 빠지기를 바라는, 사랑을 저버리기로 결심한 날의 아침에 찾아와 함께 노는 존재. 악마는 시인을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트려버린 원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숨 막히는 현실에서 탈출시켜주길 바라는 구원의 대상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런 그를 탓하면서도 어느새 동화되어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마치 그가 연인이라는 관계 속 상대방이자 당사자라도 되는 것처럼.

인형은 눈에 이끼가 덮이고, 납작하게 밟혀 팔다리를 잃은, 말하지 않고 걷지 않고 화내지 않고 아파하지 않고 살아나지 않는 존재로 시집 속에 등장한다. 그런 인형을 두고 김개미 시인은 기꺼이 본인이 그의 할 일을 하겠다고 말한다. “상처받은 날도 웃을 일은 있어야”(「인형을 위한 시」) 하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시인은 이미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 말은 사용하지 않아. 말할 수 있는 건 오늘은 숨이 찰 거라는 것.”(「인형에게서 온 편지」) 같은 기분을 느껴서일까.

“나는 암사마귀처럼 오랫동안/너를 기다렸던 것 같아/너와 헤어지고 나서도 오랫동안/너를 기다렸던 것 같아/아픈 동안에는 더 기다렸던 것 같아 (중략) 한낮이면 햇빛에 녹아 사라지다 / 저녁이면 바람의 힘으로 단단해지곤 했던 것 같아/눈을 뜨고 있으면 보이지 않고/눈을 감으면 보이는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아 (중략) 할 일을 생각해낼 수 없는 날도 있었던 것 같아/게으르지 않지만 일할 수 없는 날들이/여러 날 있었던 것 같아“(「나는 암사마귀처럼」). 화자는 숲 가장자리에서 악마를 부르짖고 인형의 일을 하며 대답 없는 ‘너’를 기다린다. “나는 너를 기다리지/그게 나의 일/여기선 그 일밖에 없어”(「네가 나를 탄생시켰으니」). ‘너’에 대한 기다림은 기약이 없기 때문에 ‘나’에 대한 기다림으로 확장된다. “일부의 내가 가서/일부의 나를 기다리는”(「시인의 창세」) 그 기다림의 세계는 한없이 넓어져서 세상을 조망한다. “내 눈엔 그런 것만 보인다. 모두 무엇인가를 기다린다.”(「사천」).

”지옥이란 죽어서 가는 특별한 곳이 아니라/길을 잃었을 때 누구나 들어서는 곳“ (「조난」)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화자 또한 죽음 또는 그에 준하는 고통을 겪었기 때문일까. ”나도 오빠처럼/죽었다가 살아난 아이잖아/죽은 채로 살아가는 아이잖아“(「안산 오빠」). 김개미 시인은 절망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한 어투로 체념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할 일을 찾는다. 이것이 기꺼이 악마의 이름을 외칠 수 있는 이유이자 명분이다.

“사람들은 나더러 왜 울지 않느냐고 한다. 나는 묻고 싶다. 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당신들 앞에서 울지 않을 뿐이지.”(「사천」)


[시인의 말]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네가 돌멩이를 내밀며
이걸 삼켜, 그러면
삼킬 생각이었어.
그러나 이젠 충분히 울었어.
골목을 빠져나가는 고양이의 야옹 소리 들리고
나는 리셋 될 거야.

2020년 7월
김개미

추천평

“작고 까만 개미는/계속 계속 다시 출발해서/마침내/집으로 돌아오는 거야.” 내가 좋아하는 김개미 시인의 「개미는,」이란 동시이다. 계속 계속 출발하는 김개미 시인의 분신들은 또 이렇게 새로운 말에 닿았다. “폭탄도 폭탄이고 나무도 폭탄이다”(「폭탄과 나무」)는 이 시집의 슬로건이다. 천천히 오래 터지는 폭탄 같은 김개미의 시들은 특유의 섬세한 보법과 유쾌한 블랙 유머로 가득하다. 이 책에 나오는 뱀, 좀비, 폭탄, 꼽등이, 유령들… 모두는 한 몸이면서도 한 몸이 아닌 여러 개의 부분들이며 김개미 시인의 분신들이다.

김개미 시인은 이미 아무것도 아니게 된 사람이거나 무엇으로든 변신할 수 있는 무엇이다. 내가 “울면 별들이 아름다워”(「내가 울면 별들이 아름다워져」)진다는 문장에 이르러 나는 김개미 시인이 또 다른 말의 대륙에 닿았음을 느낀다. “내가 찾아내지 못해서 더 빛나는 글자들은/아직도 흙 속에서 내 이름을 부른다”(「나는 아직도」). 흙 속에 숨어 있는 글자들을 찾아내는 놀이이면서도 내면을 발굴하는 도굴꾼이자 어디로 튀어갈지 모르는 공, 적소에서 상처를 핥는 짐승이자 제 몸에 문신을 새기는 자가 곧 김개미 시인이 아닐까. 김개미 시인의 시들은 이상한 놀이이면서 동시에 각각의 다른 의미와 다른 층위를 지닌다. 김개미 시인이 펼쳐놓은 다른 시간들과 사물들은 제멋대로이면서도 치밀하게 현재와 결합한다. 오롯이 당신만을 위해 차려진 일인분의 “일인용 인간”(「단독자」)을 음미하라. 김개미 시인의 영토에 온 것을 환영한다. - 송진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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