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운 시의 수줍은 사투리에 흠뻑 매료되어 페이지를 넘기던 나는, 「너머」를 읽다가 창문 너머 솔나무 한 그루를 바라본다. 주위의 아파트가 묘비라면 저 나무는 도래솔이 될 것이다. 세월호 때도 그랬고, 그 후로도 김채운은 높고 낮은 무덤 주위에 그늘을 드리운 도래솔처럼 조용히 생사를 견딘다. 김지하의 말처럼 그녀는 우리 고유의 말에 흰 그늘을 드리운 시를 쓰고 있다. 그래서 「시인 K」에서는 “폐쇄병동-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유리 감옥”이라는 명구가 탄생한다. 그렇다! 현대는 ‘폐쇄병동의 시대’이다. 그러니 시인은 광기의 시를 쓰다가 죽거나, 정신의 불안을 느낀 시인은 스스로 무덤 같은 병동에 갇힌다. 우리도 그녀도 「몰의 연대」처럼 “살아서는 결코 채울 수 없는/빈칸”이다. 그녀의 「슬픈 관능」을 빌려 말하건대, 스스로 죽지 말고 ‘시인 K’는 살아라. 오늘 병승이도 죽고(哭황병승), 시도 죽고, 폐쇄병동의 시대를 살더라도. “검은 상복 입은 저것이 왜 아리따워만 보이는 것이냐”고 채운이가 우리를 유혹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