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이 스스로 살기 위해 막 지나치는 영혼을 갈아탄 적 있으리라. 끈질기게 한 사람의 마음을 다잡아 활자로 환승하는 것이야말로 시가 이 생生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시에게 간택된 사람이다. 방윤후는 결코 시가 고고한 자리에서 기다린다고 여기지 않는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자신을 내려놓고 스스로 간이역이 된다. 소외된 사람들, 방치된 사물들, 철 따라 피고 지는 꽃과 나무들까지 자신을 느리게 지나가도록 내버려 둔다. 뉴스, 영화, 신문에서 쉽게 흘러가는 정보도 그에게는 조금 일찍 왔거나 조금 늦은 조우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방윤후는 특유의 음악적 감수성으로 그것들에게 땅울림을 내어 준다. 음악이 시의 곳곳을 여행하도록 음계를 깔아 기꺼이 백지가 되기도 한다. 먼 훗날 시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들려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발굴되는 시공간의 연원이므로, 방윤후만의 지층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