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연애소설이 사랑을 결혼으로 귀결시키고, 여성의 욕망을 남성의 선택에 가두던 시절, 박경리 선생님은 이미 그 흔한 문법의 바깥을 탐구했습니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며, 이별은 사랑의 소멸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사랑받을 자격을 증명해야만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오래된 소설이 살아남는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시대를 잘 기록해서 박물관에 보존되거나,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가슴에 가닿거나. 『애가』는 후자에 속합니다.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이 소설이 전혀 낡지 않은 이유는, 아니, 더 나아가서 새롭게까지 읽히는 이유는, 이 모든 서사가 아직도―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어딘가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을 현재진행형의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소설은 시대를 살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은 결국 인간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소설 역시 죽지 않을 것이며, 그 안에서 작가 또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지금 『애가』를 읽으며, 선생님의 가장 이른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듯 말입니다.
끝으로, 몇 년 전 원주 매지리에 있는 선생님의 옛집을 방문했을 때,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만들어둔 작은 문을 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 조그만 문들, 여기저기 놓인 밥그릇들 덕분에 선생님이 계시지 않은 그 집에서 여전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지요. 이 책을 읽으며 그때의 그 따뜻함이 자꾸만 떠올랐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