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도 그늘을 만든다. 아니, 빛이 만드는 그늘이 있다. 그늘은 빛을 피해 어둠 속으로 다가가지만 완전히 어둠에 귀속되지는 않는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서 비틀대는 것이 빛그늘이다. 이병국의 시에는 빛그늘처럼 안에 가둘 수도 바깥에 내놓을 수도 없는 마음들이 수없이 출현한다. 마음이 닿고, 마음에 손이 가고, 마음의 틈을 메우고 모서리가 생긴다. 시인은 실패와 패배의 기억, 막다른 길처럼 출구 없는 불행한 과거와 싸우면서 조금씩 기울어 가는 오늘을 겨우 살아 내고 있다. “그늘진 바닥이 흥건하고/어지럽고 어려운 방향이 머물러 있다”(「궤도」). 아물지 않는 상처와 성급하게 자라느라 튼 자리는 시인의 내면에 옹글게 가라앉아 있다. 어둠 속에 그것을 방치한다면 안쪽부터 썩어 들어갈 것이고 빛 속에 그것을 내보인다면 녹아 사라져 버릴 것들, “더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인 채로/빛그늘 안에 엉켜 있다”(「전지」). 이런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을 살아가는 시인은 행복하냐는 물음에 괜찮다고 대답한다. 행복과 불행, 둘을 가르고 들어오는 질문에 괜찮다는 대답은 엉뚱하다. 행복하든 불행하든 상관없다는 말일까, 아니면 행복하지는 않지만 견딜 만하다는 뜻일까. 아직 오지 않은, 아니 이미 지나가 버린, 아늑함과 위안, 따뜻한 온기와 다정한 얼굴을 찾는 시인에게 그것은 “먼 곳을 빚어/빈 곳을 견디는”(「우산」) 일이 아닐까. 그것은 상처로 가득한 안쪽을 깁는 것이다. 과거의 나를 길어 올려 현재의 나와 잇는 일이다. 나를 당신에게로 기울여야만 우리는 기댈 수 있다.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것들로 가득한 곳에서 끝내 멀어질 수 없는 것들과 함께 허기로 가득한 오늘을, 그리고 텅 빈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