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땅과 하늘, 바람에는 피와 비명이, 고통과 상처가 각인되어 있다. 반세기를 훌쩍 넘어가지만 학살의 간접적인 피해자와 유족 들의 기억에 그것은 생생한 오늘의 일이다. 꽃이 피고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어도 그것은 막막한 ‘절벽’으로 다가온다. 온전히 되살리기에는 그 참혹한 기억이 살을 후비고, 아득한 시간의 잿더미에 갇혀 있기에 끝이 없기 때문이다.
고주희 시인은 막막한 절벽 같은 그날과 그 이후의 시간들을 시에 ‘받아 적는다.’ 받아 적는다는 것은 대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목소리와 몸부림을 몸으로 껴안는 것이며 한 자 한 자 그 대상에 되돌려 주는 일이다. “저는 뒤척이는 오름과 바다를 오가는/당신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받아 적습니다”(「새빌오름」).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밤새 뒤척이며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그 돌아오지 못하는 “불귀의 이름”들을 자신의 몸에 새긴 사람이 있었다. “묵묵히 견딘 것들이/묵묵한 태양 아래 서 있었지”(「문득, 선인장」). 4·3 제주에서 일어난 일은 너무나 생생하고 구체적이지만 그만큼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기에 역사 인식 자체의 아포리아, 즉 사실과 진실 사이의 불일치, 입증과 이해 사이의 불일치에 놓여 있다. 그러한 불일치를 생존자들이 말로 남긴 기록과 몸에 새긴 상처로 살려 내는 고주희의 시들은 절룩거리는 언어들과 유려한 비유를 동시에 거느린다.
온전한 정신으로는 읽을 수도 없는 것을 맨눈과 맨몸으로 감당했던 희생자와 유족의 기록을 시적 형식으로 받아 적는 일은 그 체감적 고통을 순화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단편적 사실들의 조합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고, 학살의 현장과 그로 인한 후유증은 비유적 대상에 의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붉게 덧칠 당한 한라산엔/이 악문 채 비명 삼킨 돌과 나무들”(「자리왓 폭낭」). 검은 벌집 같은 집 한 채, 팽나무, 억새와 순비기꽃, 엉겅퀴 등 그 모든 자연물들에 깃든 ‘어둠’을 길어 올리는 시적 작업은 그것들을 굳은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가만히 입술을 대어 보고 간절한 입김을 불어 넣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