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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만
국내작가 문학가
출생지
경남 마산
작가이미지
하상만
국내작가 문학가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2005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간장』 『오늘은 두 번의 내일보다 좋다』 등의 시집과 『과학실에서 읽은 시1,2』 『문학시간에 읽은 시』 등의 교양서를 썼다. 교단문예상, 김장생문학상 대상, 김구용시문학상 등을 받았고, 쓴 책들은 우수문학도서, 세종도서 문학나눔, 책따세, 독서신문 등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되었다.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과 2022년 경기문화재단 기초예술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성향숙 시인의 시를 읽다 보니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영원히 살지 못하지만 “머리에서 발끝까지 외로운 영겁”을 지녔다. “부산한 직선들이 엎드려 고요한 지평선이” 될 때까지 우리는 고독을 발명하거나 발견하는 사람일 것 같다. 외롭고 심심하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이 중 어느 것 하나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로울 사람이 있을까. 이 네 단어는 뿌리가 같은 네 개의 가지에 불과하다. 성향숙 시인은 이 네 개의 가지에 색깔이 조금씩 다른 잎사귀를 매달아두었다. 눈부신 어둠으로, 피지 않은 꽃으로, 플라타너스의 간격으로, 때로는 문밖의 고독으로 색깔을 바꾸며 내게 안부를 묻는다. “안녕, 뭐 해”
  • 지방에서 올라와 수도권에서 사는 나는 햇수를 세어 보니 고향에서 산 날보다 이제 고향을 떠나 산 지가 더 오래되었다. 그동안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애를 썼는데 단어는 어찌어찌하여 고치게 되었으나 억양만큼은 아직 어쩌지 못하고 있다. 조심조심 이야기하고 있으나 술에 취하면 그 억양이 제대로 뻗어 나온다. 그 말과 그 억양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언어를 잃어버리면 사실 그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표준어라고 일컬어지는 이방의 언어로는 「몽혼주사」의 석찬이 성도, 「혼불」의 풍경도 제대로 보여 줄 길이 없다. 그때의 사람들을 그려 보는 방법은 그때의 언어가 아니면 안 된다. 어디까지가 가족이냐고 물으면 나는 가족 그림을 그려 보라고 한다. 거기에 그릴 수 있는 사람까지가 가족이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부탁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리는 아이가 드물다. 그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족이었다. 동네 사는 형들도 가족이었다. 「연옥분」의 이야기를 읽으면 누군가의 죽음이 내 꿈과 연결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연결된 사람은 수십 년간 만나지 못해도 가족이었다. 꿈속에 찾아온 성님을 보러 마침내 초상에 도착한 연옥분 씨가 업어 키우던 뱅도가 반백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도 가족이었다. 상주보다 더 서러운 울음이 가족을 증명한다. 현대 사회는 가족의 범위가 좁아져서 내 가족은 나밖에 남지 않아서 우리가 외롭게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시집은 색다름을 불러일으킨다. 새로움에 중독된 우리는 우리가 지워 가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 부끄러워서 내가 지우고 있었던 사투리로 시인은 그때를 완벽히 복원한다. 이 시집은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리움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시집은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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