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실체가 없기 때문에 허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자산이 제도와 기술, 신뢰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오늘날 대부분의 금융 자산, 예컨대 주식, 채권, 파생상품, 심지어 법정화폐조차도 물리적 형태가 아니라 디지털 기록으로 존재하며, 실물은 사라졌지만 그 기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자산들은 제도, 기술, 신뢰라는 비물질적 기반 위에서 작동하는 추상적 실재들이다.
화폐는 본질적으로 실물이 아니라, 기록되고 보증되며 교환 가능한 상태로 유지되는 신뢰의 정보, 즉 ‘장부’다. 사회가 그것을 교환 수단으로 인정하는 한, 조개껍데기든 지폐든 디지털 정보든 화폐로 기능할 수 있다. 이처럼 화폐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에 기반한 ‘기호적 실재’다. 비트코인은 이 구조를 가장 극단적으로 구현한 사례다. 그것은 금처럼 물리적 담보도 없고, 국가의 강제력에도 의존하지 않지만, 분산된 기술 구조와 합의 메커니즘을 통해 신뢰를 획득하고 교환 수단으로 작동한다. 특히 비트코인은 에너지 집약적 연산을 통해 거래 정보의 기록과 검증을 보증하며, 실물이 아닌 에너지 투입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독자적인 실재성을 획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