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도 넘게 잎이 떨어지”(「아름다워라」)는 나무에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이 있다. 인간은 의탁해야 할 무언의 존재에게 합장하고, 기대고, 울고, 꿈틀거린다. 그러나 미망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잠의 풀밭」)이 든다. 변영현의 시는 울음을 삼키는 아이처럼 격렬하지만 담담하게, 폭설이 내리는 삼나무 숲을 날아가는 까마귀처럼 장엄하게, 음을 소거한 채 잔혹한 세상을 보여 준다. “꽃들이 향기를 팔아 사려는 것이/끝없는 감옥이라 하면, 좀 그런가요?”(「난 좀 어지러운데」) 무심하게 묻고 “우는 사람 앞을 지나는” 무심한 행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두 “넘어져도 모르고 떨어져도” 모른다. “하얀 보자기를 덮어쓴 사람”(「야전 침대」)들의 도시에서 시인은 “누가 죄인인지 누가 시인인지/궁금하지 않”(「난 좀 어지러운데」)다. 모두 죄인이 고 시인인 세상. “태어났으니 사는”(「회전목마」) 우리는 우리 자신을 팔아 시를 쓴다. 과거도 미래도, 세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말하며 한낱 “끝없는 동그라미 속으로” 추락하며 “누군가는 시를 쓰고/누군가는 편지를 쓰고/누군가는 유서를”(「글자로 된 사람」) 쓸 뿐이다. “뿌리로 인해 뿌리째”(「부재중 전화」) 뽑히는 은행나무를 보며 “내가 하고 싶은 건/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라 읊조리며 살기 위한 발버둥이 곧 죽음의 길을 여는 시대를 증언한다. “부딪치는 소리가 살아 있는 소리 같고/부딪치는 소리가 부서지는 소리 같”(「호두알이 부딪친다」)지만 그것이 사물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듯 시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무의미한 시대를 견디는 길은 오직 시를 쓰는 행위. “온 세상 다 지울 듯/몰아치는 눈보라”(「까마귀」) 속에서도 “고요히 내려앉은/검은빛” 한 점을 흔들지 못하듯 시를 쓰는 것만이 “멀어서, 아득히 멀어서/따스한/만년 평온”(「티타임」)에 가닿는 유일한 길이며 등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