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경의 시는 서정(抒情)이라는 바탕 위에 쌓아 올린 유리성 같다. 자연을 자연이라고 말하고, 사람을 사람이라고 있는 그대로 말한다. 꾸밈이 없다. 언어를 비틀지도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깊다. 너무 깊어서 오히려 투명하다. 그 투명의 힘으로 불화를 꿈꾸지만, 그것은 시인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자세이기도 하다. “불화하는 오늘은 벌써 어제가 되었고, 그래서 오늘은 웃었다”(「그래서 오늘은 웃었다」)라는 진술에서 보듯이 낙천적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불의와 타협하지는 않는다. 강수경은 “영정도 위패도 없는 거짓분향소/조문도 조의도 없는 검정 리본”(「우리 심장은 아직, 뜨겁습니다」)을 보며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뜨거운 이성의 소유자이자, 탈탈 털려버리기만 하고 “맥없이 끝나버린 화상 면접”(「콤프레샤」)에 좌절하는 소시민이기도 하다. “꽃을 보려고/꽃을 뽑는”(「꽃」) 아둔한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강수경의 자세야말로 진짜 시인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