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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모든 전말이다
고영
시인동네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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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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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시인선

책소개

목차

제1부

가출·13/백지·14/병원 앞·16/동질감·18/유대감·20/면역력·22/보호자·24/기시감·26/상투적·28/당신의 책·30/우리는 점점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물질이 되어갑니다·32/동반자·34/오늘의 슬픔·36/아픈 새를 위하여·38/태초의 말·40/파우치·42/병원은 너무 모던해·44/난독의 얼굴·46/치명적·48/한 사람·49/내일의 슬픔·50/우리에게·52

제2부

당신은 나의 모든 전말이다·55/상실감·56/미시감·59/무중력·60/가질 수 없는 슬픔·62/이기적·64/상식적·65/채식주의자·66/전언·68/별점·69/관여자·70/세월 택배·72/방심 1·74/방심 2·75/이타적·76/유령들·78/이방인·79/후견인·80/쓸어내린다는 말·82/귀농·83/첫, 이라는 말·84

해설
오민석(문학평론가, 단국대 명예교수)·85

저자 소개1

1966년 경기 안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2003년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시집 『딸꾹질의 사이학』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감성 시 에세이 『분명 내 것이었으나 내 것이 아니었던』이 있다. 천상병시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가히》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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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2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108쪽 | 164g | 125*204*10mm
ISBN13
9791158966751

책 속으로

아주 평화롭게
식탁 위에 접시가 놓여 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접시 속에 살던 새 한 마리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접시 속에서 혼자 살던 새마저도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집을 나간 것이라고
도리어
미안해했다
---「가출」중에서

큰 눈을 가진 사람과
면사무소 간다

단양에 살면서도
단양은 멀고

가는 봄비는
가는 봄비의 행방을 모른다

흰 민들레와 노란 민들레의 효능에 대한 사소한 실랑이 끝에
우리는
사실관계에 집중하기로 하고
손을 잡는다

배후(背後)를 자처했지만
배면(背面)의 슬픔만 지켜봐야 하는 무기력

전입신고를 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수선화와 함께
가는 비와 함께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멀어진다

단양에 살면서도
단양은 여전히 멀고
---「동질감」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신은 의자에 잠겨 있었다. 의자 속에 무덤을 파고 부장품이 되어버릴 시를 쓰고 있었다.
훗날의 시집이었다.

요람에서부터 이미 늙어버린 당신에게서
소녀를 꺼내야 했다. 하지만 소녀는 고집스러웠고 집요했으며 과거형이었고,
결정적으로
의자를 너무 사랑했다.

그랬다. 의자는 믿을 수 없는 세포로 이루어진 유기체였다.
우물보다 깊고
신앙보다 더 간절한 세계에서 당신을
꺼내주고 싶었다.

무언가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땐
나는 이미 늦어버린 것

한 번만 알아 달라는 말을
한 번만 안아 달라는 말로 오인(誤認)하며

손도 잡기도 전에 가슴을 먼저 만졌다. 차가웠다. 썩어 문드러진 소녀의 심장이 묻어났다.

우리는 끝내 관계를 맺지 못했다.
---「면역력」중에서

그리고

나는 사랑을 슬픔한다.

나는 너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 짧은 머리칼과 부르튼 입술과 가녀린 목덜미와 초점 없는 눈빛과 연결되어 있다. 구부정한 몸과 검게 변한 오른쪽 가슴과 이지러진 얼굴과 연결되어 있다. 괴사가 진행되기 시작한 발목과 순간순간 거칠어지는 숨결과 연결되어 있다. 한 호흡의 생애와 한 움큼의 세계와 한 페이지의 유서와 연결되어 있다.

내 몸이 슬픔한다는 사실과 너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

요오드 용액의 붉은빛과 투명한 과산화수소수를 사랑한다. 상처를 소독하고 슬픔을 소독하고 생을 소독하는 액체. 부기(浮氣)가 빠지지 않은 너의 몸은 스펀지 같다. 나의 슬픔은 스펀지 같다. 암세포들이 뱉어내는 타액들. 몸 밖으로 분출되는 어둠의 절규, 너의 절규들. 본연의 너는 돌아오지 않고 점점 악화되어 간다. 전이되는 어둠의 세포들…… 매일매일 북받치는 슬픔을 사랑한다. 내가 슬픔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랑한다. 너의 고통을 사랑한다.

나는 슬픔에 중독되어 있다.
---「오늘의 슬픔」중에서

호박즙 89팩
뜯지 않은 홍삼진액 100팩
오리 & 다슬기 36팩
『항암치료는 사기다』(곤도 마코토 著, 장경환 譯, 문예춘추사)
채송화 씨앗
향마약성진통제 160정
상황버섯 300그램
겨우살이 소량
냉동고 속 오리 한 마리
『굶지 말고 해독하라』(안드레아스 모리츠 著, 정진근 譯, 에디터)
대나무숯 한 가마니
요오드 용액 1L
『뭇별이 총총』(실천문학사) 12권
유고작 수백여 편
인터넷 미납요금 28,350원
이성복
체 게바라(Che Guevara)
아바나

이것이 당신이 내게 남긴 유산이다
---「파우치」중에서

그제는 수선화를 심었다 하루 만에 꽃이 피기를 기대했지만 하루 만에 피는 꽃은 없었다 성급한 건 나 자신일 뿐, 꽃은 성급하지 않았다 질서를 아는 꽃이 미워져서 어제 또 수선화를 심었다 하루 만에 꽃을 보기를 기원했지만 하루 만에 민낯을 보여주는 꽃은 없었다 아쉬운 건 나 자신일 뿐, 꽃은 아쉬울 게 없었다 섭리를 아는 꽃이 싫어져서 오늘 또 수선화를 심었다 하루 만에 꽃이 되기를 나는 또 물끄러미 기다리겠지만 포기할 수 없는 거리에서 꽃은, 너무 멀리 살아 있다

한 사람을 가슴에 묻었다
그 사람은 하루 만에 꽃이 되어 돌아왔다

---「당신은 나의 모든 전말이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내가 생각하는 새의 감정보다
새가 가진 감정이 훨씬 깊다는 것을 알았다.

이해, 라는 말에는 참 많은 뼈가 숨겨져 있다.

2024년 12월
고영

[해설 엿보기]

이 시집을 읽다가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는 바로 “나의 모든 전말”인 당신이 부재하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 롤랑 바르트(R. Barthes)가 오래전에 『사랑의 단상』에서 짚어 냈던 그 이야기. “글쓰기는 그 어떤 것도 보상하거나 승화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당신이 없는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곧 글쓰기의 시작이다.” 사랑이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자리에 있다면, 결핍이 없는 당신이 존재한다면, 상상계의 판타지에서 우리가 빠져나오지 않았다면, 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재와 너무 친숙해서 부재의 자리에서 글쓰기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나의 모든 전말’이었는데 어느 날 그런 당신이 사라져 오로지 부재의 이름으로만 존재한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이때 글이란 원고지나 컴퓨터 화면에 기호의 형태로 시각화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신’의 부재 때문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독백이, 울음이 분명한 어떤 신음 같은 것이 흘러나온다면, 그것도 글이다. 글은 당신이 부재하는 곳에서 나오며, 부재의 밀도가 심할수록 밀도 있는 문장이 나오고, 가장 밀도 있는 문장이 시가 된다.

고영의 이 시집은 자신의 모든 전말이었던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 사람을 살려내는 이야기이고 살려내도 여전히 부재하는 그 사람을 다시 떠나보내는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이 시집의 시작이 부재라면 과정도 부재이며 종말도 부재이다. 이 시집은 용납할 수 없는 부재를 용납해야 하는, 터무니없는 현실에 대한 터무니 있는 이야기이다. 롤랑 바르트가 “잘 견디어낸 부재, 그것은 망각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듯이, 잘 견디어낸 부재란 없으며, 만약 부재의 고통에서 벗어났다면, 그것은 잘 견뎌서가 아니라 잘 망각해서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끝내 견디지 못한 부재에 관한 기록이고, 고영 시인이 앞으로도 그 부재를 잘 견딜 확률은 높지 않으므로 그의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부재의 글쓰기는 오로지 망각의 때에만 중단된다.

한 사람이 남긴 고통의 문장들을 읽다가 온점에 이르지 못하고 설핏 잠이 들었다.
아주 얕고 삭막한 잠이었다.

꿈결에 나는 누군가의 온화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그 목소리는 분명 실체를 가진 형상이었는데
새벽닭이 울자
홀연 사라져 버렸다.

지겨운 중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한 사람의 영혼이
새삼 지상이 그리워서 내 몸을 빌렸구나,
상투적으로 추측하고
상투적으로 아침을 먹었다.

눈에 가득 들어차 있지만
끝내 보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문장들의 상실감에 대해
생각했다.
한 사람이 남긴 고통에 다다르기까지
나는 일관되게
불면이었으며 불운했다.

예고하고 찾아오는 슬픔이 두려웠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형상을 하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오래전에 종적을 감췄던
내 귓속의 유령이
다시
나타났다.
― 「무중력」 전문

망각하지 못한 부재는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무의식처럼 끊임없이 돌아온다. 그런 부재를 잘 견뎌낼 수 없어서 “나는 일관되게/불면이었으며 불운했다.” 부재는 사라진 과거나 현재가 아니다. 그것은 “예고하고 찾아오는 슬픔”, 즉 반복해 도래하는 미래이다. 슬픔은 부재의 알리바이이고 부재의 끈질긴 부적(付籍)이다. 부재는 슬픔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형상”으로 옷을 갈아입고 “내 귓속의 유령”까지 깨우며 항상 “다시/나타”난다. 이 ‘다시 나타남’이 주체에게 부재를 계속 각인하므로 주체 안에서 부재는 현존이 된다. 시인의 글쓰기는 이 부재하지 않는 부재, 부재의 현존에서 시작된다.

프로이트의 손자는 ‘포르트다(fort-da) 놀이’를 통하여 엄마의 부재를 견딘다. 실패를 던지며 ‘포르트’라고 외칠 때 엄마는 멀리 사라지고, ‘다’라고 외칠 때 엄마는 돌아온다. 아이는 이렇게 상황을 상징화하면서 부재를 견디고 현존을 이해한다. 그러나 고영 시인의 부재는 부르지 않아도 오고 불러도 온다. 그것은 상징화를 영원히 거부하는 상상계이다. 그것은 주체와의 분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울상이다. 고영의 부재는 중력 없는 현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중력/무중력의 이분법을 횡단하며 ‘나’와 ‘너’ 사이의 거리를 없앤다.

이 시집은 배영옥 시인의 유고 시집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문학동네, 2019)와 대화적 관계 혹은 상호텍스트성의 관계에 있다. 시인 배영옥은 2018년 6월 11일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말기 암 환자에게 가장 혹독했을 투병 생활과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준 이가 바로 고영 시인이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점은 이들의 관계다. 지음(知音)이자, 동료이자,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연인일 뿐인 관계. 그러나 ‘아무 관계도 아닌 모든 관계’가 되어버린 관계. 그리고 6년여가 지난 이제야 고영 시인의 입에서 말이, 겨우, 흘러나온다. “보호자가 되고 싶었지만 끝내 관여자일 수밖에 없었던 그런”(표4글) 관계였다고. 말할 수 없었던 지난 시절을 침묵의 시간이라 한다면, 고영 시인의 현재는 침묵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시인의 산문]

상황이 있었다. 보호자가 되고 싶었지만 끝내 관여자일 수밖에 없었던 그런 상황이 있었다.
선택이었고, 한 사람을 건너가는 과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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