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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햇살의 아이•13/풍선의 아이•14/미니스커트 학교•16/그네 위의 시간•18/메모•20/무거운 연습•21/나팔꽃 아래•22/해독되지 않는 부호•24/노을에 비친 아이들•26/사실 그거 아세요?•27/비의 무대•28/물 위의 아보셋•30/모든 회색의 세계•32/편지 봉투처럼•33/협궤 터널•34/집이고 싶다•36 제2부 우리 오늘 밤에 만날까•39/자화상•40/돌이킬 수 없는•42/너에게서 달아나며•44/도마 1•46/도마 2•49/너는 블랙홀과 같다•50/양파•52/콜라병•54/에로배우•56/병든 자화상•58/폐허•61/김•62/그제서야 나는 평화를 찾을 것이다•64/도착하지 않은 향기•66/파란 창문 안의 두 마리 고양이•68/과속•70 제3부 총구 앞의 침묵•73/흑백의 초상•76/불가능의 온도•78/나는 쓴다•80/안개 속의 섬•82/열두 시•84/내 심장을 네게 건넨다•86/우린 모두 어둠•87/불안이 눕는다•88/호두•90/우산•92/행성의 아이•94/파리의 불빛•96/꽃잎이 닿는 동안•98/여름의 끝자락•99/빗속의 남자•100/남아 있는 형상•102/공기의 아이•104 해설 신동옥(시인·목포대 교수)•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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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날 보고 웃어봐. 내 머리끝엔 풍선이 매달려 있어. 색깔별로 다른 기분이 달려 있어. 빨강은 용기 파랑은 비밀 초록은 네 이름 네가 웃으면 풍선들이 먼저 웃고 나도 덩달아 하늘로 들려. 오늘은 바람이 말랑해서 정말로 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이렇게 나처럼 활짝 웃어봐. 네 마음도 둥실― 우리 함께 하늘을 여행해 볼래? --- 「풍선의 아이 전문」 중에서 너는 블랙홀과 같다. 입술은 없지만 모든 것을 삼키는 입 내 말 내 눈짓 내 하루의 끝과 시작까지 네 앞에 닿으면 무음으로 녹아버렸다. 너를 안고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붕괴되고 있었다. 너의 침묵은 검은 밀물 내 감정의 해변으로 밀려와 나를 잠식시켰다. 손을 뻗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다. 너의 눈동자는 어둠 헤어나지 못한 채 나는 자꾸 빠져들었다. 사랑이 아닌 사랑 사랑처럼 위장된 침묵 남은 건 굽은 시간 뒤틀린 기억 그리고 너 너는 블랙홀과 같다. 보이지 않아 더 선명한 고통 닿을 수 없어 더 지독해지는 잔상 --- 「너는 블랙홀과 같다 전문」 중에서 실재하지 않는다. 너는 말하지 않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고 부재로 너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나의 감정은 끝내 실재가 되지 못하고 언어는 갈 곳을 잃은 채 뒷걸음질 친다. 부재의 언어로 너는 다가와 말할 수 없음의 파도로 몰아친다. 닿지 않음으로 나를 부르고 잡지 않음으로 움켜쥐려 한다. 나는 네게 무너지고 무너지며 물보라와 같은 잔상을 남긴다. 너의 침묵과 부재가 내게 불가능의 온도를 남긴다. 다가설 수 없는 너의 슬픔과 내 뜨거움이 서로의 온도를 해명하지 못한 채 식어간다. 우리는 끝내 도달하지 못한 응답이다. --- 「불가능의 온도 전문」 중에서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그 단단한 껍질을 끝내 지켜왔을까. 아무도 쉽게 닿지 못하도록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채, 빛도 바람도 문턱 앞에서 멈추게 한다. 당신을 스치려던 온기들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돌아선다.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무리 두드려도 당신의 문은 스스로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슬픔은 손길보다 먼저 굳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당신에게서 새어 나오는 아주 미세한 숨결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그 앞에 오래 머물렀다. 당신을 열어보려던 모든 시도는 작은 균열조차 만들지 못한 채 나를 마모시켰다. 당신이 놓여 있는 테이블 위로 부드러운 조명이 내려앉다 사라진다. 나는 사라지는 빛보다 더 오래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 당신 그리고 당신 앞에서 끝내 닫히지 못하는 사람 --- 「호두 전문」 중에서 어두운 방 갈색 소파에 한 여자가 기대어 있다 팔걸이에 걸린 팔 아무것도 쥐지 않은 긴 손가락이 힘을 잃은 채 바닥 쪽으로 늘어진다 허리는 소파 깊숙이 가라앉고 어깨는 등받이를 넘겨 몸의 중심이 기울어진다 감은 두 눈 아래 검은 머리카락이 목선을 따라 흘러 천천히 쿠션 위에 풀린다 빛은 여자의 얼굴과 가슴에 머문다 숨을 막지 않는 밝기 말과 이름이 빠져나간 자리엔 자세만 남아 몸의 윤곽을 지탱하고 시간은 아무 저항 없이 아래로만 떨어진다 --- ?남아 있는 형상 전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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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어떤 감정은 너무 뜨겁고 어떤 감정은 너무 차갑다. 이 세계는 한 번도 나에게 적당한 온도로 닿은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쓴다. 내가 가진 온도의 끝을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는 뜨겁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차갑다고 말했지만 그 어느 쪽도 아닌 이 시집은 단지 내가 견딜 수밖에 없었던 불가능한 온도에 대한 기록이다. 2026년 4월 황중하 황중하 시인은 두 번째 시집을 내놓으며 시인은 자신에게 저 ‘이야기 지음으로서의 시 쓰기’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이 세계는 한 번도 나에게/적당한 온도로 닿은 적이 없다./그래서 나는 쓴다.”(「시인의 말」) 온도의 의미는 무언가? 표제시를 통해서 살펴 읽을 수 있다. “너의 침묵과 부재가/내게 불가능의 온도를 남긴다.//다가설 수 없는 너의 슬픔과 내 뜨거움이/서로의 온도를 해명하지 못한 채/식어간다.//우리는 끝내/도달하지 못한/응답이다.”(「불가능의 온도」) 그러니까 저 첫 시집이 출발한 꿈의 배꼽의 자리, 거기서 추동된 배회의 의미에 대한 사후적인 추인이 바로 이 시집의 시작이라는 선언이다. 이 시집은 “그 어느 쪽도 아닌/이 시집은 단지 내가 견딜 수밖에 없었던/불가능한 온도에 대한 기록이다.”(「시인의 말」) 별에게 나를 줄 수 있을까. 아주 짧은 찰나라도 그 궤도에 닿을 수 있을까. 별의 아이를 낳고 싶다. 행성의 아이를 기르고 싶다. 예정된 파국이라도 너를 안고 싶다. 허공을 향해 팔을 뻗는다. 신음하며 시들어간다. 빛은 멀어지고 나는 점점 더 작아져 간다. ― 「행성의 아이」 부분 별에 가닿기 위해서 허공으로 자맥질하듯 뛰어드는 아이가 있다. 무중력 속으로 몸을 길게 늘이듯 뻗어 나간대도 별에 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별에 닿으려는 아이의 열망은 그러하기에 역설적으로 아이의 것이 될 수 없다. 물리적인 현실 밖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꿈과 열망이란 부작위와 불가능을 상수로 거느리기에 숭고한 것 아닌가. 별에 가닿으려는 아이의 열망은 ‘별 그 자신’의 소관이다. 별의 궤도에 몸을 부리지 않고서는 별과 한 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정된 파국이다. “한번 손대면 계속 만져야만 하는 중독”(「우리 오늘 밤에 만날까」)과도 같이 충동의 원한에 사로잡힌 몸부림이 꿈과 열망의 도저한 깊이를 완결해 간다. 그러니까 ‘불가능한 온도’는 바로 ‘온기’를 품어 안고 불길을 향해 다가가는 몸짓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쓰고, 다시 쓰고, 끝없이 다시 쓰다 보면 꿈 가까운 것이 살아 꿈틀거리던 최초의 발화에 가닿을 수 있을까? 맨 처음 ‘~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어 안았던 바로 그 처음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되묻다 보면 어느 사이 몸피는 작아질 대로 작아져 보이지 않는다. 울음도, 신음도 잦아든 다음 되돌아본 사위(四圍)에는 “은빛 빗줄기 속에/보랏빛 나팔꽃이 피어 있다.//두 마리 다람쥐가/고운 꽃잎 우산을 작은 손에 꼭 쥔 채/서로의 온기에 기대고 있다.”(「나팔꽃 아래」) 기대고 있는 것들이 뿜어내는 온기다. 저도 모르게 몸을 기대고 보는 세계다. 헛것일까? 환각일까? 내가 그것에게 다가가 마주 서기 이전에, 무언가가, 이미 저를 나에게 보내오고 있다. 제 온몸을 나에게 이미 보내오고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 ― 신동옥(시인·목포대 교수) [시인의 산문] 사라지지 않은 감정은 끝내 다른 온도로 살아남는다. 이것은 가장 조용한 상처가 남긴 불가능한 온도의 흔적 이 시집은 그 잊히지 않는 체온에 관한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