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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부산에서 태어나 2017년 《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당신이라는 이름의 꽃말』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기아자동차 홍보실을 거쳐 현재 영산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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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72g | 125*204*5mm
ISBN13
9791158967772

책 속으로

사람이라서
죽을 때까지 외로운 것이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사람이라서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힘이 난다

사람이라서
함께 걷는 이 길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대 벌써 그립다
--- 「사람이라서 전문」 중에서

도다리인지 광어인지
눈만 보고 단번에 맞히는 것도
쉬운 일 아니지만
당신과 나
그 마음의 거리 생각하며
간(間)을 맞추는 것은 더 깊고 어려운 일이다
마음 주네, 마네 하지 않아도
울컥 내 안에 국물 넘칠 때
알이 꽉 차고 살 오른 도다리를 넣어야 하지
냄비 속도 바다이다
도다리도 나도 당신도 참 멀리까지 와서
이렇게 만났다
된장국도 깊고 당신 마음도 깊다
도다리가 부서지지 않도록
국물 휘젓지 않아야 하듯
당신과 나만큼
여리고 여린 쑥 풀면서
나는 연신 사랑한다 사랑한다 했고
그대는 끝내 싱겁다 싱겁다 했다
우리는 그해 봄날 그렇게
잃었던 입맛만 겨우 찾았다
--- 「도다리쑥국 전문」 중에서

죽어도 사는 법 있는지
누구나 죽으면
별이 될 것 같은 밤
친구 장례식에 간다
아무리 달려가도 서로 어긋나는 길인데
도착과 출발은 같은 자리였구나

별 되지 못한 사람들도
먼지로 돌아갈 때는
잠깐 빛 내는가 보다
그러니 약속의 땅 닿기도 전에 호상(好喪)이란다
실없이 한가한 사람들 호들갑에도
영정 속 너는 죽은 줄도 모르고 웃고 있다

혼자 온 길 아는 척
혼자 갈 길도 가벼운데
영정 앞 내 절망은 부족하여
저편으로 건너간 너에게 안부도 묻지 못하고
너 여의고서야
나는 이제 얼마나 가난한가

전생을 두고 간 친구에게
그리움은 얼마나 큰 사치인가
다음에 다시 만날 것처럼 인사하는 일
여행자에겐 일상이지
천천히 발효되는 슬픔에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기로 한다
--- 「별똥별 전문」 중에서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3월 보내고
2호선 광안역 5번 출구 앞으로 올라서면
북극성처럼 벚나무들이 길 위에 박혀 있다
출퇴근길 지나가다 난데없이 정이 들어
한 시절 버찌의 추억 더듬거리며
부질없이 4월의 남은 날들 기웃거린다
봄바람이 질금질금 꽃눈 핥으면
벚꽃들이 이리저리 몸 뒤집으며 꿈을 꿀 것이다
사람들은 백설(白雪) 백설
나무의 눈부신 잠결에 늙어가다가도
꽃의 허영심을 탓하며 헛된 아름다움을 치근대다가
삼삼오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테고
혹은 봄 왔다고 차곡차곡 쌓아놓은
실없는 약속들 수북하겠지만
나는 추위를 견디지 못했던 야윈 길고양이처럼
햇살로 배 채우던 벚나무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가도 그만 안 가면 더 좋은 사랑이여
우리는 내일을 예측할 수 없어서 후드득 떨어지지도
가슴을 치지도 못할 4월로 남겨지겠지만
꽃도 사람도 애초에 스산한 인연에서 살아남는 것임을 안다
4월에는 우리 모두 무사했구나
--- 「난데없이 정이 들어 전문」 중에서

돈이 없어야만 가난한 것 아닙니다
곁에서 같이 울어 줄 사람 없으면 이미 가난합니다
가슴에 이름 하나 묻고 사는 사람은
봄마다 서둘러 피었다가 먼저 시드는 목련처럼
찢어지게 가난합니다
그리움 남기는 사람도
그리움 달래는 사람도
생애를 걸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던
그 가난한 말들을 헤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사랑을 쟁여두었다 한들 곁에 없다면
가지마다 무거운 꽃잎 달고
목이 꺾이도록 울다 지는 목련 아래서
사랑은 부끄러워집니다

---「목련의 문장 전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함께한
그 많은 시간들
마음 깊은 곳에 익혔다가
고운체로 한 번 두 번 걸러내니
그리움만 남았습니다.

2026년 4월
정성환

무언가를 ‘정의’하려고 언어의 사다리를 하염없이 올라가다 구름 속에서 기원을 잊어버리거나 개념의 기초를 파고 내려가다 깊은 어둠에 갇혀 지향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비, 절망, 사랑, 죽음, 불안 등을 생각하다 ‘마음’에서 멈추고야 마는 경우도 있다. 그쯤에서 ‘현상은 존재하나 실제는 고정할 수 없다’라는 애틋한 정의가 가로막는다. 어떻게 표현해도 같은 곤란에 직면하겠지만,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명명된 물질과 비물질의 복합 유기체다. ‘곤란’을 앞에 적어놓고도 ‘정의’를 통해 해명하려는 욕망이 끝없이 일어선다. 가령 ‘영혼’은 실체가 아니라 전기나 화학 작용 같은 변화다. 하지만 욕망은 충족에 닿지 못하고 끝없이 미끄러질 뿐이다. ‘마음’의 본령에 닿지 못하므로 그 변화를 보는 것 외에 달리 도리가 없다. ‘사람의 마음’은 오롯이 개인의 것이면서 동시에 매 순간 ‘통섭(consilience)’의 지점들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성환 시인에게 ‘사람의 마음’은 그 스펙트럼이 인간의 정신 활동 즉 사유, 의식, 감정, 태도 전반에 걸쳐 있지만, 서정시라는 양식으로 표현되기에 그 마음은 감정의 일렁임과 이후 잔여에 애잔하게 펼쳐진다. 정성환 시인은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직선적 탐구가 아니라 그 변화의 다양하고 세밀한 양상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해서 넓은 의미에서 존재의 기획을 완성하고자 한다.

차마 놓지 못하는 그 사람을

눈물로 다 쏟아내고

화엄사 가는 길

추스르지 못한 생각들이

내 뒤를 밟는다

마음속 몇 줄 기도문

잊겠다는 다짐을 왜 부처에게 하나

삼백 년 검붉은 화엄매가

각황전 앞에서 염불을 왼다
― 「화엄사 홍매화」 전문

봄의 전령처럼 SNS를 달구는 ‘화엄사 홍매화’는 실체이면서 동시에 완고한 상징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화엄 사상은  법계연기(法界緣起)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즉,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봄, 새해의 시작, 희망이라는 의미를 담아 화엄사 홍매화를 반긴다. 하지만 매년 그 자리에서 피었다 지고 인내하고 다시 피었다 지는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는 의미에서 홍매화는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상념과 같다. 인용한 시처럼 “차마 놓지 못하는 그 사람을//눈물로 다 쏟아”냈다고 믿었지만 “추스르지 못한 생각들”이 “마음속 몇 줄 기도문”이 되어 시인은 ‘각황전’ 앞 화엄매에 비유되어 ‘잊겠다는 다짐’의 기도문을 염불로 왼다. 그것은 봄만이 아니라, 「가을의 습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문득 회동 수원지 시원한 바람 한 됫박 끌어다/막막궁산(莫莫窮山) 사람의 마음 뒤적이며/그 쓸쓸 달래면”서 몇 그루의 ‘물오리나무’와 ‘청둥오리’에 투영된 감정의 변화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 백인덕(시인)

[시인의 산문]

한낮에도 여우 울음소리만 들린다는 외로운 사람의 마음 골짜기. 그 깊은 곳 수심(水深)을 재는 향기가 있다. 쥐었다 풀었다 쥐었다 풀었다,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긴 겨울 오기 전 가을 국화의 향기는 참 짙다. 떠날 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운명이나 팔자 같은 건 모르지만 평생 가슴에 남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은 안다. 은하수 덕분에 길 찾는 쇠똥구리처럼 먹고 사는 일로 뒷걸음질 치더라도, 사람의 마음속에서 길을 찾는다. 먼 훗날 오늘을 떠올리며 그때는 몰랐었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반짝반짝 빛났던 별이었음을. 빛나는 것은 누구라도 외로운 것이고, 빛나본 것은 언제라도 잊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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