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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망토 - 13/어항 - 14/푸른 셔츠 - 16/가방들 - 18/손톱 - 20/달아난 사슴 - 22/사랑의 도그마 - 24/건조주의보 - 25/하드보일드 - 26/물고기자리 - 28/덤불 - 30/두 번 - 32/첫사랑 - 34/우리의 르완다 - 36/계단과 목도리 - 38/밤 - 40/기다리는 류에게 - 41/환생 - 44 제2부 피리 - 47/조력자 - 48/한파 - 50/휴양지 - 52/흰 티셔츠 - 54/부서지는 집 - 56/옷장 - 58/얼룩말 사이에 있습니다 - 60/이곳이 밤이었을 때 - 62/시네마테크 - 64/엄마와 열기구 - 66/메리고라운드 - 68/정지 화면 - 70/빈집 - 72/홈리스 - 74/난간에 앉은 사람 - 78/세미나실 - 80 제3부 덩굴기계 - 85/가만한 세계 - 86/검은 원피스 - 88/종말론 - 90/욕조 - 92/좀 전까지 불꽃이 피어올랐다 - 94/도끼 - 96/사라지는 가계 - 98/피뢰침 - 100/블라인드 - 102/유리 포말 - 104/돔 - 105/일기 - 106/유리창의 세계 - 108/얼룩 - 110 해설 고봉준(문학평론가) - 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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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나의 행방, 나의 종교, 나의 식성.
무엇이 문제일까. 답변이 길어지고 있다. 소화에 전념하던 대장이 대장을 벗어나려 할 때. 눈동자가 사라지는 윙크가 반복될 때. 감정이 들끓는다. 쫓기는 토끼의 두 귀처럼. 두려운 등을 감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천이 필요했을까. 나는 나의 예법을 지키고 싶다. 악기로든 망치로든. 때론 기다란 두 귀를 한 손에 쥐고 들어 올려야 보이는 진심이 있다고. 거기에 전류가 흐르기 시작하면. 손톱처럼 길어지고, 구토처럼 세상을 향하는. 불타는, 나의 망토가 시작되었다. --- 「망토」 중에서 한쪽 문만 열린 트럭 화물칸을 보면 들어가고 싶었다 죽고 싶다는 친구에게 부패하는 사체의 이미지들을 전송했다 이곳에서는 얼마의 빚이 줄지 않았다 어제의 베개에 어제의 냄새가 가시지 않았고 필요한 건 내일의 칫솔과 돌아올 계절에 신을 구두라 믿으며 가끔씩 갇힌 사람을 떠올렸다 잠긴 화물칸 속 어둠에서 어둠으로 실려 다니는 지하철을 기다렸다 연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육중한 트렁크를 끌고 가는 자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죽고 싶다는 친구에게서 오랫동안 답이 없었다 이상한 실체와 이상한 믿음의 간격으로 삶은 끊김 없이 계속되었다 --- 「하드보일드」 중에서 기다릴게, 말하면 앵무새가 되고 기다려, 말하면 물어뜯는 류에게서 류가 오면 더는 류가 아닌 것 같아 이런 고백도 괜찮다며 류는 기다릴까? 웃으며 말하는 게 어려워 울며 말하는 것보다 흠뻑 젖어야 빛나니까 길에 떨어진 동전처럼 오직 반짝이는 일에 온통 마음이 뺏겨 이곳에 와서야 도착하고 싶어졌어 눈을 감고 맞추기 게임을 하고 싶고 류에게 보랏빛 입술을 주고 싶고 매일매일이 생길 테니까 매일매일이 죽을 테니까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며 연달아 발생하는 기포들 류에게서 류가 생기고 류가 망치고 류가 배신하고 류가 달아나 이런 고백도 괜찮다며 류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 웃으면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아닌 바닥이 드러나고 내 옆에는 끌어당겨 덮을 담요가 생기고 같이 끌려오는 버터 향 가득한 어둠과 어둠의 긴 꼬리가 있어 꼬리에서 꼬리가 돋아나는 무생물의 긴 밤이 아주 천천히 우리 머리 위로 무너져 내려서 류의 노래에는 류가 없고 류의 책에는 류가 한가득 목에 두른 흰 레이스의 구멍들처럼 류는 자유자재로 류를 빠져나가서는 돌아갈 곳 없어 류가 되고 마는 그런 돌림 노래로 기다리는, 길어지는 류 먼 훗날 만났던 --- 「기다리는 류에게」 중에서 이리 온 나는 너희를 사랑한단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은 다 내게로 온단다 사랑받고 싶은 아이들도 나의 피리가 연주하지 못하는 음악이 없고 너희는 부르지 못하는 노래가 없으니 우리는 아름다우리 피리가 멈추지 않는 한 내 너희를 위해 사랑의 감옥이 되리라 --- 「피리」 중에서 나는 아프지 않아요 가끔 아프고 싶습니다 이러다 죽겠어, 라는 말을 가볍게 나누고 싶어요 그런 사이라면 초록 돗자리를 펼치고 볼을 쓰다듬고 입을 벌려 혀 안쪽에 돋아난 혓바늘도 보여줄 겁니다 기분을 물어도 될까요 얼룩말 사이에 있습니다 가만히 달려볼까요 아플까요 다리가 흔들려서 물감을 쏟아서 낙서한 얼굴에 낡아빠진 오버롤을 입어서 얼음땡 놀이를 시작할까요 술래의 손이 닿기 직전 얼음을 외쳐요 꼼짝없이 땀 흘리는 얼음이 희망 사항입니다 이 젖은 손아귀에 오랫동안 쥐고 있던 기쁨이 있었다고 열에 들떠 말하곤 했어요 시럽이 흘러 온통 끈적거리는 돗자리로 모여들던 얼룩말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무늬를 만지며 서서히 달콤한 기분에 빠져들다 보면 어김없이 아픕니다 두 번째 혀가 돋아나고 두 번째 피부에 발진이 퍼지고 세 번째 초원에서 사라진 얼룩말과 죽은 술래들을 목청껏 부르다 맞이하는 저녁, 마차 소리를 따라 이곳까지 왔다고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가벼운 안부를 나누며 서로의 흐린 이마를 검은 줄무늬 손으로 짚어요 뜨거운 입김과 차가운 발바닥을 대보는 그런 사이라면 간병인으로 잠들 겁니다 깨어나면 아픈 기억은 사라지고 혼자더라도 놀이는 끝을 모르고 몇 번을 죽어도 기쁨은 줄지 않아 나는 아프지 않아요 이것은 얼룩말의 말입니다 --- 「얼룩말 사이에 있습니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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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영의 시는 도래한다. ‘도래’는 일종의 과잉 사건이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으며, 예측할 수 없으므로 준비할 수도 없다. 그것은 철학자 데리다가 말했듯이 이름을 붙일 수 없는 타자, 법과 언어의 체계를 흔드는 주체이다. ‘그’라는 인칭대명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화자가 이름 붙일 수 없는 타자를 호명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 아닐까. ‘유리창의 세계’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는 유리창을 마주한 채로 자신이 아는 바가 없는(“나는 그를 모릅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이 기다림이라는 사건에서 ‘나’와 ‘그’의 관계는 비대칭적이다. 언제 올지도 알 수 없는, 심지어 인상착의조차 모르는 ‘그’를 기다리는 동안 “유리창의 세계는 어떤 자연법칙을 생성”한다. 가령 어느 날 오후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누군가/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한 인물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창밖으로는 시간의 흐름이 연출하는 풍경이 무심하게 흐를 것이고, 유리창에는 창문을 마주하고 선 화자의 모습이 투영될 것이다. “유리창의 세계는 쉬지 않고 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라는 진술에서의 ‘그’가 바로 이 풍경들이다. 그 풍경 속에는 화자의 내면도 존재하리라. 중요한 것은 유리창에 비친 풍경의 현상학 자체가 아니라 이리영에게 시가 도래하는 방식이 정확히 이와 같다는 사실이다. 이리영의 시는 하나의 명시적인 세계를 구축하려는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불현듯 화자를 향해 도래하는 세계의 음화(陰?), 그 산란하는 언어의 파편들이다. 그녀의 시적 진술들이 대체로 잘려진 상태로 제시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리영의 시에서 도착이라는 사건의 주체 자리에는 ‘그’라는 텅 빈 기표만 놓여 있을 뿐 구체적인 대상으로 채워지진 않는다.
당신의 셔츠가 참 푸르다 생각하며 그 생각에 오래 머물다 보니 입이 마르고 그만 셔츠에 손을 담그고 싶어져 가본 적 없는 바닷가와 그곳을 떠도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등지려는 뒷모습들과 셔츠의 단추는 금세 날아가 버릴 듯 새하얗고 당신은 단추를 다 채우는 사람, 자두를 한입 베어 물고도 소매를 걷지 않는 사람, 반듯한 깃 아래가 맑게 차오른 사람, 깃 끝 채워진 아주 작은 단추를 만지작거리는 사람, 구김살 없이 감춰진 셔츠 끝단을 바지 위로 더듬는 사람, 당신은 어젯밤 머리맡에 한 컵 따라 놓은 물처럼 미지근한 셔츠에 팔을 서둘러 넣고는 푸른 소매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것들을 오래 생각하다 그만 발밑에 컵을 엎지르고 발이 젖어 젖은 발로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서면 가본 적 없는 바닷가와 그곳을 누르는 둥근 자갈들과 그 자갈 위를 영원히 뒹구는 내 손아귀에서 자두씨가 말라가고 그 물기에 손바닥이 잠시 푸르러지는 - 「푸른 셔츠」 전문 이리영의 시는 대체로 감각과 이미지의 문법에 의존하여 전개된다. 이것은 그녀의 시편들이 의미의 계기적 연쇄를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의미의 연쇄와 달리 감각과 이미지의 문법에는 연속성만큼이나 강렬한 비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심리주의 소설에서의 의식의 흐름처럼 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의 층위에서 그 연속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망토의 언어라는 사실에 감각과 이미지의 문법이 더해짐으로써 이리영의 텍스트는 종종 오리무중, 불가해한 텍스트의 한계지점까지 나아간다. 이러한 특징은 시적 진술을 제시하는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 편의 시가 상당한 수의 연(聯)으로 분절되어 있다는 것, 그 분절 사이에 의미의 연속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요컨대 이리영의 시에 등장하는 수많은 분절은 그녀의 시적 사고가 감각과 이미지의 층위를 따라 전개됨으로써 발생하는 필연적 산물처럼 보인다. - 고봉준(문학평론가) 시인의 산문 시드는 것은 휘고 구부러진다. 시드는 것은 더욱 시든다. 유연하고 완강하게. 끝나지 않은 한 사람이 뜨거워진 얼굴로 말하는 것 같다. 부끄럽지 않은 삶은 없다고. 우리 사이로 쏟아지는 것을 빛이라 읽는다. 시인의 말 내가 기르던 것은 모두 바닥에 떨어진다. 바닥이 아름다워지는 일 우리 사이로 빛이 무수히 도착한다. 2025년 8월 이리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