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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찾습니다
이상남
시인동네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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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시인선

책소개

목차

제1부
내일인지 꽃인지 모를•13/신 몽유도원도•14/멍•16/무지개가 뜰까요•18/홍시•20/아웃백•21/카페인 우울증•22/날•24/걷기 명상•26/그만큼이다•28/아슬아슬하다•29/팽이•30/자정 넘어 숙면•32/배롱나무 간지럼•34

제2부
꿈•37/더블린 공항의 빈 맥주잔•38/하노이 밤거리•40/아를의 그날처럼•42/식탁을 마주하는 일•44/아침과 밤의 돌림노래•46/껍데기가 산다•48/민낯•49/아기 인형 품에 안고•50/아침을 머금고•52/초록을 잡아먹은 나의 도시•54/안면도•56/시묘살이•58/능소화 건너서•60

제3부
벼락거지•63/배꼽을 파다•64/주름 꽃•66/달 봐•68/딸린 식구가 있어요•70/버블 세차 중•72/아일랜드의 소처럼•74/한숨•75/빈집 고양이•76/원시인 박•78/돋아나는 소리•80/소낙눈•82/불을 놓다•84/수묵화 치기•86

제4부
연오랑 세오녀•89/별이 없는 밤•90/바람을 찾습니다•92/바구미•95/술래잡기•96/만다꼬•98/과메기•100/고등어 추어탕•102/그만 주깨라•104/무너진 틈새를 달리는•106/와이래산노•108/서숲 연가•110/갱시기•112/아파트의 힘•114/왜,•116

해설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117

저자 소개 1

경북 포항 출생.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하였다. 2015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 평택문인협회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시와사상문학회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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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202g | 125*204*7mm
ISBN13
9791158967765

책 속으로

오늘도, 삼각김밥인가요
멸종을 꿈꾸는 계약직 일자리만 남았나요
AI를 모르는
대학 졸업자의 특혜인가요
자소서에 더 이상 쓸 말이 없어요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알바 파먹기
시급 일만 삼십 원의 경력을 버젓이
직조할 수도 없고
이자만 갚고 있는 학자금 대출을 까발릴 수도 없고
밤낮없이 히키코모리를 꿈꾸는
내 취미를 내세울 수도 없잖아요
비가, 또 오려나 봐요
마른 가시에 달라붙는 저 축축한 공기 방울들
쩍쩍 갈라진 내 좁은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열릴까요
미쳐버린 지난 2월의 철쭉처럼
나도 언젠가 다발로 피어날까요
내일인지 꽃인지 모를
--- 「내일인지 꽃인지 모를 전문」 중에서

지독한 푸닥거리의 꽃
꽉, 다문 상처 위로 새어 나오는
비명의 시작은
귓불을 치닫는 천둥소리였다
처음이 어려웠지
습관은 내성이 되고
반항을 떠나 순종을 낳았을까
하염없이 나를 놓아
의식은 멍해지고
초점 잃은 눈망울이 향해 있는 허공
이글거리는 불꽃
화끈거리며 피어올라
서서히 파고드는 통증
너무 아파서
너무 뜨거워서
못내 마법을 걸어보아도
점점 더 도드라지는
얼룩,
핏빛 불꽃이 시퍼런 멍울로 피어 나와
덕지덕지 어룽거리는 울음을 달래고 있다
멍든 하늘을 뒤집어쓰고
하염없이
불멍이다
---「멍 전문」 중에서

커다란 바위 하나가 공중에 떠 있다

언제 떨어질지
어디로 떨어질지
내 몸
허벅지 동맥을 타고
혈관 조영제가 머리끝으로 쏘아지고
번개가 번쩍 스쳤을 때
오롯이 드러난
내 머릿속 꽈리의 정체
점점 부풀다
마침내 터질까 봐
저 바위 떨어질까 봐
아슬아슬한데

몇 날 며칠째
의료 파업 대란 끝날 줄 모른다
--- 「아슬아슬하다 전문」 중에서

입이 퇴화된 식탁은 말이 없다

고개만 삐걱거릴 뿐
한결같이 집을 지키는 붙박이
시선을 깔고
된장국에 만 침묵을 먹는다

콧속으로만 흥얼흥얼
도무지,
탈출을 꿈꾸지 못하는 식탁의 노래
이것은 서서히 굳어온 습관이다

멀뚱멀뚱 바라보다
빼곡하게 불어나는 혼잣말
배고픔만 우적우적 씹어대는
돌덩이들의 번식

말이 명치끝까지 차오르자
불안한 침묵을 서둘러 상추쌈에 싸 먹는다
입은 있고 말은 없는
오래된 부부가 식탁을 마주하는 일

말이 퇴화된 입들의 우아한 일상이 된다
--- 「식탁을 마주하는 일 전문」 중에서

나는 95년산 아파트 16층에 산다

봄, 햇살이 퍼부었다
남향 가득 코로나19가 득실거렸다

강 건너로 세워진 타워크레인
역세권 초품아가 대세란다
몰려드는 사람들
사라져가는 사람들
벌떡벌떡 일어서는 아파트마다 채워지는 신고가

몸 품 팔아 사느라
돈 눈이 어두웠다

기회를 놓쳤다
퇴직을 했다

나는 벼락거지가 되었다

---「벼락거지 전문」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삶의 상처
말 없음의 인내

무심히 지나쳤던
발밑의 꽃을 새롭게 본다.

평범한 풍경에서 발견하는
낯선 슬픔을 베어

작은 파동으로 전하고 싶다.

2026년 4월
이상남

‘포항’ 하면 떠오르는 것이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전설인데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157년)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랑이 미역을 따러 올라섰는데 바위가 움직이더니 연오랑을 싣고 일본으로 갔다. 연오랑을 본 일본 사람들은 그를 신이 보냈다고 여기고 왕으로 섬겼다. 세오녀는 남편을 찾다가 마찬가지로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가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자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고,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말에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의 귀환을 요청했으나, 연오랑은 하늘의 뜻이라며 돌아갈 수 없다고 하였고, 세오녀가 짠 고운 비단을 주며 “이것으로 제사를 지내라”고 하였다. 그 말대로 제사를 지내니 다시 해와 달이 빛났다. 이때 제사를 지낸 곳이 영일현(迎日縣)이다. 태양신에 관한 한국의 유일한 신화로 일본 태양신 신화와도 비교되고 있다. 이 설화를 바탕으로 하여 시를 이렇게 썼다.

도구리 바다에 하늘이 떴다 젖은 모래 위로도 나부끼는 하늘, 바람이 분다 그대 향한 마음이 급해 구름을 누르고 하늘이 분다 햇살 여미고 몽글몽글 피워낸 보고픈 마음 웅크린 산허리 끼고 오롯이 전해지는 마음이 분다 이우는 그림자 종종걸음으로 어둠 한 칸씩 잘라먹으며 여전히 그리움이 분다 그 아래로 아래로

달빛이 녹여 내리는 물

가늘게 뜬 달

일렁일렁 바람에 겨워 하늘이 흐른다

눈시울에 겨워

그리움이 출∽렁 출∽∽렁

가없이 떠오르는 연오랑 세오녀
― 「연오랑 세오녀」 전문

도구리는 함지박의 제주도 사투리라고 한다. 시인은 이 전설을, 사라진 연오랑에 대한 세오녀의 그리움으로 풀어냈다. 태양신이 어떻고 달과 별이 어떻고 다 필요 없고 오직 바람이 “종종걸음으로 어둠 한 칸씩 잘라먹으며 여전히 그리움이 분다”로 인식했다. 일본에 간 연오랑을 향한 세오녀의 그리움은 시인의 포항에 대한 그리움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포항 앞바다의 “달빛이 녹여 내리는 물”을 떠올리고 일렁일렁 바람에 겨워 하늘이 흐르면 “눈시울에 겨워//그리움이 출∽렁 출∽∽렁//가없이 떠오르는 연오랑 세오녀” 전설이니 시인의 몸은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마음은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시인이 설화 속의 두 사람처럼 고향을 만나는 날이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포항이 낳은 시인이라는 것이다. 이번 시집 출간을 계기로 이상남 시인이 포항이 낳은 대표적인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시인의 포항 이야기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되었다는 예감이 든다. 여성 시인인데 이름이 상남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에서 여성성보다는 남성성을 자주 느끼게 된다. 이 상남(常男)을 한국시문학사는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시인의 산문

세상은 너무 많은 말들로 넘쳐난다. 그 소란스러운 언어의 파도 속에서 끝내 가라앉은 투명한 침묵을 건져 올리는 일. 진실은 단어와 단어 사이, 마침표가 머물다 간 자리의 서늘한 여백에 숨어 있다. 소음을 거르고 남은 순수한 침묵 속에서만 비로소 사물의 낮은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 한 편의 시가 누군가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그늘이기를 바란다. 자기만의 고요를 마주하게 하는 정갈한 침묵이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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