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의 시세계를 몇 개의 주제어로 규정하거나 예 단하는 일은 시와 시인에 대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시인의 감수성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물고기처럼 재바 르게 변하거나 계량 할 수 없을 만큼 무궁하게 펼쳐지 기 때문이다. 시는 한순간의 집약적이고 집중적인 감각 을 언어화한 즉각적인 형태의 예술 양식이다. 이는 일정 기간 동안 지속해 온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대상이 주는 인상을 감각적으로 구조화하는 언어조직이라는 특징이 강하다. 시는 하나의 감정을 오래 견지한 사유의 결정체라기 보다는 찰나의 순간을 잡아내어 감각화한 장르이다. 즉 물적인 감각으로 사물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유려한 언 어로 구조화하는 언어기술자가 시인의 직업이다. 따라 서 한 권의 시집 속에는 계획 없이 떠돌던 시인의 동선 動線과 높낮이가 다른 마음의 움직임, 일관되지 않는 선택의 조각들이 전기선처럼 얽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권의 시집 속에는 오랜 기간 동안 집약된 시인의 생이 묻어나거나 사유의 흐름 이 배면으로 흐르고 있다. 어쩌면 미처 시인이 알 수 없 었던 일관된 세계관은 각각의 시를 통해 더 명확하게 드 러나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