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내가 결혼식을 허례허식이라 깔보면서도 욕망해 왔음을 깨달았다. 내가 나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되기를, 그 시작이 타인에게 목격되기를 원한다는 것도. 긴 동거를 이어오던 나는 배우자와 논의 끝에 결혼이 인생에서 중요한 의례라는 걸 받아들였다. 마침내 치른 결혼식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뜻깊고 벅차오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기진맥진했다. 반지도 스튜디오 촬영도 하지 않았고, 부케와 헤어도 주변 도움을 받고, 이래저래 꽤 많은 걸 생략했는데도 신경 써야 할 게 지나치게 많았던 탓이다. 나는 그 기진맥진이 현명한 소비 주체로서의 감각이라고, 돈을 아껴서 잘 쓰려다 보니 얻은 긴장 때문에 소진되어 느끼는 감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로 소비의 주체이기는 했을까? 어쩌면 나는…… 소진된 게 아니라 소비된 게 아니었을까?
『수상할 만큼 완벽한 결혼식』은 결혼식이라는 의례를 통해 웨딩 산업의 구조 그리고 현대사회의 소비주의적 문화를 낱낱이 비춘다. ‘취향을, 가치관을, 너를 증명해라’, ‘남들과 다르기 위해 돈을 써라’……. 사람들은 남달라지고 싶을수록 늪에 빠진다. 소비라는 단어가 써서 없앤다는 의미라는 걸 생각해 볼 때, 소비를 장려하는 문화야말로 우리를 소비한다. ‘진짜’야말로 쉽게 산업과 결합하고, 도처에 널린 ‘나다움’의 가능성 앞에서 개인은 순식간에 취약해진다. 인생에 중요한 순간이라면 더더욱. 웨딩 산업은 그 취약성을 이용해 개인이 끊임없이 소비하도록 몰아붙인다.
문제는 이 모든 게 공기 같은 나머지 눈치채기 어렵거나, 안다고 해도 남다른 무언가를 갖고 싶은 바람을 우리가 끝끝내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결혼식에 막대한 재화를 들인다. 혹은 나처럼 현명한 소비 주체로서 변별력이라도 가져보려 한다. 최소한으로만 휩쓸리겠다는 다짐을 주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게 사람의 마음 아닐까? 돌이켜 보면 내가 한때 결혼식을 얕봤던 이유 역시 그와 맞닿아 있지 않나? 사회에 속하길 원하는 한편, 그 사회의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무언가’ 또한 갈망하며 자라나는 저항감…….
이 책의 근사함은 결혼식과 개인을 비난하는 대신, 그 안에 도사린 저항감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데 있다. 저자에 따르면 저항감은 분투하는 사람의 것이다. 그는 우리가 끝내 중요한 순간을 위해 분투하고자 한다면, 저항조차 소비로 귀결시키는 이 사회의 거대한 장력을 응시하며 함께 고민해야만 한다고 설득한다. 웨딩 산업과 함께 결혼식이라는 인생 의례가 왜곡되는 방식을, 현대사회의 소비문화적 공기를, 거기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소비하고 또 소비되며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시도란 무엇인지를 진득하게 파고들면서 말이다. 그 시선에선 여전히 나름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진지한 희망이 느껴지고, 나는 나를 반하게 한 그 희망이 일종의 탁월함이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