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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파일

저메이카 킨케이드
Jamaica Kincaid
해외작가 문학가
출생
1949년 05월 25일
출생지
앤티가 바부다 세인트존스
데뷔작
강바닥에서 (1983)
작가이미지
저메이카 킨케이드
해외작가 문학가
1949년 5월 25일, 서인도 제도 앤티가섬의 수도 세인트존스에서 도미니카 출신의 어머니 애니 리처드슨과 친아버지로 알려진 로더릭 포터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일레인 포터 리처드슨이고, 카리브 원주민 외할머니 곁에서 어린 시절 내내 큰 영향을 받는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좋아해서 여러 차례 읽을 만큼 열렬한 독서광이었지만 학교생활에는 그다지 적응하지 못한다. 1965년 집안의 생계를 돕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1966년 뉴욕으로 건너가 스카스데일에서 입주 보모로 일하기 시작한다. 곧 가족과 연락을 끊고 자발적 유배 상태에 들어가며, 이십 년 뒤 앤티가섬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절연한 채 지낸다. 뉴욕에서 생활하는 동안 야간 학교를 통해 학업을 이어 가며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한다.

이후 사진을 공부하고 비서, 모델, 클럽의 보조 가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수차례 잡지사의 문을 두드리지만 좀처럼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 마침내 십 대 소녀들을 위한 잡지 ≪앤저뉴≫에서 ?내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라는 제목으로, 저명한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인터뷰하며 이름을 널리 알린다. 이 무렵부터 보다 자유롭게 글을 쓰기 위해 ‘저메이카 킨케이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1976년 ≪뉴요커≫에 구 년 동안 ?마을 이야기?라는 칼럼을 기고하고, 이후 1996년까지 이십 년간 ≪뉴요커≫의 전속 작가로서 활약하며 여러 단편들을 발표한다. 1979년 ≪뉴요커≫의 편집장 윌리엄 숀의 아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앨런 숀과 결혼하고 아들 해럴드와 딸 애니를 얻지만, 2002년 이혼한다. 이때 버몬트에 거주하며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 교수로 자리 잡고, 2004년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다.

오늘날 카리브 문학을 대표하는 저메이카 킨케이드는 제국주의와 탈식민주의, 인종과 계급, 젠더와 섹슈얼리티, 피식민자 경험과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집요하게 천착하며 고유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다. 1983년 단편 소설과 수필을 엮은 첫 책 『강바닥에서(At the Bottom of the River)』를 출간하고, 1985년 자전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첫 장편 소설 『애니 존(Annie John)』을 발표한다. 1988년 앤티가섬의 수탈과 타락의 역사를 신랄하게 고발한 에세이 『어느 작은 섬(A Small Place)』을 펴내며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1990년 『루시(Lucy)』, 1996년 펜포크너상 최종 후보이자 애니스필드울프상 수상작 『내 어머니의 자서전(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1997년 페미나상 외국어 소설 부문 수상작 『내 남동생(My Brother)』을 출간한다. 2002년 아버지를 잃은 소녀의 삶을 그려 낸 『포터 씨(Mr. Potter)』, 2013년 작가 자신의 결혼 생활을 짙게 반영한 『그때 지금을 보다(See Now Then)』를 발표한 뒤 다방면에서 작가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2021년 영국 왕립문학학회의 국제 작가로 선정되고, 2017년 인류 역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댄데이비드상, 2022년 파리 리뷰 하다다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디베이터』는 이 심각한 분열의 시대에 너무도 시의적절하며 꼭 필요한 책이다. 그는 논쟁이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시작해, 마침내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는 데까지 나아가는 행위라고 말한다. 서보현 작가는 우리로 하여금 마치 철학자처럼 충분히 생각을 정리한 뒤 입안에서 맴도는 말들을 내뱉게 만든다. 이 훌륭하고도 재기 넘치는 책을 읽고 나면 다른 사람을 이기려 하는 대신 설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설득이란 곧 말을 사랑의 무기로 활용하는 일이라는 사실까지도.
  • 부모를 사랑한다거나 미워하는 일이 필연적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두 감정이 공존한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어떤 감정이든 들기 마련이에요. 그러니 상반되는 감정도 겪을 수밖에요. 사랑은 그처럼 속수무책이죠. 그렇게까지 어쩔 줄 모르게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냥 사랑하는 거지요.

작가에게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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