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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손을 물어야 할지니
흑백의 세계를 살며 생각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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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 독자들에게 13

1부 분노
1장 성난 아시아 여자애 20
2장 인종적 상상계 36
3장 어설픈 흉내 54
4장 잊힌 전쟁 68
5장 침묵 속에 남겨 둔 것들 88

2부 수치심
6장 부모를 대신해 106
7장 유리 천장 130
8장 이도 저도 아닌 148
9장 오리엔탈리즘 166
10장 엄마와 망태 할아범 176
11장 자격지심 192

3부 은혜
12장 흑과 백 사이에서 218
13장 그 손을 물어야 할지니 240
14장 친족 공동체 266
15장 우리 또한 288

감사의 말 305
옮긴이 후기 308

저자 소개 3

줄리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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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 Lee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계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랐다. 열다섯 살, 부유한 백인들이 다니던 사립학교를 다니며 반항하던 시절 LA 폭동을 목격했다. 당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던 부모님의 상점 또한 피해를 입었다. 도망치듯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프린스턴대학에 진학해 영문학을 공부했고, 경영 컨설팅 회사에 잠시 몸담았다가 하버드대학 영문학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미국 사회에서 소위 ‘모범 소수자’로 성장하며 경험한 인종적 갈등과 정체성 문제는 그녀의 학문과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하버드대학에서 만난 저메이카 킨케이드 교수의 영향 아래 아프리카계 미국인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계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랐다. 열다섯 살, 부유한 백인들이 다니던 사립학교를 다니며 반항하던 시절 LA 폭동을 목격했다. 당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던 부모님의 상점 또한 피해를 입었다. 도망치듯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프린스턴대학에 진학해 영문학을 공부했고, 경영 컨설팅 회사에 잠시 몸담았다가 하버드대학 영문학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미국 사회에서 소위 ‘모범 소수자’로 성장하며 경험한 인종적 갈등과 정체성 문제는 그녀의 학문과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하버드대학에서 만난 저메이카 킨케이드 교수의 영향 아래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과 영문학의 교차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인종?기억?재현의 문제를 중심으로 문학과 문화사를 연구하는 한편, 소설도 썼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의 노예 서사가 빅토리아시대 영국 문학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The American Slave Narrative and the Victorian Novel(2010), 흑백의 어린이들이 좌충우돌하는 코미디 시리즈물 《꾸러기 클럽》을 문화사적으로 연구한 Our Gang: A Racial History of The Little Rascals(2015), 제인 오스틴의 『설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소설 By The Book(2018)(필명 줄리아 손본Julia Sonneborn으로 발표)이 그 산물이다. LA폭동으로부터 30여 년이 흘러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여파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 책을 썼다. 현재는 로욜라메리마운트대학에서 영문과 교수로 일하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 아시아계 미국인 문학, 카리브해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과 한국, 영국을 오가며 유학 생활을 했다. 뉴욕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에서 미디어콘텐츠 관련 일을 하다가 현재는 텍사스대학 오스틴 캠퍼스의 미디어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 요인과 미디어산업에 대한 문화지리적 연구에 관심이 있다. 『특권: 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새로운 엘리트 만들기』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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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서강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 케임브리지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박사 후 연구를 마치고, 현재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에서 한국 현대 정치 사상의 전개 양상을 고찰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자유주의의 역사와 이념적 성격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한국 현실에서 '자유주의적인 것'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나아가 자유주의적인 미래의 전망을 찾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 자유의 담론과 실천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 분석하여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사상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앞으로 계획하고 있다. 『통치론』과 『미국 예외주의』등을 공역했고, 공저로 『서양 근대 정치 사상사 - 마키아벨리에서 니체까지』와 『한국정치의 이념과 사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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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146*225*30mm
ISBN13
9788964375198

책 속으로

학교는 항상 내 피난처였다. 우등생이었던 나는 집에서 얻지 못한 칭찬에 굶주려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었다. 매일 밤 부지런히 연필을 깎아 놓고, 새 학년이 시작될 때면 들뜬 기분으로 새 바인더와 공책을 고르는 부류의 아이가 바로 나였다. 그런 내게 주말은 공포였다. 친구도 선생님도 없이 꼬박 이틀을 불행한 우리 가족과 집에 처박혀 보내야 했으니 말이다.
--- p.27

첫 번째 에세이는 한국계 미국인인 내가 부모님의 문화와 미국(그러니까 백인) 문화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다룬 것이었다. 나는 수학을 잘하지도 못하고, 항상 엄마와 싸우는 데다, 김치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적어 냈다. 마지막 내용은 내가 얼마나 한국인 같지 않은지 강조하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 사실 나는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당시 나는 한국과 관련한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미국과 관련한 모든 것들을 수용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서, 내가 얼마나 독특하고 비전형적인 아시아계 미국인인지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역겨운 척, 가짜 혐오를 연기한 것이었다.
--- p.30

엄마가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알려 주었을 때, 난 불안감이 섞인 묘한 조바심을 느꼈다. 나는 친구에게 간단명료한 답을 주고 싶었다. 맞아 난 중국인이야, 라든지 난 일본인이 아니야 같은 답 말이다. 나보고 어떻게 반 친구한테 “한국인”이 뭔지 설명하란 말인가? 엄마는 한국이 “반도”고 어쩌고 하는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는데, 내 머릿속에는 친구가 물어본 건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걔한테 내가 반도라고 말할 순 없잖아, 하는 생각뿐이었다. 답답해진 나는 백인의 관점에서 내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 웃픈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한글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는 위의 동요를 개사해 “중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한국인”을 끼워 넣고 눈꼬리를 옆으로 찢어 보였다. 미국 문화에서 우리가 인식되도록 만들기 위해 자신의 생김새를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뒤틀린 모습이라 해도 그저 눈에 띄고 싶었던 것이다.
--- p.39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나 됐대? 붙었대?” 하며 엄마를 달달 볶았다. 마침내 에린 엄마가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 나와 동생이 “별로 베트남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떨어졌고 캐스팅 디렉터가 전문 배우를 선택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아역 스타의 꿈이 이렇게 물 건너가다니! 하지만 실망감과 더불어 밀려오기 시작한 건 내 인종 자체가 일종의 연기를 요구한다는 자각이었다. 리 싱을 시트콤에 나오는 여느 아역 배우처럼 일부러 과장되게 연기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전형적인 아시아인다움을 연기해야 했다. 그건 어눌한 영어를 쓰고 거품 목욕이나 남부 미인 따위에 감탄하며 수잰의 인형이자 장난감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 이런 깨달음을 얻고 내가 모욕감을 느꼈다거나 혹은 그런 캐리커처 같은 역할을 만들어 낸 백인 각본가에게 화가 났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오디션장에서 본, 치렁치렁한 드레스 차림의 그 아시아 여자애한테 더 짜증이 났다. 나는 걔가 제작진이 원했던 연기를 해냈고 그 역할을 따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백인들의 관심과 인정을 놓고 겨루는 내 경쟁자였고, 결국 그 애가 이긴 셈이었다.
--- pp.58-59

부모님은 전쟁의 기억을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물려주셨다. 비닐봉지를 모아 두는 습관으로, 낭비를 극히 꺼리는 태도로, 권위에 대한 두려움과 막연한 피해망상 같은 걸로 말이다.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해라.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해라. 아무도 믿지 마라.
--- p.76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엄마의 들쭉날쭉한 성정과 예측할 수 없는 폭력성, 발작적인 절망의 몸부림은 단순히 불안이나 우울증, 갱년기 같은 서양의학의 빈약한 진단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더 복합적인 무언가의 증상이었다. 인종차별, 가부장제, 경제적 불안정, 역사적 트라우마 같은 스트레스 요인이 한데 뒤섞인 독성 칵테일, 즉 한 말이다. 엄마는 화를 억누른 채 밖에서는 표정을 온화하게 가다듬고 가면 뒤에 숨어 지냈다. 하지만 그 화는 몸 안에서 전이되어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변해 가고 있었다. 내 동생이 자신을 더 작고 더 조용하게 움츠러뜨리는 방식으로 거기에 대응했다면, 나는 나만의 분노를 점점 키워 가며 맞섰다. 나 역시 무력감과 핍박받는 듯한 느낌에 휩싸였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분노에 찢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엄마를 미워할수록 나는 점점 더 그녀를 닮아 가고 있었다.
--- pp.80-81

점점 더 내가 분노를 뿜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엄마가 되어 갔다. 내 눈에 엄마는 모든 억압의 결정체였다. 내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사람도 엄마였고,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고 압박하고, 억지로 그 잘난 사립학교에 보내고, 자신의 모든 불행을 내가 보상해야 할 책임이라도 있는 것처럼 떠넘긴 사람도 엄마였다. 한번은 친구 아일린이 우리 집 앞까지 날 태우러 와서 막 나가려는데, 엄마가 “조심해” 비슷한 소리를 했다. 나는 돌아서서 “상관 마, 씨발!”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완전 썅년이야.” 나는 아일린에게 이렇게 투덜대며 눈을 흘겼다. 아일린은 경악했다. 그 애도 사이코 같은 한국인 엄마를 두긴 했지만, 엄마에게 욕을 했다가는 (하물며 친구 앞에서라면 더더욱) 그날로 끝장이었을 것이다. 나도 엄마가 무서웠지만, 너무 화가 나고 우울해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차라리 엄마가 날 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스스로를 두들겨 패고 싶었다.
--- p.86

엄마는 내가 세 번째 길, 다름 아닌 자기 파괴의 길에 서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의 화병은 내가 보이지 않는 주변화된 존재라는 느낌, 무력감 속에서 쌓여 간 분노와 결합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걸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사는 도시도 거의 폭발 직전이었다.
--- p.87

봉기 이후 집단적 트라우마 경험을 되돌아볼 때, 불타 버린 건물들이나 고통스러웠던 어떤 극적인 한순간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트라우마 이후 살아남기 위해 이어 갔던 눈에 보이지 않는 일상적 행위들이 생각난다. 손님 한 명당 냅킨 한 장, 케첩 한 봉지로 제한해서 비용을 줄여 보려던 엄마의 눈물겨운 노력(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술을 마셔서가 아니라(경찰은 그렇게 의심했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자꾸 차선을 이탈하는 바람에 아빠가 떼인 난폭 운전 딱지. 엄마와 옷을 사러 구세군 매장에 갔다가 빈티지 쇼핑을 하던 친구 두 명과 마주쳤던 일(당시는 부잣집 딸들이 가난해 보이는 것을 ‘멋있다’ 여기던 그런지 시대였다. 하지만 진짜로 가난한 것은 전혀 멋진 일이 아니었다).
--- p.102

나는 동부의 명문대 여러 곳에 지원했다. 모두 부모님이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등록금을 내야 하는 곳들이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관료주의적인 연방학자금 신청서 양식을 채워 넣다가 마지막 항목에 다다랐다. 거기에는 추가 의견을 적는 칸이 있었다. 아빠가 편지 봉투 뒷면에 몇 문장을 고심해서 작성하더니, 문법을 고쳐 달라며 내게 건넸다. 나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다시 써넣었다. “저희 부모님은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입니다. 부모님 사업이 최근 경기 침체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학자금 지원 요구를 판단하실 때 이런 사정을 고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사무적인 어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사실 우리는 구걸하고 있었다).
내가 합격한 모든 대학 가운데 프린스턴이 집에서 가장 멀었고, 가장 명성이 높았으며, 가장 많은 액수의 학자금 지원을 제안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가장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 1위로 뽑혔다.

--- pp.102-103

추천평

“궁극적으로 줄리아 리의 회고록은 강력한 배교 행위를 보여 준다. … 무한히 생성을 반복하며 끊임없는 변화 과정 속에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이라는 현재진행형의 기획을 위한 아름다운 주문과도 같다.”

- 『뉴욕타임스』
“생생하고, 강력하며, 공감 어린 이 책은 ‘미국’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만들어질지에 대한 이야기를 붙들고 씨름한다. 이 이야기의 가혹함을 우리는 보통 잊고 있거나 오용하곤 하지만 줄리아 리는 그 이야기의 복잡한 진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 저메이카 킨케이드 (『내 어머니의 자서전』 『루시』 『애니 존』 저자)
“줄리아 리는 때로는 선동적이고, 때로는 유머러스하며, 때로는 우울하지만, 결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 거짓 이분법, 잔인할 정도로 낙관적인 환상, 백인 우월주의의 논리를 거부하는 데서, 그녀는 결국 구원을 찾아내고야 만다.” - 『보스턴 글로브』
“이 책은 나를 완전히 휘저어 놓았다. 줄리아 리는 내가 수년 동안 글로 풀어내기를 두려워했던 문제의 주변을 맴돌다가 결국 정면 돌파한다.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거는 기대의 정치학에 대한 풍성한 논고와 같다. 경이롭다.” - 키에스 레이먼 (『헤비』 저자)
“희망적이고, 솔직하며, 뼈아픈 유머가 묻어나는 이 책에서 줄리아 리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 경청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그리고 우리가 ‘되어야 할 모습’과 ‘될 수 있는 모습’을 달리 생각하는 법에 대한 매혹적인 이야기를 선사한다.” - 후아 쉬 (『진실에 다가가기』 저자)
“줄리아 리는 신랄한 이 회고록을 통해 ‘순종적인 아시아인’이라는 신화를 깨뜨리고 인종적 위계질서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 그녀의 자기 성찰적인 목소리와 우리 사회의 실패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은 진실을 폭로하며 정당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유머와 솔직함, 이상주의적 명료함, 그리고 강렬한 분노로 끊임없이 빛이 난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솔직하고 연민 어린 분석은 독자들로 하여금 각자 자신이 저질러 온 실수를 돌아보도록 이끈다. 아시아계 미국인과 ‘백인성’에 대한 생생하고 현명하며 통찰력 넘치는 회고록.” - 『커커스 리뷰』
“줄리아 리는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정체성과 인종적 계층화에 대한 신랄한 분석과 매끄럽게 결합해, 어떤 이념을 가진 독자들에게도 도전이 될 만한 결론을 제시한다. … 권력과 특권에 대한 이해가 진화해 가는 과정을 탁월하게 기록한 책으로, 독자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 〈북페이지〉
“정당한 분노가 뿜어져 나오는 통찰력 넘치는 회고록. 그간 미국 사회를 규정해 온 이분법적 인종 체계 밖에서 살아가는 복잡성을 그려 내며,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겨져 온 모든 이들에게 현존하는 권력 구조를 해체하는 데 동참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 『북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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