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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리고 그때 9
옮긴이의 말 | 버림받음의 상처, 치유되지 않는 239 저메이카 킨케이드 연보 245 |
Jamaica Kinc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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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이, 사랑이 기준이고 다른 모든 감정은 그저 사랑을 나타내는 형태에 불과하기에 미움도 사랑의 변형이다. 미움은 사랑의 정반대이고 그래서 사랑과 가장 유사한 형태이다. 미스터 스위트는 아내인 미시즈 스위트를 미워했다.
--- p.19 망할 가족의 옷을 돌리는 세탁기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가족이라는 그 단일체에 그는 자신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아이들 옷, 아내의 정원 일 작업복, 아내의 속옷, 미시즈 스위트가 종이 냅킨을 못 쓰게 했기 때문에 식탁용 리넨, 침대보와 베갯잇, 욕실 매트, 행주, 수건, 빨아야 할 온갖 종류의 것들. 그는 프랑스 파리와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서 학교 다닐 때를 빼고는 뭔가를 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빨래는 늘 알아서 되어 있었으므로 빨래가 건반 치는 일에 끼어든 적이 없었다. --- p.33 그리고 그 당시, 그때, 미시즈 스위트는 달콤한 슬픔 안에서 용해되었다. 빈 건물 벽을 비추던 그 햇살을 묘사할 어떤 비유도 찾아내지 못해서였다. 책상에 앉아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한 단편소설을 썼는데, 다 해야 세 쪽밖에 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딱 그만큼의 시공간에 해당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만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98 그때이자 지금, 미시즈 스위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 어떤 지금, 어떤 그때(둘은 언제나 마찬가지다)에 산다는 것은 바로 그것, 발을 번갈아 내디디며 어둠 속으로 몸을 날리는 것이었으니까 — 그리고 발아래 비옥한 땅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아무거나 단단한 땅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실제로든 비유적으로든. --- p.123 아기가 가슴을 깨물 때마다 그녀는 점점 아기의 존재가, 자신의 삶에 아기가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성가시게 느껴져, 아기가 자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이라는 것도 잊었다. 그때는 인간의 엄청난 타락을 상징하는 뱀이나 다른 작은 무척추동물 같은, 가슴을 깨무는 동물일 따름이었으니까. 엄마는 아기가 자신을 그렇게 아프게 하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아기는 엄마가 젖을 먹일 때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 pp.141-142 딸이 아름답다고 엄마와 아빠는 생각했고, 세상 모든 엄마와 아빠가 첫아이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랑은 아름답고, 아름다움은 완벽하고 적절하다고. 미시즈 스위트의 자궁 밖으로 나왔던 그때와 지금 아름다운 페르세포네는 아름다웠고, 미시즈 스위트는 태지胎脂에 싸인 아기를 보는 순간 온몸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멀리, 아주 멀리 도망가고 싶었지만, 푹스 의사가 아름다운 페르세포네를 그녀의 품에 안겨줬기에 도망갈 수가 없었다. 의사는 엄마와 아빠와 갓난아기 세 사람에게 커다란 행복을 주었다고 상상하며 무척 기뻐했다. 몸이 격렬하게 떨려, 금방이라도 다음 세상으로 빠져나갈 것처럼 몸이 떨려, 미시즈 스위트는 갓난아기가 자기 존재의 구명줄이라도 되는 양 꼭 안았고, 사실이 그랬다. --- p.160 지금, 그때, 그녀가 잊지 말고 물을 줘야 했던 어린 덩굴 콩처럼 연약하기만 한, 그 자그마한 여자아이를 본다. 올해 거둔 씨앗으로 자신의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는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잘 보살피지 않으면 시들시들하다 죽어버릴 것이었다. 그 자그마한 아이가 시들시들하다 죽어서 그저 미시즈 스위트의 지금이 되어 영원히 그 안에서 살게 될 것처럼. 그 아이에겐 닿을 수가 없다. 위로할 수도 닿을 수도 없지만, 거기 있었다. 미시즈 스위트가. --- p.182 엄마는 엄마가 우리와 함께 있는 줄 알지, 엄마가 우리와 함께 있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줄 알지, 하지만 엄마는 사실 엄마 머릿속에 있고 엄마에게는 거기 있는 것만 진짜고 큰 책상이 있는 그 작은 방에 살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엄마 어린 시절만 중요하다는 것을. 어린 시절에 고통을 겪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오로지 엄마의 엄마만 자식에게 잔인했다는 듯이. --- p.183 그러나 삶은, 진짜 삶은, 삶이 펼쳐지는 방식은 절대 상상하는 대로 되지 않아. 미시즈 스위트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 p.202 지금, 지금, 살아가는 일 자체를 나타내는, 삶 자체를 나타내는 지금이 당신을 때려눕히고 만신창이로 만든다. 버려진 쓰레기, 텅 빈 거리에 목적도 없이, 아무 목적도 없이 바람에 휩쓸리는 어떤 것으로. 지금, 지금, 그리고 다시 지금. 그 순간은 당신의 진정한 삶을 이루는 모든 것으로 가득하지만 항상 손에 닿지 않는다. 처음엔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영원히 닿을 수 없고, 애를 쓰느라 지쳐가지만 손이 닿을 바로 거기에 있으니 또다시 잡아보려 하고, 역시 닿지 않고, 언제나 닿지 않고, 거듭 잡아보려 하지만 매 순간은 차곡차곡 쌓여만 가고 늘 손에 닿지 않는다. --- pp.217-218 그녀는 아이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고, 주방에 딸린 방을 만들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방안에 들어가 자신의 과거를, 예전에 자신의 지금이었고 자연스레 자신의 그때가 된, 그때 내가 그랬지, 그때 내가 그런 일을 했지, 그때 내가 그렇게 되었지, 그런 식으로 그때가 되어버린 과거를 파헤쳤다. --- p.220 어떤 식으로 들리건, 어떤 식으로 느껴지건, 그것은 정말이지 실망스럽다, 바로 지금은. 바로 지금은 늘 너무나 불완전하거나, 그렇게 느껴지므로. 그리고 그건 축복이다. 그것이 모습을 바꿔 앞으로 올 것이, 앞으로 올 모든 것이 될 테니까. 앞으로 올 모든 것이 바로 지금을 담고 있고, 그때를 향한 불가해한 열망을 담고 있을지라도. --- p.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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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구석방에서 종이 위에 써내려간 여성으로서의 삶
‘그때’와 ‘지금’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뼈아픈 고백 여성, 식민지 출신, 흑인, 이주민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천착해온 저메이카 킨케이드는 독보적인 자전 문학의 세계를 구축해왔으며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도 거론된다. 11년 만에 선보인 이번 장편소설 『지금, 그리고 그때』는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신작으로, 『루시』 『애니 존』 등 주로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기존 소설들과 달리 결혼 이후의 삶을 전면적으로 다룬 강렬한 작품이다.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에 사는 미시즈 스위트는 카리브해 앤티가섬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미국으로 건너왔다. 남편이자 작곡가인 미스터 스위트는 대도시에서 살던 과거에 집착하며 아내를 무시한다. 미시즈 스위트가 육아와 가사노동의 고통을 감내하고 가족에게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의 결혼생활은 파국에 이르고 만다. 미시즈 스위트는 주방 옆 작은 방에 틀어박혀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써내려간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들, 혹은 역으로 아주 사소한 순간들을 돌아보며 수많은 ‘지금’과 ‘그때’를 호출한다. 과거는 현재에 의해 재구성되며, 현재도 언젠가는 반드시 과거가 된다. 그러므로 모든 순간은 ‘지금’인 동시에 ‘그때’이고 ‘지금’과 ‘그때’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로 상호작용한다. 다시 말해 ‘지금’과 ‘그때’의 진정한 의미는 언제 누가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달콤하기는커녕 지독히 매운 스위트 가족 적나라한 가족생활에 신화적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 “내 글은 마침표 하나까지 자전적이다”라고 선언한 킨케이드의 작품답게, 『지금, 그리고 그때』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전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소설 속 스위트 가족이 실제로 킨케이드와 그녀의 전남편 앨런 숀, 그리고 두 자녀를 강하게 연상시켰기 때문에 출간 당시 미국 현지에서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렇듯 실제 삶과의 높은 유사성으로 인해 이 소설은 도저히 허구로 느껴지지 않는, 솔직하고 내밀한 고백으로 다가온다. 인종과 계급, 문화적 환경이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서로를 증오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생생하게 펼쳐지며, 특히 남편의 과거 행태를 이제야 알아차린 현실을 직시하듯 서늘히 묘사하는 대목은 불편할 만큼 적나라하다. 그러나 일인칭이 아닌 전지적 시점에서 쓰인 이 작품은 단순한 사적 고백에 머물지 않는다. 킨케이드는 독특하게도 작중의 여러 인물에게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붙였다. 예를 들어 미시즈 스위트의 첫아이인 딸의 이름은 페르세포네다. 부모 눈에 완벽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페르세포네는 어머니와 떨어져 지하 세계에서 살게 된 신화 속 페르세포네처럼 어머니에게서 멀어진다. 운동을 좋아하고 활달하지만 ADHD 치료를 받는 아들, 어린 헤라클레스 앞에는 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만큼 힘겨운 삶의 시련들이 놓여 있다. 집안 곳곳에 굴러다니는 맥도날드 해피밀 사은품으로 받은 작은 플라스틱 인형들은 트로이전쟁에 참전했던 미르미돈 병사들로 변한다. 이처럼 아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사물조차 신화에 나오는 존재로 변모시키면서, 킨케이드는 자신의 삶과 소설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흐리는 동시에 보편적 서사의 성격을 획득한다.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기억 속 어머니를 향한 애증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고 너무나 미워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 남편에 대해,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던 중년의 미시즈 스위트는, 어느새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쓰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킨케이드 문학 전반을 꿰뚫는 핵심이다. 소설 속 아이들에게서 “어린 시절에 고통을 겪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오로지 엄마의 엄마만 자식에게 잔인했다는 듯이” 군다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미시즈 스위트는, 킨케이드는 “그 방에 들어앉아 망할 자기 엄마에 대한 글”을 쓴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가족 구성원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킨케이드가 계속해서 자신의 가족을 소재로 글을 쓰며 정체성의 뿌리를 더듬는 모습에서는 집요함과 의지마저 느껴진다. 킨케이드의 글을 읽으며 우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느껴본 적 있는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 그리고 그때』에서 지배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분노’지만, 그 분노 아래에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회한과 현재의 삶이 주는 압박 사이에서 들끓는 무척이나 복합적인 감정이 깔려 있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와 가사노동에 고통받는 미시즈 스위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미시즈 스위트가 ‘지금’과 ‘그때’를 오가며 발견해내려 했던 진실, 그녀가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했다는 사실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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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메이카 킨케이드는 내가 언제고 읽고 싶은 글을 쓰는,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 수전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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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케이드에게는 평범한 경험에 신화와 같은 흉포함을 부여하는 능력이 있다. 우리 시대 가장 예리하고 생생한 글을 쓰는 작가 중 한 명. -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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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강렬함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작품을 창조했다. 삶 그 자체는 소설 속 표현처럼 “항상 손에 닿지 않”겠지만, 그것을 포착하려고 시도하는 작가의 재능은 모든 페이지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 시카고 트리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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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케이드만큼 솜씨 좋은 작가만이 삶과 예술의 경계를 우아하게 흐릴 수 있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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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부터 친밀하고 담담한 의식의 흐름 기법이 우리와 그들, 지금과 그때, 시와 산문,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문다. - 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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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용서, 진실로 가득찬 마지막 챕터는, 사랑의 끝을 다룬 소설들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성찰을 보여준다. - 오프라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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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의 아픔에 대한 킨케이드의 소설이 보여주듯, 글쓰기야말로 최고의 복수일지도 모른다. -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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