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표면을 단조롭게 도포한 단색 추상화 같은 오윤석의 작품은 극과 극이 만나는 카오스모스의 장이다. 그는 전형적인 그림 크기의 공간에서 시간을 가속시킨다. 빠른 속도가 오히려 정지감을 낳듯이, 그의 작품에는 ‘극의 관성’(폴 비릴리오)이 있다. 시간의 가속화에 의해 공간이 축소되어 이것과 저것을 명확히 구별할 수 없는 이 세계는 비활성의 무질서에 머물지 않는다. 여러 차원이 공존하는 그의 작품은 하나의 본질이 아니라, 차원들이 융합되면서 생겨나는 것을 중시한다. 전시장 조명과 어우러져 고상하고 은은한 화면을 보여주는 작품들에서 침묵과 수다, 형상과 문자, 정지와 움직임, 관념과 몸, 의식과 무의식, 의미와 무의미, 색채와 형태, 빛과 어둠은 하나가 된다. 그것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어느 하나로 환원할 수 없는 수많은 텍스트들이 교차되어 이루어진 세계이다. 하나씩 끌어내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 같은 중층적 화면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경전을 필사한 것 같은 조밀한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