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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교
李萬敎
국내작가 문학가
출생
1967년 출생
출생지
충청북도 충주
직업
시인, 소설가
데뷔작
투레질
작가이미지
이만교
국내작가 문학가
평생 열심히 글을 썼지만 아직 흡족한 글을 쓰지 못했다. 이러기도 쉽지 않으니,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랄까. 열심히 써도 못쓰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고, 열심히 써도 못쓰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습작생들에게는 좋은 반면교사가 되었다. 2006년부터 '글쓰기 공작소’ 강좌를 통해, 많은 시민들에게 ‘저렇게 열심히 하면서도 못쓰다니, 그에 비하면 내가 낫구나!’ 하는 위로를 베풀었다. 부자들이 어쩌다 하는 선행으로는, 가난한 이들이 매 순간 행하는 ‘당신은 나보다 잘 살고 있지 않소!’라는 위안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듯, 글쓰기에 있어 최고의 선행이란, 부족한 데도 열심히 쓰지만 열심히 써도 안 되는, 그럼에도 끝내 열심히 쓰는 사람이다! 라는 자긍심 하나로 지금까지도 열심히 쓰고 있다. 이러한 분투의 기록으로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개구리를 위한 글쓰기 공작소』 등을 출간했고, 이번에는 그 15년 결과물로 ‘실전편’을 펴낸다. 과연 재주라면 재주 아니겠는가. 그 외 『결혼은, 미친 짓이다』 『머꼬네 집에 놀러올래?』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나쁜 여자, 착한 남자』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 등을 출간했다.
인천대학교 화학
배재대학교 국어국문학 학사
인하대학교대학원 국문학 박사 수료
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나는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강의를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글쓰기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관련 서적들을 뒤적여 보았다. 글쓰기 개념에 대한 다양한 규정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간명하면서도 가장 정확하게 정의한 것은 아무래도 초등학교 교과서였다. "글쓰기란,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두 가지 층위가 제일로 중요하다. 먼저 '자신의 느낌일 것'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할 것'!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눈을 감고, 대상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눈앞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소중한 대상을 만날 때면 우리는 이런 집중을 활용한다. 일테면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을 때나 느끼고 싶을 때, 매우 중요한 기억을 더듬어 떠올릴 때, 혹은 아주 잘 만들어진 제품의 결을 감상할 때……. 독서란 눈으로 문장을 좇는 여행이지만, 박이강 소설을 읽으면 왤까, 눈을 감고 손으로 결을 짚어나가는 듯하다. 글쓴이가, 내 손가락을 잡고, 짚어보도록 돕는 부분을 따라 짚어나가는 착각에 빠진다. 언제나 여행중이거나 여행 온 사람과 만나는 그(녀)들은, 결을 따라 머물지만 멈추지 않고, 출발하지만 떠나지 못한다. 웃지 않고 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활짝 웃는가 하면, 눈을 감아버리지만 비로소 본다. 이 균열들은 이국적이지만 너무 현실적이어서, 눈을 뜨려고 뜨는 게 아니라, 놀라서 나도 모르게 눈을 뜨게 된다. 나는 분명 두 눈으로 문장을 좇아 읽었는데, 매우 중요한 뭔가를 목도한 마음으로 놀라 눈을 뜨는 발견의 경험을 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 여행 서사는, 다른 어떤 작가의 글로는 대체될 수 없는, 박이강 작가 특유의 여행안내서다.
  • 앙상한 고목과 고목 주변을 유영하는 새떼를 검은 실루엣으로 포착하는 바람에, 고목과 새떼가 변별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된 사물처럼 느껴지면서, 마치 고목 가지들이 하나씩 하나씩 독립적으로 뜯겨져 나가 제각각 한 마리의 새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기실 모든 새는 하나의 나뭇가지에 앉지만 결국 그 나뭇가지를 떠난다는 점에서, 어쩌면 새란 약간 더 자유로운 나뭇잎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는 동시에, 하늘을 유영하던 새들이 나뭇가지로 돌아와 앉으면 모든 게 다만 한 그루의 고목으로 시미치 떼듯 돌변하지 않을까? 터무니없지만 터무니없지만은 않은 상상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고사목 주변을 어지럽게 배회하는 새떼들의 음습하고 귀기롭고 신비한 기운들이 사진을 보고 있는 내 미소를 통해 현실로 스며나올지 모른다. 가령 창문은 담쟁이에 휘감겨 폐가처럼 음습한 동시에 풍성해 보이는데, 그 앞에 서 있는 소년 같기도 하고 소녀 같기도 한, 어린이 같기도 하고 청소년 같기도 한, 멈춰 있는 것도 같고 걷고 있는 것도 같은 사람은, 그 눈빛만이 지나칠 만큼 날카롭게 어딘가를 응시하는 바람에 귀기스럽기까지 하다. 과연 나머지 신체 부분은 그림자에 묻혀 환영처럼 희미한데 반해, 담벼락에 비친 그의 그림자만큼은 석불 도안처럼 선명한 질감으로 음각되어, 벽 앞에 그가 서 있는 게 아니라 벽 앞에 석불이 놓여 있고, 그 석불 속에 그가 들어 있는 환영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의 내면의 불성이 그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불상의 형태로 가시화 되어 그를 감싸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러한 혼란과 연상과 환상을 『the 미궁』 연작들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경험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놓치거나 눙친 각각의 경험들 속에는, 이러한 빛과 그림자, 대비와 착시, 간섭과 혼란, 연상과 환영으로 낯설거나 기이하거나 기괴하거나 음습하거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신비한 순간들로 가득하지 않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영원이란 무수한 순간들의 총합이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각각의 순간들 그 자체가 이미 무한한 모습들로 가득한 것이지 않을까.

작가 인터뷰

  • 이만교 작가의 글쓰기 대화법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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