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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일러두기 해제 제1장 일본 해군의 진해·영흥 기지 구축 사료 01 〈극비〉 제1호 군항의 성질, 가치 및 필요한 시설 방침(1909) 사료 02 〈극비〉 진해군항 경영에 관한 의견(1907 ~1910) 사료 03 진해만 해군용지 경영 착수 순서에 관한 건(1908 ~1909) 사료 04 진해만 군항 경영에 관한 의견(1907 ~1910) 사료 05 진해만 군항 경역도와 부기(附記)(1908 ~1910) 사료 06 진해군항 시설지 실지답사보고(1909 ~1910) 사료 07 진해만 방면 매수지역 매매 금지 관련 훈령(1905 ~1906) 사료 08 진해만 지휘 교섭 건, 영흥군항 경역 순시 보고(1907 ~1908) 사료 09 마산포를 진해군항 경역 내에 편입시키는 것과 군항지역 외국인 토지소유 제한 등에 관한 총독부, 외무성 의견(1910. 11. 17) 사료 10 조선의 해군용지에 관한 방침(1910 ~1911) 사료 11 한국 시정(施政)개선회의 제1회 및 제9회 회의 발췌(1905~1906) 사료 12 한국 시정(施政)개선회의 제8회 및 제10회 회의 발췌(1906) 사료 13 진해만 해군용지 토지경영에 관한 의견(1909) 사료 14 진해만 해군용지 대하(貸下) 내규 모음(1910) 사료 15 진해만 해군용지 수수위원, 용지 경영 경과 개요(1)(1910~1912) 사료 16 해군용지를 총독부로 인계하는 내용(발췌)(1912) 사료 17 용지 경영 경과 개요(2), 영흥 해군용지 대하(貸下) 내규(1910) 사료 18 진해만 해군용지 차용원(借用願) 사례(1911) 사료 19 조선수산조합의 어촌 설치 신청원(1911 ~1912) 사료 20 진해개관(鎭海槪觀) 송부(1927. 11. 22) 사료 21 진해 행암만 해군성 용지 일부 이관 건(1933 ~1934) 제2장 마산·영흥 중포병연대의 주둔 사료 22 마산 중포병연대(1999) 사료 23 영흥만 요새중포병연대(1999) 제3장 해군 군사시설의 확장 사료 24 사세보-원산 비행연습(2)(1923) 사료 25 진창철도에 관한 건(1924) 사료 26 철도 인입선에 관한 건(1926) 사료 27 나진항 군사시설에 관한 건(1936.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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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격변기 열강의 각축 사이에서 한국의 자주적 변혁은 제약되었고, 국권은 강탈되었다. 근대 한국의 국권상실과정은 감성적 민족주의 차원을 넘어 냉철하게 직시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실증적 고찰이 이뤄져야 한다. 약육강식이 엄존하던 격변기의 현실과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성찰하는 것은 침핍(侵逼)으로 얼룩진 수난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자, 동북아 평화를 위한 역사 정립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운요호사건 이래 한국강점의 선봉에 섰던 일본군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공사관수비대에서 시작해 한국주차대·한국주차군·조선주차군·조선군·제17방면군 등으로 변모한 일본군은 의병탄압 및 독립운동 억압에 앞장섰으며, 강점 이후에는 식민지 민중의 삶을 통제하고 군사적으로 지배하는 주역이었다. 나아가 간도침략, 만주사변, 중일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에는 일본의 대륙침략의 선봉에서 활동한 주체였다. 요컨대 일제의 한국강점과 식민지배, 대륙침략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주둔일본군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 이렇듯 〈한반도주둔일본군 사료총서〉는 군사지배에 기반을 둔 일본제국주의의 전면(全面)을 드러내기 위해 일본군의 역할과 실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책은 그 세 번째 권으로, 1910년 한국병탄 이후 진해와 영흥을 중심으로 한반도에서의 거점을 영구화하려 했던 일본 해군의 계획을 보여주는 자료를 수록했다. 이 시기 일본군은 무단통치 및 상시주둔체제를 확립하고, 지속적으로 병력을 증강해 갔다. 제19사단과 제20사단 2개 사단으로 상주체제를 갖춘 일본군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탄압하며, 간도 및 시베리아 일대로 제국주의 세력 확대에 앞장서는 첨병 역할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