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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素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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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386 세대의 성장기는 약 20년간 지속된 박정희 군사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한국형 민주주의인 유신체제로 얼룩져 있다. 어린시절 우리는 우리의 고귀한 근대성의 금자탑을 무너뜨리기 위해 남파된 북한침략자나 한창 건설중인 고속도로를 담은 선전포스터를 그리기에 바빴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우리는 뒷골목 담벼락에 붙은 박정희의 포스터에 침을 뱉는 내기를 하곤 했다. 침을 뱉은 뒤 열심히 뛰어가면서 내가 부모님의 나직한 대화에서 엿들었을 법한 '파시스트'라는 단어를 외쳤던 것이 기억난다.
그 시대는 지났다. 유령이라고? 물론 그 억압적인 기억은 그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만이 홀리는 것이 아니다. 국가장치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미시정치학내에도 그 기억은 계속 살아남아 있다. 나는 당시의 재현체계, 즉 당시의 영화에 대한 관심을 통해 끊임없이 그 시대로 돌아가곤 한다. --- p.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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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근대의 서사를 빚지고 잇는 [살인마]나 신상옥의 [천년호]처럼 경이의 장르에 속하는 영화, 그리고 근대성의 층위를 드러내는 [여고괴담] 같은 영화, 말하자면 그 근원적 환상양식을 근대 이전으로부터 인용하고 있는 영화들을 통해, 바로 이 시기에 동시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비동시성과 보기, 그리고 주체성의 영역들을 분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환상 양식의 영화는 시간성과 시각체계, 그리고 주체성의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근대성과 전근대성의 전쟁터이며, 그 두 개념이 서로 일정한 시간을 두고 차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기 보다는 연속체임을 보여주는 담론의 장이다.
--- p.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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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판타지영화의 몽환 속에서 읽는 근대성의 문제
대괴수 용가리, 우주괴인 왕마귀, 천년호, 살인마, 지옥화……. 이 엽기적인 단어들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60년대 한국영화계를 풍미했던 판타스틱 영화들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김소영 교수의 새책『근대성의 유령들―판타스틱 한국영화』는 한국영화에서 비주류, 주변부로 여겨졌던 판타스틱 영화들을 새롭게 발굴, 그것들에 대한 장르적 관심을 넓히고 있는 책이다.
한국영화계는 그 동안 소위 리얼리즘 영화를 비롯한 정통 극영화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함으로써 한국영화의 풍부한 유산과 토양을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러한 배타적이고 협소한 시각 한 구석에는 한국영화에 대한 열등감과 기억상실증이 숨어 있는 것도 사실. 김소영 교수는 이런 기억상실증을 넘어 김기영, 신상옥 감독을 비롯한 60년대의 거장들과 판타스틱 영화를 복원하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새로운 관점으로 쓴 한국영화사'라고도 할 만하다. 그러면 왜 하필 '판타스틱' 영화일까? 판타스틱 영화가 문제되는 까닭은, 그것이 한국 근대성의 정체성을 밝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 판타스틱 영화가 국가근대화(개발독재!)가 현실에서 축출해버린 전근대적 괴물, 귀신, 악녀들을 즐겨 소재로 삼음으로써, 영화 속에서 주류에 대한 비판과 함께 나름대로 근대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즉 김기영, 신상옥 감독들의 공포영화, 대괴수 용가리 등의 SF물에서 등장하는 귀신과 괴물들은 영화 속의 주류적 현실을 위협하고 그에 대항하는 비주류로서, 장미빛으로 채색된 현실과 헤게모니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근대성의 '유령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한국의 근대성 속에는 여전히 전근대가 살아남아 왜곡된 근대를 흡혈하고 있으며, 그런 근대성과 전근대성이 스크린에서 부딪히며 공포와 불안, 충돌을 빚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 있어 근대성이라는 주제는 비단 영화학의 관심영역일 뿐만 아니라 범인문학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근대/전근대의 문제는 당연히 서양문화의 이입 문제, 물신주의(Fetishism), 남성 가부장과 여성의 문제로 옮아간다.『근대성의 유령들』은 판타스틱 영화양식과 그 주요 감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논의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을 깊이 있게 분석한다. 이처럼 이 책은 기존의 영화 연구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주제들에 집중함으로써, 영화학의 협소한 경계를 넘어 한국 근대성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인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