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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도자기는 ‘힐링’이다 1 베르메르 팔레트의 파란색은 어디서 왔을까? 2 델프트 블루의 탄생과 튤립 파동 3 델프트, 타일로 유럽을 사로잡다 4 ‘로열 델프트’의 ‘델프트 블루’ 5 프리슬란트의 자랑 ‘로열 마큄’과 ‘프린세스호프 박물관’ 6 ‘끝없이 투명한 블루’, 로열 코펜하겐 7 식물과 꽃에 대한 오마주, 플로라 다니카 8 로열 코펜하겐,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점령하다 9 덴카크의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10 I have a dream 11 잃어버린 땅, 뢰스르트란드 12 그녀들은 왜 핀란드로 떠났을까? 13 이딸라, 피스카스 캠퍼스 그리고 마리메꼬 14 황제가 된 여자들, 도자기에서 위안을 얻다 Epilogue 북유럽을 떠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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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프트는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1632 ~1675가 태어나 마흔세 살 짧은 생애를 살며 사랑하고, 그림을 그렸던 곳이기도 하다.
베르메르 그림이 인기가 좋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그림에 등장하는 파란색이 매력적으로 보여서다. 베르메르 그림에는 파란색이 많이 등장한다. 언제부턴가 그의 대표작이 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비롯해 「우유 따르는 여인」, 「레이스 뜨는 여인」, 「물 주전자를 든 젊은 여인」, 「버지널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 「연애편지」 등 많은 그림에서 파란색이 시선을 끈다. 연 그는 어떤 안료로 이런 파란색을 만들어냈을까? 그의 팔레트에는 어떤 물감이 들어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해 그의 그림에 쓰인 파란색 안료의 대부분은 청금석(靑金石), 즉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라는 광물로 만든 ‘울트라마린(ultramarine)’이라는 안료다. 광물질이므로 캔버스에 그리기 위해 곱게 갈아서 아교와 오일 등을 섞어 만든 안료가 바로 울트라마린이다. --- p.17 초기에는 굴뚝이나 난로 주변, 난간과 계단, 부엌, 창이나 출입구의 상인방(上引枋, lintel, 벽과 문 또는 창 사이에 가로놓인 나무나 돌) 등에 타일이 붙기 시작했다. 타일에 그리는 그림도 점차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일하는 남녀, 놀이하는 아이들, 배나 말을 타는 남자, 『성경』 속의 다양한 풍경 등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나중에는 렘브란트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을 모델로 하여 그대로 모사한 작품들도 상당수 나오게 된다. 이렇게 델프트 타일이 유명해지면서 1650년께가 되자 해외에서의 주문도 늘어났다. 포르투갈과 그 식민지였던 브라질은 특히 델프트 블루 타일을 좋아했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폴란드, 덴마크, 러시아도 블루 타일은 물론 폴리크롬 타일도 들여와 궁전과 성당, 예배당 등의 장식에 사용했다. --- p.77 그러나 덴마크의 블루는 네덜란드의 블루와 또 다르다. 덴마크 왕실이 국책 사업으로 도자기 제조를 선정하고 왕실이 직접 관할하는 본격적인 도자기 공장을 세운 것은 1775년이다. 마이슨에서 최초의 경질자기가 탄생한 지 65년이나 지난 다음이고, 이웃 나라 스웨덴에서 유럽의 세 번째 도자기 공장인 뢰르스트란드가 1726년에 탄생한 것과 비교해도 거의 50년이나 늦었다. 이때는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도자기 제조기법을 깨우쳐 너도나도 자신들만의 도자기를 한창 생산하고 있을 때였다. 덴마크는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다. --- p.181 로열 코펜하겐의 플로라 다니카 세트는 크리스티안 7세가 1790년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Ekaterina II, 1729~1796)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 처음 제작되었다. 국가 위신을 세우기 위해 덴마크에서 자생하는 2,600여 종 식물을 그려넣어 도자기로 굽는 방대한 프로젝트다. 당시 도자기는 외교 활동의 꽃으로 가장 존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선물이란 가치를 지녔다. 그 당시에 도자기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위신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고, 당시 자기 공장들은 그 나라의 문화와 기술 수준을 집약해 나타내는 상징이었기에 자국 공장에서 생산한 화려한 도자기들이 유럽 궁정들 사이에서 예술로 교환되었다. --- p.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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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헤매는 사람들의
마음을 토닥이는 북유럽 도자기들 사실 서유럽의 이탈리아와 프랑스보다 북유럽의 스웨덴이 독일 마이슨의 경질자기 비법을 먼저 터득해 도자기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유럽 도자기와 북유럽 도자기의 특징은 완연히 다르다. 『유럽 도자기 여행』 시리즈의 저자 조용준은 서유럽 도자기를 우아한 발레리나와 같다면 북유럽 도자기는 거친 스트리트 댄서라고 비유했다. 북유럽의 거친 환경으로 장식미보다 실용성이 강조됐기 때문에 디자인이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단순함 안에 따뜻함과 위로가 들어 있다. 소울푸드를 먹을 때의 안정감이랄까. 그래서 조용준 작가는 도자기를 ‘힐링’이라고 짚는다. 핀란드의 헬싱키 모퉁이의 한 식당에서 갈 곳 없는 여행자들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커피와 음식을 나누며 마음의 여유를 찾는 「카모메 식당」에서 아라비아 핀란드의 접시를 사용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북유럽 도자기가 단순함의 미학만 내세운 것은 아니다. 사실 유럽 도자기는 외교의 매개체로 활용됐기 때문은 초기 도자기가 만들어질 당시는 주 고객이 왕실이었다. 이 책에서도 로열 코펜하겐은 처음부터 왕실이나 궁정 고위직을 위한 선물이나 기념품, 외교용 증정품 등의 용도로만 제작되고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왕실의 선물인데 마냥 단순하기만 했을까? 북유럽 도자기의 매력은 이 양면성에 있다. 왕실을 위한 고급스러운 그릇과 서민을 위한 따뜻한 그릇. 상처를 안은 자들이 찾아간다는 북유럽은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은 다독인다. 러시아 도자기를 재확인할 수 있는 공간, 그곳에 한국 역사 일부의 자취가 남아 있다 러시아는 북유럽에 속한다. 핀란드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데 기차로 4시간 반 남짓 걸린다. 그리고 러시아는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깊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러시아로 가서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우리 역사의 자취도 일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 도자기를 재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유럽 도자기 여행 북유럽 편 개정증보판』이다. 사실 러시아 도자기가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제들이 있었다. 특히 예카테리나 2세의 도자기 사랑은 끝이 없었다. 무능력한 남편을 누르고 여황으로 등극했지만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것이 끝없이 밀려오는 허망함으로 변질될 때 여제는 도자기에서 위안을 받았다. 그래서 여황을 위해 황실 도자기 제작소(IPM)가 만든 도자기는 매우 화려하다. 물론 여황이 살았던 궁전은 더 화려하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유럽 도자기 여행 북유럽 편 개정증보판』에서 정확하게 알아보자.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놓쳐선 안 되는 것이 있다. 황실 도자기 박물관에 전시된 실물 크기의 피겨린이다. 민족마다의 고유한 특성이 잘 살아 있는 피겨린을 보면서, 조용준 작가는 그곳에 러시아의 정수를 보았다고 확언한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우리 선조의 자취도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