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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 M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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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녀는 저들 중의 하나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떤다. 그들은 그녀의 손목에 감긴 밧줄에 그녀의 잘린 머리칼을 욱여넣는다. 그녀는 훌쩍거리고 있다. 통곡하고 있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습지를 가로지르며 잔향을 남기고, 마가목과 자작나무의 헐벗은 가지들 사이로 울린다.
--- p.8 아버지는 적고 있던 리스트를 내려놓은 다음, 들고 있던 펜을 그 옆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격식 있게 일어섰다. “쉿, 어디서 그런 못된!” 그러나 엄마는 너무 늦었다. 따귀는 이미 공중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알아서 매를 버는구나.” 엄마가 이 말을 하곤 했었지. “꼭 한 마디씩을 더 해. 뭐 좋은 일이 있겠다고 그러니.” --- p.22 이력서. 나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나도 그런 걸 갖고 싶다는, 유년기를 뒤로한 채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절실함의 역류. --- p.41 그러니까 이걸 제대로 하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거의 지워버리다시피 해야 해.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재연을 더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그들에게 맡겨야 해. 그렇다면 누가 유령인 거지? 우리인가, 아니면 죽은 그들인가. --- p.47 아마도 그들은 우리처럼 습지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거야. 왜냐하면, 내가 잘 알아. 왜 모르겠어. 습지는 날 끌어당겨 집어삼켜 버릴 수도 있으니까. 아버지가 말했었지, 말했고말고.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 p.51 “인생이 다 그렇지.” 엄마의 말. 엄마는 이 말을 늘 달고 살았다. 절대 불평하지 말고, 도움받을 생각하지 마. 불퉁거려서 얻어지는 거 하나 없어. 문제 만들어서 좋을 게 뭐 있니, 안 그래? --- p.64 “문제는 생물학이 아니야.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움이 문제지. 만일 너희들이 고추를 내놓고 벽에다가 오줌을 휘갈기는 것처럼 우리 여자들도 팬티를 내리고 벽 옆에 쪼그려 앉을 수 있다면 문제가 없을 거야.” --- p.74 가죽 벨트가 햇살 가득한 공기를 가르며 노래할 때, 나는 두 손으로 쥐고 있는 나무에 대해 열심히 생각했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 광합성을 하는 잎들의 세포에 대해서, 매시간 익어가는 베리들에 대해서, 손바닥 아래 나무 진액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박동, 그리고 발아래에서부터 땅속 깊은 곳까지 뻗어 있을 뿌리에 대해서. --- p.83 살아있는 가죽을 보호하기 위한 가죽 신발. 그리고 그 살아있는 가죽을 아프게 하기 위한 가죽 벨트. 피로 검붉어진 아버지의 손가락이 토끼의 내장을 풀밭에 떨구었다. --- p.89 그 사람들에게 무언가 붙잡을 만한 것이 있었기를,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부적이 있었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 p.94 삶이란 전부 해를 끼치는 것이구나. 우리는 죽임으로써 사는구나. 마치 그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그렇지 않은 존재로 살았던 것처럼. --- p.115 그런 날에는 꼭 차가 식었거나 음식이 너무 짰고, 아버지가 지난주에 무척 맛있게 먹은 음식도 이번 주엔 참을 수 없이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엄마가 기억해야 했는데 하지 못했으며, 그것도 아니라면 종일 집에서 하는 일도 없이 놀기만 하는 엄마에게 아빠는 최소한 청소 정도는 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엄마가 잊었다. 또 그런 날에는 내가 말대꾸를 하거나, 당신들은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걸 암시하는 행동을 했거나, 아버지 돈으로 산 것, 그러니까 음식이나 물, 혹은 전기 같은 것들을 낭비했다. 그렇게 상황이 더 나빠졌다. --- p.123 단추 고리를 가지고 있고, 예쁜 부츠를 신었던 그 빅토리아 시대의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 그녀는 토탄 속에서 폐에 검은 물이 찬 채로 웅크리고 있을까. 흙이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을까. 두 손은 마지막 몸부림에 높이 뻗어 있을까, 아니면 패배를 받아들여 오므려져 있을까. --- p.133 그들, 그 습지 미라들은 죽지 않았다. 그들을 죽인 사람들에게 그들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돌아오는 걸 막기 위해, 죽은 몸으로 슬금슬금 집에 기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팔꿈치와 무릎을 날카로운 막대기로 뚫어 그들을 무덤에 고정했고, 나무로 짠 말뚝에 묶었으며, 어두울 때에는 죽이지 않았다. 등 뒤 덤불에서 새가 지저귀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p.136 나는 남자들이 말뚝을 박고, 버드나무로 짠 울타리 판을 고정하는 것을 봤다. 미친 연극. 아무리 들여다봐도 아무것도 없는 벽을 세우는 일, 여름밤 동물의 영혼들이 펼치는 주술. --- p.152 북이 울렸다. 송가가 시작되었다. 나는 함께 부르지 않았다. 묶여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내가 그들 앞에 서 있었다. 그래, 내가 여기 있어. 그러니 날 죽여. --- p.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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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여름 내내 함께 머문 소설.” _타임스 이 책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영국의 소설가 세라 모스의 작품으로, 작가의 여섯 번째 소설이자 대표작이다. 세라 모스는 2009년 《콜드 어스》를 발표한 이래, 아름다운 문체와 입체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주목받아왔으며, 2018년 《유령의 벽》 발표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다졌다. 영국의 수많은 매체가 그해 최고의 책으로 《유령의 벽》을 꼽았으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타임스, 가디언, 파이낸셜 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뉴 스테이츠먼,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스펙테이터, 엘르, 스릴리스트, 북 라이엇, 메트로 등. 또한 아쉽게도 수상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여성소설상 후보, 영국왕립문학협회의 온다체상 후보로도 이름을 올렸다. 현재 영미권 제1선의 작가들인 힐러리 맨틀이나 매기 오파렐도 세라 모스의 작품에 주목하며 찬사의 말을 보탰다.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매혹적인 여성 서사 소설가 강화길 추천 《유령의 벽》은 다양한 결을 가진 작품이지만, 무엇보다도 여성 서사로 읽어낼 수 있다. 특히 소설의 독특한 공간적 배경이 이 작품의 시간적인 스케일을 광폭으로 확장시키며,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가부장제 질서의 유구함을 첨예화한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곳은 현대 영국 북부의 어느 고립된 숲인데, 이곳에 고대 철기 시대의 생활을 연구 혹은 취미로 며칠간 재연하려는 사람들이 모인다. 말하자면 고대와 현대가 겹쳐지는, 2천 년을 품은 공간인 것이다. 이 고립된 공간에서 하루하루 명확해지는 것은 다름 아닌, 여성을 향한 야만과 폭력이다. 야만과 폭력은 명확하다 못해 기묘할 정도로까지 치닫는다. 어떤 독자들은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연상할지도 모르겠다. 《파리대왕》이 인간에게 내재한 야만성을 보여줬다면, 《유령의 벽》은 그 야만성이 향하는 곳이 여성임을 드러낸다. 작가 세라 모스가 빚어내는 풍경은 아름답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보석 같다.”(가디언)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고대의 주술 의식, 으스스한 습지 미라 등의 소재와 만나면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혹자는 고혹적이라 할 것이고, 혹자는 어둠의 매혹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것이 자칫 가학적인 자극으로 빠지지 않게끔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세라 모스는 그러한 팽팽한 균형과 긴장감 속에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어판에 붙인 강화길 소설가의 말마따나 “그녀는 대담한 주술사이며 부러운 이야기꾼이다.” 옮긴이가 말하는 유령의 벽 상당한 고고학적 지식과 깊이 있는 현대적 사유를 담고 있는 《유령의 벽》은 그 풍성함에 기대어 읽을 수 있는 결 또한 다양한 작품이다. 먼저 열일곱 소녀 실비가 갖는 사회경제적 위치와 그에 수반되는 제한적 자유를 통해 젠더, 계급, 그리고 지역이 유발하는 격차와 불평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인간의 인간에 대한 억압과 폭력, 그리고 그것을 해체하는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유령의 벽’을 소설 속에서 재생시킴으로써 현재 세계 곳곳에서 도드라지고 있는 장벽에 대한 사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유령의 벽’은 로마시대 역사가 타키투스의 저술에서 간략하게 언급된 것인데, 기록에 따르면 로마군에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항한 잉글랜드 북부 부족 중 한 부족이 벽을 세우고 선조들의 유해를 매달아 전시하는 방식으로 저항을 했다고 한다. 작가는 현재 세계 곳곳에서 높아지고 있는 타자에 대한 유형무형의 벽들이 ‘유령의 벽’과 다르지 않으며, 이 벽들은 실제로 누군가를 막는 기능을 기술적으로 탁월하게 수행하기보다는 적대의 뜻을 전하는 신호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본다. 습지 미라는 간단히 설명하면 북유럽, 특히 덴마크, 독일, 영국, 아일랜드, 그리고 네덜란드 등지의 습지에서 발견되는 썩지 않고 보존된 인간의 유해다. 이들을 왜 죽였는지에 대한 이유나 정황은 연구가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고, 현재로서는 당시 습지가 물도 아니고 땅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신성한 장소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기반하여 제의를 드리는 희생제물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이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염두에 뒀던 제목은 ‘유령의 벽’이 아닌 ‘희생양’이었다는 작가의 말을 생각한다면, 철기시대의 희생양이었던 ‘습지 미라’를 현대적으로, 그러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재구성하여 이해해보려는 노력의 산물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습지 미라, 죽었으나 죽지 않은 채로 이천 년을 산 그들. 폭력의 주체가 밀어넣은 세계에서 살아 돌아올 수도 없고 그 너머의 길을 갈 수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서 이천 년을 보낸 그들은 《유령의 벽》을 통해 아버지의 폭력, 여성에 대한 차별, 그리고 계급적 편견 아래 놓여 극복의 길을 찾지 못하고 새로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하는 실비, 더 나아가 이 시대의 희생자들과 조응한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보석 같은 책. 간결하고 눈부시다.” _가디언 “여름 내내 함께 머문 소설.” _타임스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가 중 한 명. 그녀가 어째서 부커상 후보가 아닌지 줄곧 의문스럽다.” _인디펜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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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은 통곡한다. 실비는 유령이다. 벽에 숨어 우는 소녀이다. 그녀는 대체 왜 통곡하는가. 멈추지 못하는가.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학대와 방치, 억압과 고통. 누군가는 그것을 완벽하게 묻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아니다. 실비의 비명을 몰리가 들었다. 그 순간 이 소설은 실비의 통곡을 들은 몰리의 이야기가 된다. 세라 모스는 입장이 다른 이 두 소녀의 이야기를 빈틈없이 촘촘하게 이어나간다. 그녀는 대담한 주술사이며 부러운 이야기꾼이다. 이제는 실비가 울지 않기를, 몰리 역시 유령의 벽 앞을 서성이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
- 강화길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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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소설. 충격적인 데다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 매기 오파렐 (소설가, 2020년 여성소설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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