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a Charon
Sayantani DasGupta
Nellie Hermann
Craig Irvine
Eric R. Marcus
Edgar Rivera-Colon
Danielle Spencer
Maura Spiegel
김준혁의 다른 상품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의사의 의무이자 능력이다불과 몇 년 전 글 쓰는 의사들에 대한 책들이 화제가 되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고충, 환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단상들… 이런 책들에는 환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의사가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필요할까? 의사는 치료만 잘하면 의사로서 의무를 다한 것 아닐까? 공감이 치료와 정확히 어떤 관계가 있을까?책은 공감이 치료에 미치는 영향을 여러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서사의학 프로그램 설립자이자 컬럼비아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리타 샤론이 소개한 자신의 사례를 보자. 당뇨를 앓던 여성은 내분비과 여러 곳을 전전하다 샤론을 만나러 왔다. 그녀는 흥분한 상태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샤론은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던 여자는 “내가 원하는 건 새로운 치아예요”라고 말한다. 당뇨로 윗니를 모두 잃은 그녀에게 필요한 건 당뇨 치료가 아니라 틀니였다. 샤론은 그녀를 치과로 보내 틀니를 만들게 했고,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샤론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병원의 진료는 의사가 주도한다. 의사가 전문적인 지식과 과학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환자의 상태를 밝혀내는 것이 우리가 알던 진료였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환자의 목소리에는 의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과학적인 데이터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의사가 환자의 아픔에 공감해야 한다는 것은 환자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을 통해 환자가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샤론은 환자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었다. 의사에게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은 의무이자 능력인 이유이다. 공감의 기술을 키우려면 왜 문학적 글쓰기 훈련을 해야 하는가의료인의 공감이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면, 왜 문학적 글쓰기가 필요할까? 앞의 사례에서는 환자가 다행스럽게도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말해주었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그러지 못한다. 의사는 환자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해석해내고 이를 진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감을 위한 듣기의 기술은 진단의 수단으로서 전문 의료인이 갖추어야 할 능력이고, 따라서 공감에는 전문적인 훈련이 요구된다. 그 방법으로 책에서 제시하는 것은 문학적 글쓰기 훈련이다. 문학 텍스트는 그 의미의 해석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환자의 말과 유사하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환자의 말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의료인이 하는 문학적 글쓰기는 하나의 문학을 읽고 그에 대한 개인의 감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치료라는 명확한 목적을 두고 하는 전문적인 훈련이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글쓰기에 필요한 지시문이 있어야 하고, 글 쓰는 시간은 한정적이어야 하며, 쓴 글에 대해 피드백을 해줄 사회자(퍼실리테이터, facillitator)가 있어야 한다. 지시문은 문학의 특정 부분과 글의 주제를 명확히 제시해야 하고, 사회자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앨리스 먼로의 단편 「물 위의 다리」를 읽고 등장인물 사이의 상호작용이나 대화에 관해 5분간 적어보시오”라는 식이다. 이렇게 의료인이 텍스트에 내재한 의미를 이끌어내는 훈련을 하게 되면, 환자와의 대화에서도 진단에 필요한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어 효과적인 치료를 가능케 한다. 당뇨 환자에게 인슐린 주사가 아니라 틀니를 처방한 리타 샤론처럼 말이다. 현대 의학이 나아가야 할 공감과 연대의 이야기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 서사의학은 의료인문학의 한 분과로서 1990년대에야 시작된 최신 학문이다. 국내에는 서사의학, 내러티브 메디슨, 내러티브 의학 등 용어조차 정립이 안 되었을 정도로 생소하다. 이 생소하기만 한 학문이 왜 지금 주목받고 있을까? 서사의학은 의학의 본질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됐다. 기존 의학은 사람을 육체와 정신, 두 가지로 분리된 존재라 보았고, 그 대상을 ‘육체’로 한정시켰다. 그래서 의사에게는 정신을 알 수 있는 환자의 목소리보다 육체를 알 수 있는 의무기록이 더 중요했다. 서사의학은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의학이 육체가 아니라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면, 정신을 왜 외면해야 하는가. 사람이 육체와 정신으로 이분화된 존재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이고, 의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육체의 복원이 아니라 일상의 회복이라면, 의학은 사람의 정신이 내는 ‘목소리’에도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차갑기만 한 병실에서 의사가 컴퓨터 모니터의 의무기록만 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눈을 마주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감상어린 이유 때문이 아니다. 환자의 목소리에 담긴 진짜 의미를 찾아야 일상으로의 회복을 위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와 함께 치료를 해나가는 연대의 이야기(narrative)인 서사의학은 현대 의학이 나아가야 할 ‘공감의 의료’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