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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죽음과 별
흰 개와 함께 있는 여인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엘레노어 제2부 심상사진 빛에 ‘마사지’ 하기 소포모어 갈대숲 바람소리 부재의 존재 느그시봄 일기일회 흑인병사의 사진 제3부 따뜻한 손 원숭이, 달 잡기 두문불출 고소장 아이와 침팬지 가족 모작 환희의 울먹임 덤덤끈끈 담담깐깐 피리 부는 소년 불법의료행위 제4부 삶이 다하는 날까지 괴테의 뒷모습 동행 상상대로 하는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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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첫날, 자기소개를 하던 이녀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미친 사람만 만나다 보니 내가 미치겠어요.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에 뭐라도 배워보자 해서 여기 나왔습니다. 사진이 특별히 하고 싶다거나 더욱이 사진 같은 건 추호도 관심없습니다만, 아무튼 뭐라도 배우는 게 나를 구해줄 것 같아서요.” --- p.14 누가 그렸을까? 베를린에서 진품을 본 기억이 난다. 정신과병원 안의 프로이트. 루치안은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손자다. 가슴 한쪽을 드러낸 여인의 표정은 결코 온화하달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여자가 걸친 가운은 노란색이지만 바랜듯 보이고 소파나 벽면도 음침한 분위기에 가까워 정신과 병동을 떠올리게 한다. 완벽한 복제품이다. 왜 이런 음산한 그림을? --- p.25 “사진 배우고 싶다고 하셨지요? 치유일 리 절대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대학 때 하고 싶었던 것을 찍어보세요. 앞으로 한 시간 후에 여기 병원 앞에서 다시 보기로 합니다.” --- p.52 그 사진들이다. 이런 옛 사진들을 왜 떠올려야 했을까. 긴 머리를 흘러내린 채 지그시 눈 감은 사진. 남편인 목사 그리고 예수. 이래서는 안 되는 예수로 보였고 그래서는 안 되는 그 예수가 측은하다. 물에 잠긴 예수. 자유 롭지 못하고 갇혀 있는 예수. 캘러헌도 이런 느낌을 찍고 싶었던 것일까. --- p.60 “화라니요? 분노랍니다. 격노!” 플라토닉과 플라스틱을 떠올리며 결국 또 시비를 걸고 만다. “그거네요. 분노와 분뇨, 격노와 경노. 플라토닉과 플라스틱, 그렇게 들을 수도 있는 거였잖아요. 죄송합니다. 장난으로 받은 것,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못나서 연락 못 드렸습니다.” --- p.106 휠체어를 탄 여자 뒤에서 우산을 씌워주며 뒤따라 걷는 남자의 뒷모습. 여자도 뒷모습이다. 빗줄기도 벽에 담겼다. 빗줄기 너머로 모자 쓴 한 여인의 실루엣, 입을 가리며 이 두 남녀를 지켜보고 있다. 그림 밑에 ‘Addicted 2 Groove’를 썼다. --- p.144 마침 이분의 집 화장실엔 대형 거울이 있었고 이것은 남편의 이미지 메이킹용 수단이었습니다. 이 거울로 남편의 이중적인 양면성을 다 보아온 한나연 씨는 그 거울이 평소 혐오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치우자고 했지만 무시됐습니다. 참으로 우연인데 이 거울을 한나연 씨가 들여다보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사진촬영이었지만 촬영을 통해, 그 결과물인 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자신의 진면목이 보였을 것입니다. 늘 자각해왔기 때문입니다. --- p.156 오른쪽엔 침팬지의 사진이다. 서로 팔을 뻗어 손을 내밀고 있다. 아기는 왼손, 침팬지는 오른손이니 흔한 악수자세와는 다르다. 아기는 발가벗었지만 침팬지는 털을 입었다. 둘 다 벗은 모습이다. 첫 문구를 훑는다. ‘인간은 1000만 종에 이르는 전 세계의 동물 가운데 하나이다.’ 현숙이 다 읽을 때까지 책을 들고 있다. 침팬지 머리 위의 글. ‘포유류에서의 우리 인간의 위치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 p.161 자신이 흑인이었다면 모멸감을 느낄 사진이라고 했다. 뒤에 시멘트 벽들이며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낡은 건물 앞에 흑인을 세워놓고 찍은 백인 사진가의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연출사진일 거라고 이녀가 사진을 설명했다. “사진가, 백인 아닙니까?” --- p.171 “털어서 먼지 안 나는지를 확인해보는 주머니털이법이 대한민국 형법 몇 조지요? 대한민국 법이라는 게 청소대행해 주는 거라도 되는가요? 가면극이 아니라 광대극이네요.” 전문가들이 하는 짓이다. 의사라는 전문직도 같다. --- p.196 색으로 보아 지우개도장은 세 종류다. ‘사랑해요’ 두 종에 ‘덤덤끈끈’이 하나 더. 남녀가 포옹하고 있는 자세는 〈키스〉와 유사하다. 남자 쪽은 파란색의 ‘사랑해요’를, 여자 쪽은 빨간색의 ‘사랑해요’를 찍었다. 배경은 ‘덤덤끈끈’으로 벽면의 흰 틈 없이 촘촘히 채웠다. --- p.209 대학강사도 학생들에게 표창장을 내줄 수 있느냐고. 서울지검이지, 여기가. “표창장 같은 거, 관심 없어 모르지만 강사라고 못 해줄 게 있겠습니까? 근데 말이죠. 이 앞 큰 문구점에도 표창장은 쌔고 쌨습니다, 종류별로. 직인이 문제일 텐데……. 그 흔해 빠진 표창장인 걸, 서로 알고 지내는 동료며 관계자들끼리 직인 하나쯤이야. 별로 어려울 게 없겠지요. 그걸 왜 숨어서 위조하고 있답니까?” --- p.238 “검사들은 제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자들이지. 꿩 먹고 알 먹고 국물까지 후루루룩. 다 뒤에서지. 그러려면 누군가를 앞세울 수밖에. 우리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우리도 나쁠 건 없어. 다음에 감면·사면 따위로. 누군가 감방에 들어오면 손을 보는데 우리의 의사로만 그런 양아치 짓은 안 해. 아무리 우리지만. 같은 감방동룐데 왜? 우린 양아치는 아니거든. 양아치 알지? 양다리 걸치고 요리 아부하며 저리 협박하며 왔다리 갔다리. --- p.240 “이현해 학생이 검찰측 증인으로 나온다네. 아무렴, 착한 학생인데 부모를 거스르겠어.” 우리, 대비 단단히 하자. 회만이의 진짜 따뜻한 손을 얼른 잡아봐야 하니까. 하고 이번엔 이녀가 등을 보이고 먼저 떠난다. 등이 운다. 내가 우는지 이녀가 우는지. --- p.255 “엄마,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누군가? 아이와 침팬지가 손을 잡는 그림을 그리면서 난 이런 생각을 했어.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은? 엄마, 의사선생님과 사진사 아저씨가 내 손을 잡아주신 거야. 나를 구해주신 거야. 며칠 후 병원 벽에 아이와 침팬지의 눈도 그려놓고 온 다음 날, 의사선생님한테서 문자가 왔어. 문자가 아니라 음악을 보내주셨어. 엄마, 엄마가 나 때문에 지금 많이 힘들 텐데 이 노래 엄마랑 꼭 같이 듣고 싶어, 꼭.” --- p.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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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의사가 사진가를 예술치유의 일환으로 고용한다. 50대의 목사부인과 40대의 여성, 20대 초반의 대입재수생이 정신치료를 받는다. 이들의 정신적 질환은 사실 현대의 모두가 겪는 물리적 정신적 생활불안정 또는 압박, 구속에서 비롯된다. 이들을 환자로 몰고 있는 가족이나 자신 그리고 의사나 예술가, 검사, 종교 등 소위 전문가를 포함한 사회라는 거대집단은 온전한가? 오히려 이들이 정신질환의 원인제공자가 될 수 있다. 로버트 퍼식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개인이 망상에 빠지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을 한다면 이것을 종교라고 부른다. 대입재수생의 말을 들어보자. "엄마, 사진사아저씨 만나던 그날, 나 죽으려고 했어. 근데 사진사아저씨가 주신 그림 한 장이 나를 구했어. 괴테의 뒷모습. 저분은 나를 구해주신 분이야. 근데 왜 죄인으로 저기 앉아 계셔야 하는지 모르겠어. 난 어려서 어른들 말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데 싶어. 엄마, 이분들이 죄인이라면 엄마의 딸도 죄인이 되는 거야." 사진 또는 미술로써 치유되는 과정에서 찾게 되는 자아는 환자만이 아니다. 치료사인 의사나 치유자로 참여한 사진가는 타인의 치유과정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얻게 된다. "기억해?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우리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으니 절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때." "기억해! 예술은 가장 세속적인 속물이어야 하는데 고르키는 그러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순수했다고 했지."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을 기억하는 남과 여는 끝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아르메니아화가 고르키와 달리 그 정원을 함께 나란히 걷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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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영혼을 움직이는 한 장의 그림과 사진 그리고 음악!
“엄마, 사진사아저씨 만나던 그날, 나 죽으려고 했어. 저분은 ‘괴테의 뒷모습’ 그림으로 나를 구해주신 분이여. 근데 왜 죄인으로 저기 앉아 계셔야 하는지 모르겠어. 난 어려서 어른들 말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데 싶어. 엄마, 이분들이 죄인이라면 엄마의 딸도 죄인이 되는 거야.” “소설이지만, 내 주장을 독자에게 세뇌하기보다 독자가 상상,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다. 언론은 국민의 심리를 이용, 바쁜 일상 속 국민들이 선정적 제목이나 사진만 보고도 세상을 마치 다 안 듯, 곡해하고 오해하기 쉽게 이를 조작, 악용하고 있다. 이 점을 소설 속에서도 반영하고 싶었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소설의 주인공, 정신과의사의 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세상이 믿을 수도 없게 변했지만, 선의마저도 왜곡해서 악의로 만들어내는 세상이 돼 버렸으니까요. 의술보다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세상입니다. 법이 똑바르면야 아무 문제가 없지요. 정말 이현령비현령 법이 아니라 법을 운영하는 자들의 그 고무줄 잣대 말이에요.… (생략) 털어서 먼지 안 나는지를 확인해보는 주머니털이법이 대한민국 형법 몇 조지요? 대한민국법이라는 게 청소대행해 주는 거라도 되는가요? 가면극이 아니라 광대극이네요.” 소설에서는 요즘 세태를 비웃듯, 터무니없는 압수수색에 대한 노골적 표현을 아끼지 않고 있다. “나도 대비! 하지만 난 가만 안 놔두겠어. 적어도 짜장면을 시키면 그걸 밖으로 다 내던져 버릴 거야. 왜? 여긴 환자들이 주인인 곳이야. 환자들에게 짜장면 냄새를 맡게 할 순 없잖아. 병원이지 중국집이 아니니깐, 여긴. 꼭, 난 해.” 소설의 주인공 정신과의사의 말이다. 다시 사진사의 다음 말도 주목할 만한다. “이 검찰청 앞 큰 문구점에도 표창장은 쌔고 쌨습니다. 종류별로, 직인이 문제일 텐데, 그 흔해 빠진 표창장인 걸. 서로 알고 지내는 동료며 관계자들끼리 직인 하나쯤이야. 그걸 왜 숨어서 위조하고 있답니까?”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에는 사진사가 감옥생활하던 중 전과 18범과 함께 있으며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저자는 말한다. “이것은 실화인데, 개인적인 일로 감옥살이를 한 달 정도 한 적 있는데, 서울구치소에서 이 전과 18범을 만났고 그의 말을 그대로 소설 속에 옮긴 것이다. 노태우 정권 당시,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 검사들을 앞세워 전국 조폭소탕령을 펼치며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던 때라 한다. 전과 18범이 말한다. ‘검사들은 제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자들이지. 꿩 먹고 알 먹고 국물까지 후루루룩. 말 안 듣는 놈을 그들이 지목해. 감방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느 누구도 모르거든. 알 턱이 있나. 군대에서 그런 것처럼. 다 자살이라고 하면 만사 오케이인 곳. 아직 형이 확정 안 된 사람을 감옥부터 처넣고 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 되거든. 안 돼? 그럼 우릴 코 푸는 배우로 활용하지. 억울한 사람들. 엄청 봤습니다. 웬만치 않고는 버티지 못해요. 법이요? 그게 법입니다. 이 나라.’ 라고 말하면서 현행범이 아닌 미확정된 사건에 대해 관련자를 구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 그 조폭은 기자가, 언론이 기사로 막아달라고 당부까지 내게 했다. 20년 전의 일이다. 정중한 부탁이었음에도 동행한 사회부기자는 이 의견을 묵살했다.” 암울한 현실을 예리하게 담고 있지만, 이 소설은 결국, 따뜻한 사랑이야기이다. 부모간, 남녀간 갈등 속 사랑이야기를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간마다 ‘심상치유’의 매개가 되는 사진 그림 음악 등이 다양하게 소개되며 소설에 집중하는 흥미를 증폭시킨다. 참고로 본문에 등장하는 고르키의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루치안 프로이트의 〈흰 개와 함께 있는 여인〉, 캘러헌의 〈엘레노어〉 등은 오동명 작가가 직접 그린 모사품이다. 결국 이야기 속 주인공은 사랑의 첫 여행지 이스탄불을 향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릴케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과업 중에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다, 다른 모든 일은 그 준비작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결국 세상사가 모두 다 사랑이다. 남녀 사랑만이 아니라 부모자식간, 형제간, 계급간…진정한 사랑이 관계에서 매개한다면 혼란이나 갈등이나 반목·질시·전쟁은 없으리라 본다.” 끝으로 오동명 작가는 글쓰기에 대한 소신을 말한다. “대학 4학년 때, 황순원 교수의 ‘수필작법’을 수강했고 황교수의 격려로 글을 쓰게 되었다. 이것이 작가로 가는 인생길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옳은 걸 제대로 전하고 싶다. 신춘문예나 어떤 상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문득 떠오른다. 이 글은 기존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아 ‘목소리 소설’이라고도 하는데, 수년간 수백 명을 인터뷰하여 엮은 이야기로 Q&A가 아니라 논픽션 형식을 빌었지만, 소설처럼 읽힌다. 2015년엔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나라고 못할 건 없지 않나? 기존의 형식 따위는 따라가고 싶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