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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 004 1부 이 숲에 뭘 하러 왔더라? 나물을 뜯다가, 꽃비를 맞았다 014 바람결에 꽃가루 날려서 021 제대로 핀 꽃에서 향기가 난다 027 꽃을 선물하는 즐거움 032 열매가 열리는 나무는 따로 있다 040 모두 조금씩 다르게 생겼다 047 시부거리를 아세요? 051 2부 이상한 아이 나, 덩굴개별꽃 058 잎을 찬찬히 펼쳐보면 066 청개구리를 보면 브레이크를 밟아라 073 드릴 게 없으니 이거라도 드세요 076 엄마의 택배 상자 081 우리 집 사용 설명서 086 사랑스러운 사람들 090 이상한 아이 093 3부 조금 느려도 괜찮아 나의 이정표 100 나를 닮은 아이 108 시간이 멈춘 숲 113 그냥 자연스러운 것 117 늙지 말고 사소 123 손길 가는 서어나무 129 내가 신경쓸 일 아니야 133 호수에도 단풍이 든다 136 4부 오늘도, 파릇 오래된 빚을 갚았다 144 평온한 하루의 끝, 어떡하지? 151 너무 날카롭지도 않고 너무 뭉툭하지도 않게 157 배추꽃이 피었다 163 이십 년 지기를 보내며 168 폭설 스케치 173 당신은 아세요? 179 완벽한 적당함 182 겨울일까, 봄일까 188 톺아보기 책에서 만난 식물들 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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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가 없고, 둘이서는 할 수는 있지만 너무 버겁고, 넷이서 하면 한 사람은 빈둥거리고 놀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꼭 세 사람이 필요하다. 비가 내려도 못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도 어렵다. 날씨가 좋은 날, 바람이 불더라도 가끔 살랑살랑 부는 정도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서두른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그저 천천히 서로 손발을 맞추고 리듬을 맞추며 느리게 해야 한다. 많이 힘들지는 않은 일이다. 흙을 디디고 먼산에 한눈도 팔다가 봄바람에 가슴도 설레면서 그렇게 놀듯이 천천히 하면 된다.
--- p.15 「나물을 뜯다가, 꽃비를 맞았다」 중에서 어느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좀꿩의다리는 키가 그새 높이 자라 있었다. 이것도 예전엔 나물로 먹었는데 요즘은 이 동네에선 역시 아무도 먹지 않는다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이셨다. 엄마는 이후에도 만나는 식물마다 ‘이건 먹는 거, 저건 못 먹는 거’를 반복하셨다. 어려운 시절을 살면서 산에 나는 식물들을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으로 나누는 것은 아주 기본이었을 것이다. --- p.25 「바람결에 꽃가루 날려서」 중에서 어느새 산그늘이 내리고 눈이 시릴 만큼 푸르기만 하던 산들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소쩍새가 울었다. 소쩍새만이 아니었다. 귀신이 부는 휘파람 소리를 닮은 호랑지빠귀 소리도 들렸고, 어디선가 개구리도 개굴개굴거렸다. 그 개구리 소리를 두고 엄마는 청개구리 소리 같다고 하셨다. 나로서는 청개구리인지 참개구리인지 구분할 수가 없지만, 엄마가 그렇다 하시니 아마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 p.26 「바람결에 꽃가루 날려서」 중에서 지금에라도 꽃 선물을 하고 싶다면, 그 꽃이 굳이 장미가 아니어도 좋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안다. 각시현호색 백만 송이를 선물하기 위해선 이른봄 천마산으로 가면 되고, 천마산에서 때를 놓치면 광덕산을 찾으면 된다. 나도바람꽃 백만 송이를 선물하기 위해서는 보현산을 찾으면 되고, 얼레지를 선물하려면 태백산 유일사에서 문수봉까지 걷기만 하면 된다. 하얀 조팝나무 는 한적한 시골 어디에서나 산과 맞닿은 곳이면 쉽게 만날 수 있다. 꼭 장미를 선물하고 싶다면 올림픽공원을 찾으면 된다. --- p.36~37 「꽃을 선물하는 즐거움」 중에서 막냇동생은 작은 꽃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내가 참 신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길을 가다가 또는 숲을 걷다가도 꽃이 피어 있으면 그것의 이름은 ‘꽃’이요, 꽃이 피어 있지 않으면 ‘풀’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내가 나무를 잘 모를 때 모든 나무들의 이름이 그저 ‘나무’였듯이 말이다. --- p.47~48 「모두 조금씩 다르게 생겼다」 중에서 “야. 지금 보이는 가로수가 무슨 나무야?” “회화나무 .” 친구의 질문에 나는 아주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그 길로 그냥 쭉 걸어와. 그러면 회화나무 가로수가 끝나고 버드나무 가 시작되는 곳이 있을 거야. 세번째 버드나무 아래서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그 대답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빠른 걸음으로 다시 그 길을 걸어갔다. 회화나무 가로수가 꽤 길게 이어져 있었다. --- p.103~104 「나의 이정표」 중에서 이 아이는 자라서 다슬기를 다시 만나게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다슬기가 반딧불이의 밥이라고 알려주었던 일을 떠올릴까. 어릴 때 이모랑 손 씻으러 개울가에 갔다가 다슬기를 만난 일을 기억하게 될까. 어쩌면 아무것도 기억 못할지도 모른다. 단편적으로 일부분의 영상만을 액자에 걸린 그림처럼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 아이에게 또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다음에 우렁이를 함께 보게 되면 시집가는 우렁이 엄마 이야기를 꼭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p.122 「그냥 자연스러운 것」 중에서 상추꽃이나 쑥갓꽃은 본 적이 있지만 배추꽃은 처음 보았다. 먹을 줄만 알았지 꽃을 볼 목적으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작은 접시에 앉힐 때만 해도 설마 꽃을 피울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었다. 다만 잎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생각했다. 그 모습을 보는 동안에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은 있었던 것 같다. --- p.167「배추꽃이 피었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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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이 바깥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순환
숲에 들어가기까지 우리가 만나야 하는 것들 저자가 제시하는 ‘자연 바라보기’는 도달이나 성취가 아니다. 그것과는 거리가 먼 사색과 탐사에 가깝다. 물론 산을 오를 때에 정상에 오르겠다는 목표나 그곳에 올라 ‘야호’를 외친 뒤 너머에서 들려오는 메아리를 듣겠다는 목표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다른 것들에 주목한다. 바로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애정”이다. 산과 숲에서 우리가 원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는 “지난해 줄기가 땅바닥에 자빠진 모습도 보아야 하고, 주변 밤나무에서 떨어져 겨울 동안 너덜너덜해진 밤송이도 만나야” 하며 “조팝나무와 쥐똥나무도 헤치고 지나야 하고 두꺼운 낙엽을 밟아서 미끄러지기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작은 꽃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주변도 함께 눈에 담아야” 하므로, 저자는 자연에서 만난 어쩌면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될지도 모르는 곳에 하나하나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세심한 관찰력이 장점인 저자는, 어릴 적에 예쁜 꽃 한 송이를 눈여겨보았다가 식물에 대해 좀더 공부하게 된 후 그 꽃을 기억해내고 ‘쇠뿔현호색’이라는 신종으로 학계에 발표할 수 있게 된다. 탐사가로서 숲을 다니는 입장이지만 숲에 핀 꽃인 ‘덩굴개별꽃’이라는 꽃의 시점에서 인간의 방문을 관찰해보기도 하고, 부모님이 농촌에서 보내주신 꽉 찬 택배 상자 속에서 배춧잎을 하나 발견하고는 곁에 두고 관심을 기울이며 꽃을 피워내기도 한다. 한 번 가본 숲길 산길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그이지만, 도회지의 길에서는 무지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다. 남들은 건물이나 간판을 보고 잘만 찾아가는 도시에서 자주 헤매고 길을 잃는다. 그곳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그만의 비법은 도시의 틈에 자리한 자연, 즉 가로수들이다. “지금 보이는 가로수가 무슨 나무야”라는 질문에 “회화나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고, “회화나무 가로수가 끝나고 버드나무가 시작되는 곳이 있을 거야. 세번째 버드나무 아래서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라는 안내에 의지해 길을 찾을 수 있다. 길가의 나무가 그에게는 이정표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우리에겐 당연한 것이 저자에겐 당연하지 않은 대신, 저자에게 당연한 이름들이 우리에겐 종종 낯설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상생으로 독자는 책 속에서 숲의 풍경을 읽고 비로소 소통하게 된다. “내가 비목나무를 모를 때 이 숲에 비목나무는 단 한 그루도 없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며 이름들을 알아가는 일 책 속에는 식물에 대한 전문 지식보다는 직접 체험한 일상과 그에 대한 감상이 곳곳에 녹아 있다. 산그늘이 지고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청개구리 소리 같다”고 말하는 어머니와 남의 집 마당에 심어진 초피나무를 보고 열매도 안 열리는 수그루만 심으면 어떡하느냐는 아버지가 있다. “시부거리가 어디냐”는 질문에 그 이름이 붙은 유래를 알려주는 버스기사도 있다. 누군가는 직접 지나온 시절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글을 통해 접하는 장면 그 사이에 이 책은 존재하고 있다. 이렇듯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은, 따스한 그림과 어우러져 감성을 더해준다. 그림의 부드러운 스케치와 색채는 ‘물기를 머금은 숲속’이라든가 ‘새벽이슬 머금은 잔디’처럼 우리에게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을 선명히 보여준다. 그림을 보며 함께 글을 읽으면 눈앞에 푸른빛이 차오를 것이다. 자연스레 궁금해져오는 것도 있겠다. 이 나무는, 꽃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생김새에 관한 질문이다.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책의 맨 뒤에 ‘톺아보기’를 통해 저자가 탐사하며 직접 찍은 사진들을 수록하였다. 하나하나의 이름과 함께 사진이 첨부되어 있으니, 만나고 싶은 이름이 있다면 눈여겨보았다가 언젠가 숲에 들어가게 되면 만나보길 바란다. 전에 숲에 들어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나무이고, 나무 아닌 것은 풀이고, 꽃이 피어 있으면 그저 꽃이었던 것들이 하나하나 제 이름을 찾아가고 시선 닿은 곳마다 새로운 의미가 되어오는 순간. 무성한 것들의 이름을 알아가는 일, 그 이름들에 마음을 나누어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시작할 자연 탐사의 첫 걸음이 아닐까. 책을 읽어가다보면 유독 마음에 움트는 새싹 같은 이름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이후에 당신이 언젠가 ‘가끔은 숲속에 숨고 싶을 때’에 숲을 찾게 된다면 그곳에 숨어 있는 당신만의 식물을 찾아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저자가 풀어내는 이 에세이 속에서 하나쯤 찾아낸 이름으로 당신의 계절이 좀더 푸르러진다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