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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세 가지가 없었던 근우회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1장. 조선 여성운동계에 서광이 비치다 근우회의 탄생 공고한 단결을 도모하자 1000여 명이 모인 창립 대회 “근우회에 바란다”-각계각층의 반응 2장. 자매들이여, 세상을 변화시키자 근우회의 기둥, 중앙 집행위원회 누구든지 연필과 노트를 준비하라 경제의 독립이냐, 지식 향상이냐? 근우회 전국 순회강연단 여성의 일상을 함께하다 일본 경찰 성폭력에 항의, 책임자 처벌 요구 “스무 살 여자가 도모지 철이 없고 세상 분별을 하지 못한다” -[별건곤] 비매 운동 3장. 연보라 배지를 단 여성들의 행진 1928년 7월 14일, 제1회 전국 대표자 대회 세계전쟁 반대 결의안 전국에서 모인 여성해방 혁명 투사들 강령 수정과 행동강령 제정 경찰 훼방으로 무산된 전국대회 4장. 식민지 일상에 균열을 내다 성황리에 열린 근우회 간담회 선전일에 헝겊 단추를 판 까닭 ‘자치기 자치기 자뽀뽀’, 활동은 놀이와 함께 재만동포 동정 음악회 5장. 치열한 투쟁으로 조직된 지회들 전국 지회 설립 현황 근우회 행동강령을 기초한 경성지회 1500명이 몰린 평양 부인 야유회 지역에 부는 새 바람 6장. 무궁화에 심장을 새기다 “눈에 막대 든 것을 살피라”-기관지 [근우] 창간 “조선 자매들아 단결하자”-근우회 선언 근우회 리플릿 [여성과 단결] 보라색과 무궁화-특수와 보편의 동시성 7장. 근우회는 불온하다! 일제 경찰의 끈질긴 방해공작 강연회와 ‘바깥놀이’를 금지하다 근우회 경영 야학은 모조리 폐쇄하라! 대회장의 감시경찰 거듭된 검거와 인신구속 8장. 근우회의 여성들 식민지 하층 여성이 왜 가장 혁명적인가 창립과 해체를 함께한 세 명의 인물 근우회 중심인물 11인의 기록 초기 핵심인물 12인의 기록 후기 핵심인물 12인의 기록 닫는 말: 역사의 스승, 조선 페미니스트들이 먼저였다 부록 주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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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5월 27일, 초여름 밤이다. 종로 중앙기독교 청년회관 앞으로 녹색 휘장을 가슴에 붙이고 회원들과 방청객, 신문기자들이 시작하기도 전에 몰려왔다. 대회를 구경하려고 어떤 이는 지방에서 일부러 올라왔고, 다른 이는 며칠 전부터 경성에서 묵고 내려가지 않았다. 150여 명의 회원을 포함해 1, 2층의 방청석이 빽빽하게 들어차 참가 인원은 1000명에 이르렀다.
-1920년대 초반부터 종교 단체가 아닌 여성해방을 목표로 하는 여성단체가 전국에서 조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성 인구의 5퍼센트에도 못 미치지만 여성들은 중등 또는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공장이나 작업장에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조건들이 근우회 조직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근우회의 여성들은 일제 지배체제에 균열을 냈다. 결혼 생활과 제도에 균열을 냈고, 지역에서 일어난 파업을 적극 지지했고, 경찰의 무리한 폭행에 맞섰다. 근우회는 여성들이 모인 단체가 아니라 조선 페미니스트의 활동, 경험, 이론을 생산했던 작업장이었다. -중심 슬로건에는 여성문제를 포함한 교육, 이주, 복지, 정치적 사회적 자유, 민족과 인종 그리고 전쟁 반대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다. 근대 국민국가에서의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제국과 식민의 경계를 넘어선 독립권을 주장했다. 근우회는 여성 개인 문제부터 민족과 인종 그리고 세계전쟁까지 고민했다. 왜냐하면 이들 권리가 곧 여성 개인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우회 선전은 축제처럼 진행되었다. 집행위원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회원이 함께 일하는 방식은 직접민주주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있음을 알려준다. 단추로 근우회를 알리는 운동은 참으로 조선의 페미니스트들의 기발하고 재미나고 흥미로운 행위다. -근우회는 동시대성과 동시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을 역사와 사회적 구조에서 찾았다. 이를 타파할 힘은 단결에서 찾은 것이고 따라서 근우회의 모토는 조선 여성, 세계 여성, 단결이었다. 이를 담아낼 상징은 바로 보라색과 무궁화였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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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오너라! 단결하자! 분투하자!
조선 자매들아! 미래는 우리의 것이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여성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역사학자 이임하의 한국 페미니즘의 기원인 ‘근우회’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근우회의 창립 과정과 조직 구성, 선언과 강령, 기관지 발행, 다양한 선전 활동과 실천, 중심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통해 일제 강점기에 근우회 여성들이 어떻게 식민지 일상에 맞서며 일제 지배체제에 균열을 냈는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근우회는 94년 전 행동강령을 통해 사회, 경제, 문화 그리고 법률적 차별 철폐, 농민과 노동 여성의 이익과 산전 산후 임금 지불 등을 주장했다. 한국 여성이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권리를 제시한 것이다. 여성운동이 기본권 획득을 위한 긴 투쟁의 여정이었다는 점에서, 근우회의 행동강령은 한국 페미니즘의 효시이자 기원인 셈이다. 당시 식민지 여성들은 식민지 질서 체계의 하층이었지만, 가장 혁명적인 방법으로 식민지 지배 질서를 무너뜨렸다. 근우회는 민주주의를 조직 안에서 실천하고 각종 사회 문제에 개입하고 식민지 지배 질서를 거부하고 파괴했다. 지역별로 지회와 야학을 운영하고, 전근대적인 결혼 생활과 제도에 균열을 냈고,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실태 조사를 했으며, 지역에서 일어난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을 적극 지지했다. 일제의 성차별과 성폭력에 단호한 목소리와 행동으로 대응했다. 일본 경찰의 가택 수색과 연행, 검거 그리고 인신 구속에도 이들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근우회는 당신 조선 페미니스트의 활동, 경험, 이론을 생산했던 작업장이었다. 그런데 근우회는 오랫동안 지독한 오해와 왜곡에 시달렸다. 근우회를 소개할 때면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신간회의 ‘자매단체’ 또는 ‘외곽 지원 단체’라는 단언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 여성들을 소개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아무개의 아내, 아무개의 딸, 아무개의 누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저자는 여성 아무개의 삶과 활동을 남성 아무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처럼 근우회도 근우회만의 실천과 역사가 있고 그것은 신간회로 대체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는 근우회를 ‘신간회 외곽 단체’라고 부르거나 규정하지 말고 근우회 그 자체 실천과 경험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 담긴 근우회의 1927년∼1931년 상상을 현실로 만들며 용기 있게 싸워나갔던 실천과 경험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성찰할 실마리를 제시한다. 당시 근우회는 연령, 학력, 지역이라는 틀로 집단을 나누는 근대 통치성에서 벗어난 단체였다. 근우회 여성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근대를 넘어선 투쟁이었고 새로운 역사를 여는 실천이었다.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지역, 학력, 연령을 벗어나 서로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회운동을 실천했던 당시 근우회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