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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_물살을 거슬러 가는 연어이기를 바라며
제1장. 서천꽃밭인 해방공간 새벽, 서울의 거리 / 일상성과 역사 / 단절과 연속 / 여성주체들 제2장. 유엔의 첫아들, 대한민국의 탄생 새 조선 건설과 배제 국치랑을 일소하자 / 조선의 어머니와 아내로의 호명 / 일상의 변화와 공민으로 구성될 여성 국가기구의 젠더화 보건후생부 부녀국 창설 / 여자경찰서 창설 / 국가기구 안의 타자 제3장. 작업장에서의 일상과 노동 성찰의 시공간, 파업 작업장에서의 파업 / 8개월 동안 계속된 화신백화점 쟁의 / 상경 투쟁의 원조, 동양방직 인천공장 / 조선인 자본, 경성방직 / PX로 내정된 중앙백화점 / 기타 작업장에서의 쟁의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이동의 자유 : 기숙사 방 사이를 마음대로 다니게 해 달라! / 신체에 가해진 폭력 : 밤새도록 구타 당하다! / 집회와 시위에 참가할 자유 : 노동자도 생각하는 사람이다! / 자본(관리인)의 이간과 분열책을 거부 작업장 안 그녀들의 목소리 ‘청어 한 마리에 백원이라죠’ / ‘나 어린’ 여직공과 산업 전사로 부르기 /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 제4장. 섹슈얼리티와 ‘여자 국민’ 민족의 ‘능욕’ 사건 또는 너무나 ‘사소한’ 범죄 사건 발생과 공판 / 피해자 여성들 / 사건을 둘러싼 반응과 담론 법령 제70호와 법률 제7호(인신매매 금지와 공창 폐지) 검진, 국가에 의한 몸의 관리 제5장. 거리로 나선 여성들 조선부녀총동맹 결성 대회 / 독립촉성애국부인회 전국 부인 대표 대회 / 여성대회에 대한 논평 / 여성단체와 활동 연표 / 운동의 젠더화 맺음말_해방공간, 여성들의 이름 부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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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천꽃밭인 해방공간
해방공간의 서울은 도시가 내품는 악취들로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해방공간 서울에는 새로운 국가 건설의 꿈을 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뛰어든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 꿈들은 서울의 악취를 쓸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해방공간의 의미이기도 하다. 도시의 악취가 아닌 해방공간 서울의 힘을, 다시금 해방공간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읊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찬란하고 아름다운 꿈들이 활짝 피었던 해방공간을 일상성, 단절과 연속, 여성주체라는 틀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2장. 유엔의 첫아들, 대한민국의 탄생 1945년과 1946년 모두 국가 건설이 먼저이니 여성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부엌에서 나설 것을 요구받았고, 이런 요구에 여성들도 희생이니 애국심이니 하는 언어로 답했다. 그러나 1947년과 1948년 ‘밥도 할 줄 모르는 여성들이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라며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비판이 가해졌다. 앞의 내용처럼 남녀평등을 주창하며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여성, 곧 여성의 직분을 소홀히 하는 여성은 오히려 여성의 지위를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제3장. 작업장에서의 일상과 노동 1945년, 작업장에서 일어났던 파업은 일제 자본의 규제와 규율을 흔들었다. 곧 일제 자본이 강제한 규율을 바꾸려 했던 해방공간의 작업장에서의 파업이 일상의 어떤 점들을 바꾸려 했는지 따져야 한다. 그리고 이 흐름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곳은 바로 대다수 여성 노동자로 이루어진 작업장이었다. 제4장. 섹슈얼리티와 ‘여자 국민’ 1946년 3월 16일, 경기도청 방역과로부터 매월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신체 검사를 시행한다는 통지를 받은 서울시내 4대 권번에 소속된 기생 800여 명은 “이는 조선 기생을 모독하는 것으로 800여 명의 기생이 총 폐업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국의 통고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을 것”을 결의했다 제5장. 거리로 나선 여성들 「혜란의 수기」는 갑자기 찾아온 해방의 기쁨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여성 노동자들도 “8월 15일 …… 공장의 인솔 아래에 수천 명이 시가로 시위 행렬을 하고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며 해방의 기쁜 눈물”을 흘렸다. 여성에게도 해방의 거리는 정치의 거리이자 설렘의 거리였고 행동의 주체로 거듭나는 장소였다. 여성들은 여러 단체들을 조직하면서 거리의 정치에 합류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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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 여성들의 이름 부르기
일제 강점기를 막 벗어난 직후 일상을 살아나가는 해방공간 여성들은 다양한 처지와 조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여성 지식인이나 여성단체들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던 것은 아니었다. 여성 노동자뿐만 아니라 가난한 하층 여성들도 새로운 국가 건설의 시기에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바꾸려 했으며 자신들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원족(소풍)을 가자.’, ‘외출의 자유를 달라.’, ‘기숙사 안에서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하라.’ 따위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파업을 일으키고 스스로를 얽매었던 다종다양한 규율과 감시를 거부했다. 이런 파업의 열풍은 홍등가에도 불었다. 기생들은 미군정의 일방적 성병 검진에 반대해 몇 차례에 걸쳐 파업을 단행했다. 그들의 파업은 기생들을 성 판매 여성으로 취급한 것에 대한 분노의 표시였다. 나아가 이들의 행위는 미군에 접근 가능한 모든 여성을 성 판매 여성으로 여기는 미군정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태도와 정책에 대한 항의였다. 여성 활동가들도 적극적으로 단체를 만들고 목소리를 냈다. 그들의 목소리는 단체 조직과 좌담회, 강연회, 대담, 여성을 독자로 하는 신문이나 잡지의 발간 활동 등으로 광범위했다. 이처럼 해방공간 여성의 실천과 목소리는 단일하지 않고 다양했다. 이 책은 해방공간에서의 노동쟁의나 시위를 ‘정치투쟁이냐, 경제투쟁이냐?’ 로 성격 지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해방공간 여성들의 열기, 고난, 희망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작지만 큰 일상에서의 실천들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