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신미식의 다른 상품
|
부시맨
1983년 11월은 영화 ‘부시맨’을 통해 내 마음에 부시맨이 들어온 때이다. 그때부터 이상하리만치 부시맨에 대한 생각이 항상 내 안에 존재했다. 언젠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왜 그렇게 오랜 세월 그들이 내 마음에 운명적으로 들어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2008년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우연한 기회에 부시맨을 만날 수 있었다. 내 마음 속에 오랜 시간 동안 자리 잡았던 그 부시맨을 처음 만났고 그들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 부시맨을 처음 만난 이후 11년 만에 나는 나미비아에 있는 부시맨들을 찾아 떠났다. 산(부시맨)은 남부 아프리카의 가장 오래된 주민으로 적어도 2만 년 동안 살아왔다. 산(San)의 또 다른 이름인 부시맨은 ‘도적’ 또는 ‘무법자’를 의미하는 네덜란드어 ‘bossiesman’에서 유래하였다. 이들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이 유럽인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실제로 도적 또는 무법자라 불리워야 할 사람들은 이들의 삶을 짓밟고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땅에서 살지 못하게 몰아낸 유럽인들일 것이다. 98,200명. 현재 보츠와나,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앙골라, 짐바브웨에 살고 있는 부시맨의 숫자다. 결국 지구상에 남아 있는 부시맨이 10만 명이 되지 않는 다는 뜻이다. 그중 내가 만난 부시맨들은 나미비아 정부가 지정해준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조상이 살아왔던 방식이 아닌 정부가 정해 놓은 방식대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칼라하리 사막과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르며 사냥을 천직으로 이어온 사람들, 그들에게 사냥을 하지 못하게 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부시맨 고유의 정체성을 말살한 것은 부시맨들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지워버린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에서 2만 년 이상을 살아온 그들을 더 이상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땅에서 살 수 없게 한다면 그들의 독특한 사회와 생활 방식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것이다. 자신들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이어왔던 사람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욕심 없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라고 믿는다. 이제 이들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이제껏 수렵 · 채집인으로 살아온 산(San)에게는 칼라하리 사막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매우 충격적일 것이다. 부시맨들은 관광객과 다이아몬드 채굴을 위해 조상의 땅에서 강제로 이주 당했을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도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다. 그들에게 사냥을 금지한 땅에서는 부유한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동물사냥이 이뤄지고 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유희와 쾌락을 위해 사냥을 하는 것이다. 자본에 굴복한 아프리카 각국 정부의 정책은 그 땅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사실 부시맨의 사냥방식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작은 임팔라 한 마리를 사냥하면 온 가족이 한 달 가까이 생활할 수 있어요!”라고. 전통 방식으로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하는 그들에 의해 동물들의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몇 개의 나라에 걸쳐 살아가는, 10만 명도 채 안되는 적은 종족수로 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아프리카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자연에 가까운 그들의 삶이 가장 아프리카다운 것이다. 오히려 관광으로 불러들이는 헌터들에 의해 사냥되는 동물들의 죽음이 더 위험하고 잔인하다. 부시맨들은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하며 살아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 내려오던 그들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송두리째 흔들렸고, 그들은 그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보호구역이라는 틀 안에 가둬졌다. 인간이 인간을 통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이들을 몰아내고 그들에게 알량한 선심이라도 쓰는 양 몇 푼의 보조금을 쥐어주며 그들을 울타리 안에 몰아넣고 통제하여서는 안 된다. 척박한 사막에서 만난 부시맨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그들의 독특한 외모, 처음 들어보는 언어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들만의 혼이 담겨 있는 듯한 춤.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지?’라는 끝없는 물음을 던져야 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온 것처럼 내 앞에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여주려 애쓰는 그들에게 깊은 연민이 느껴졌다. 흥겨운 노래와 춤을 보는데도 나에게 왜 그렇게 슬픔이 먼저 스며들었던 걸까? 그들의 손짓과 발동작 하나하나에 그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춤은 몸으로 하는 언어이자 대화였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춤 ‘기린이 나타났다’를 보면서 춤으로 동물을 표현하는 동작들에 심취했다. 이들에게 춤이란 과연 무엇인가? 나에게 수없이 많은 의문을 던졌던 이들과의 첫 만남은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특별하다고 느꼈던 시간이었다. 예정에 없던 가족사진 촬영을 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들은 처음 카메라 앞에 자신들의 모습을 맡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치장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내게 온전히 자신들의 모든 것을 맡긴 시간이었다. 현상되어 나오는 사진들을 보면서 마치 거울을 보듯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던 사람들.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사람들과의 간격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야 했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12년을 마음으로 준비해왔다. 그리고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이들에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방식으로 선물을 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은 나에게, 그리고 이들에게 작은 축복의 시간이었다. 다음 해 다시 한 번 그들을 만나러 갔다. 마음의 짐으로 남겨뒀던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족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나에게 다가와 도움을 청하던 청년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찾은 그들에게 약속했던 자전거 30대를 선물했다. 고백하자면 그 청년은 나에게 한 대의 자전거를 부탁했었다. 어쩌면 많은 수의 자전거를 원한 것보다 더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그 한 대의 자전거가 이들에게 이토록 소중한 거였구나. 자전거를 전달하는 날 그들은 나에게 춤으로 화답했다. 그들이 나에게 몸과 마음으로 주는 선물은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선물이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부족, 자유로운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놓는다. 부디 이번 사진전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마음의 문이 열리길 간절히 바란다. 그들과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평등하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2년 동안의 마음의 긴 여행을 이번 전시를 통해 세상에 선보일 수 있어 다행이다. 마음에 쌓아두었던 그들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라도 풀 수 있어서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