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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국의 꿈 : 건국준비위원회와 미국 군정
2. 즉각 독립의 열망 : 신탁통치 3. 잠들지 않는 남도 : 4.3 민중항쟁 4. 통일정부가 가망 없다고.. : 단정 수립과 김구 5. 또 하나의 정권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6. 친일파들 : 반민특위 7. 450만 명이 흘린 피 : 6.25 전쟁 8. 어리석은 백성을 버리지 마십시오 : 부산정치파통 9. 못 살겠다 같아보자! : 제1공화국 10.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 4.19 11. 껍데기는 가라 : 제2공화국 12. 혁명! : 5.16군사쿠테타 13.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 한일협정 14. 천재일우의 기회 : 베트남 파병 15. 비상! 1968년 : 위기의 한반도 16. 영구집권을 향해 : 3선개혁과 7대 대통력선거 17. 버릴수 없는 통일원칙 : 7.4 남북공동성명 18. 짐이 곧 국가요 : 10월유신 19. 부국강병 : 경제개발계획 20. 궁정동의 총소리 : 10/26 21. 세상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쿠테타 : 12.12 22. 광주여! 무등산이여! : 광주민중항쟁 23. 싹쓸이 : 제5공화국 24. 승리와 좌절 : 6월항쟁과 노태우 정권의 수립 25. 역사의 부름 앞에 : 민족민주운동 26. 권력욕 : 문민정부 27. 대를 이은 '혁명정신' : 김정일시대 28. 최대 국난 : IMF 경제위기 29. 통일을 향해! |
鄭昌鉉
정창현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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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지적 유희'일 수 있는 사회에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찬란한 지난 날의 영광을 떠올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생활의 활력이다. 하지만 우리가 걸어온 20세기는 고난에 찬 삶 자체였다. 역사에서 삶의 무게를 떼어놓으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돌아와 앉은 자리에는 암울했던 역사의 무게가 버티고 있다. --- p.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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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로당 프락치?
1949년 5월 20일에 국회의원 이문원, 이구수, 최태규가 구속되었다. 이들이 남로당의 국회프락치라는 것이었다. 사건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6우러 20일부터는 국회부의장 김약수를 비롯하여 열세명이 구속됐다. 같은 혐의였다. 국회프락치 사건을 담당했던 당대 최고의 반공검사 오제도는 1992년 4월 8일 '국회프락치 사건의 증거가 있느냐?' 라는 질문에 '증거는 없다' 라고 대답했다. 당시 경찰이 내세운 유일한 증거는 여성 연락원 정재한이었다. 경찰은 그를 개성에서 검거하여 그의 몸에서 남로당 공작조가 박헌영에게 보내는 소장파의원 활동보고가 적힌 비밀암호문서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 p.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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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는 드디어 막바지에 이르렀다. 6월 30일, 관제시위는 국회를 완전히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나오지 않으면 멱살이라도 잡고 끌고 나와도 좋았다. 경찰이 나섰다. 등원을 거부하는 의원들을 강제연행하여, 의사당에 강제연금했다. 정족수가 차기를 기다린 것이다. 머릿수만 채우면 돼. '빨갱이'? OK. 국제공산당 관련혐의로 체포되었던 열 명의 의원이 석방되어 등원했다. 7월 4일. 185명 가운데 166명이 출석하여 정족수에 이르렀다. 사복 군경요원들, 게다가 무장기동경찰 2개 중대가 의사당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7월 4일 야간에 기립으로 표결. 찬성 163, 반대 0, 기권 3.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는 승리였다.
--- p.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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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다시 '한국현대사'인가?
언제이던가. 우리나라가 경제위기를 맞기 몇 년 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 때 한 신문의 경제란에서 읽은 기사 한 편의 헤드라인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아니, 아직도 제조업을 하십니까?' 부동산 투기다, 주식 투자(?)다, 재테크다 해서 다들 땀흘리지 않고 쉽게(?) 주머니를 불려가려는 물결이 한창 붐을 타기 시작할 무렵, 우직하게 외롭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가는 한 중소기업가. 그가 악전고투하는 와중에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는 얘기를 제목으로 뽑은 기사였다.
좀 엉뚱하달 수 있지만 그 얘기를 이렇게 바꾸어보자. '아니, 아직도 인문사회과학 책을 내십니까? 그것도 통사적인 현대사를.' 아닌게아니라 주위의 실상을 조금만 살펴본다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한 마디가 아닌가 한다. 뒤늦게 다시 역사공부를 시작한 한 대학원생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요즘 학생들과는 얘기가 잘 되지 않아요. 세대차 때문이라고요? 아닙니다.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지식이 없어요. '반민특위', 심지어 '유신시대'도 모르더라고요.' 그런 모양이다. 또 그럴 만하기도 하다. 가뜩이나 겉치레의 화려한 대중문화가 판을 치는 세태에, 더구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온통 '돈'에만 관심들이 쏠려 있는 상황에다, 눈부신 '정보화 혁명'으로 무진장한 실용 정보가 곁에 널려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돈'이 되지 않는 분야가 아니고는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진 지 오래여서 '폐과' 위기를 겪는 분야가 여럿인 이 시대에, 어쩌면 나날이 빨라지는 변화에 적응하기에도 만만치 않은 사람들에게 흘러간 과거에 대한 정제된 지식, 더구나 습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는 지나간 '역사'에 대한 앎이 대단치 않게 여겨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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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직선으로 다가가자!
알려야 한다. 보급하고 공유해야 한다. 왜 현대사 책을 읽느냐는 물음이 나와서야 하겠는가? {www.한국현대사.com}는 바로 그 대목에서 착안, 기획되어 집필이 시작되었다. 우선 해방 이후부터 최근의 경제위기까지의 56년의 기간을 규정하는 주요 카테고리를 29가지로 추출했다. 우선 가장 역점을 둔 점은 시대와 사건의 핵심을 꿰뚫듯이 일직선으로 접근함으로써 시대상을 명확히 파악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압축적이고도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경쾌하게 서술함으로써 기존의 역사서술이 지니고 있는 '나열과 지루함'이라는 원죄(?)를 벗어나고자 했다. 익숙지 않은 독자들에게 무리없이 다가가도록 노력했다. '재미'의 당의정을 입히려 한 것이다.
이미지는 텍스트를 대체할 수 없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텍스트도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지은이들은 머리글에서 '우리는 이 책에서 현대사에 얹혀 있는 무게를 꽤나 덜어내려고 노력했다. 가볍게, 가볍게 놀이하듯이 역사를 거닐고 싶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발췌개헌'은 그동안 몇 번의 쿠데타 등으로 누더기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헌정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영광을 얻은 대표적 추태였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저질러진 '발췌개헌'의 통과과정을 묘사한 끝머리를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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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알토란 같은 현대사 정보의 알맹이를!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 이른바 N세대도 잘 알 것이다. 토종 록가수 강산에가 부른 패러디곡 '라구요'에 등장하는 트롯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의 노랫말이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만행'을 피해 필사적으로 배에 오르는 처절한 장면을 찍은 유명한 사진은 요즘도 때가 되면 신문 지면과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한다. 그 흥남부두의 진실은 무엇이었던가?
'사람들이 유엔군을 따라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 공산당 정권에서 살기 어려운 친일파나 지주·자본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런 정치성이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청진 지방엔 유엔군이 철수하면 북한땅에 원자폭탄이 터진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한국군이 그런 내용의 유인물을 뿌리기도 했다. 일본에 원폭이 터져 태평양전쟁이 끝났듯이 중공군을 막아내는 방법은 원자탄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만약 원자탄이 터지면 모두가 죽을 판이었다. 가족 모두가 피난 갈 형편이 못되는 집은 가장만이라도 떠나는 분위기였다. 잠깐 피했다가 사태가 진정되면 곧 돌아오겠다며 떠났다가 영영 이산가족이 된 이들이 참 많다.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더러 혹시 모르니 남쪽으로 가라고 권하셨다.' --- p.85 뒤에 '위기의 한반도' 장에 다시 등장하는 무장공비 김신조의 이 증언을 통해서 독자들은 이미지로 덧칠된 우리 현대사의 일단을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박갑동의 증언', '한국의 반민특위와 프랑스 나치협력자 대숙청', '푸에블로호 선장의 편지', '장준하(1918∼1975)', 재벌특혜의 결정판이라 할 '8·3조치', '초원복국집사건', '김정숙과 만경대혁명가유자녀학원'……. 한민족은 천지개벽할 사건들로 이루어진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존재일까?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이미지와 함께, 거리의 한 구석에 새끼줄을 둘러쳐 보행신호 위반자를 가두어두는가 하면, 대낮의 거리에서 장발단속에 걸린 청년들의 머리를 강제로 깎아버리는 '전근대적' 군인정신은 과연 사이좋게 받아들여져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독자들은 과거에 대한 엄정한 연구의 결과물을 반영한 정확한 사실정보를 접함으로써 우리가 살아낸 날들을 올바르게 되돌아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www.한국현대사.com} 29개의 각 장마다에 그 시기에 있었던 흥미로운 사건, 인물에 대한 정보와 분석을 따로 '현대사 수첩'이라는 글상자에 배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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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원하고 보급해야 할 우리의 현대사
그렇다고 역사, 특히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을 속속들이 규정하며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을 특징짓는 '현대사'에 대한 탐구와 보급에 소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작년엔가 이른바 '명문대학'의 하나로 손꼽히는 고려대학교의 《고대신문》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을 조사한 바 있었는데, 압도적 다수가 '박정희 전대통령'을 지목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접하고는 한국사 강의와 연구에 평생을 바치며 적지 않은 고초까지 겪은 강만길 교수는 '자살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다고 전한다. '현대사 책을 왜 읽어야 하나요?' 정보를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한 이른바 '디지털 세대'에게 이런 말은 스스럼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알고 있는 듯한' 착각에 약하기 때문이다.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그 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 기념탑을 세우자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 김수영,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중에서 p.114 어떤이는 그 지긋지긋했던 시대의 실상을 알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시대의 신문을 읽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일리있는 아이디어가 아닐까? 어쨌든 시급한 일은 어떤 형태로든 실상을 알리고 공유하는 일이다. 가뜩이나 물질주의·배금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 사회는 이제, 특히 IMF 구제금융을 받는 경제위기를 겪은 뒤로는 아예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오직 '돈'을 향해 돌진하는 폭주기관차가 돼버린 꼴이다. '성찰?' '되돌아봄?' 말을 꺼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