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I 有無相生(유무상생)
II 上善若水(상선약수) III 微妙玄通(미묘현통) IV 愚人之心(우인지심) V 恍兮惚兮(황혜홀혜) VI 道法自然(도법자연) VII 道常, 無爲而無不爲(도상, 무위이무불위) VIII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IX 知止(지지) X 聖人無常心(성인무상심) XI 含德之厚(함덕지후) XII 玄同, 和光同塵(현동, 화광동진) XIII 治人事天莫若嗇(치인사천막약색) XIV 天下難事, 必作於易(천하난사, 필작어역) XV 不敢爲天下先(불감위천하선) XVI 不爭之德(부쟁지덕) XVII 易知易行(역지역항) XVIII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XIX 小國寡民(소국과민) 에필로그: 표지 그림 ‘현빈의 문[玄牝之?]’ 작가노트 |
김재형의 다른 상품
|
‘무無’에서 하늘과 땅이 시작됩니다. ‘유有’는 어머니처럼 세상 만물을 낳습니다. ‘무無’를 자세히 보면 드러나지 않은 미세한 기운이 보입니다. ‘유有’를 자세히 보면 ‘무無’와 만물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보입니다. 세상이 시작된 첫 마음(無, 天地之始)과 세상 만물(有, 萬物之母)은 다른 것이 아니라, 양자 얽힘(quantum emtanglement)으로 이어진 하나입니다.
--- p.14~15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처럼 텅 비어 있어 써도 써도 끝이 없는 것처럼, 성인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다 받아들입니다. 지나치게 많이 말하면 궁지에 몰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텅 빈 중심을 지킵시다(守中). --- p.26 오래된 것을 이해하면서 현실에 맞게 사용하는 사람은 삶의 양면성을 꿰뚫어보는 미묘현통微妙玄通한 힘이 있어서 그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굳이 그 모습을 설명하라고 하면, 겨울 언 강을 건너듯 주춤거리고, 사방에 어려운 이웃이 있는 것처럼 멈칫멈칫하고, 손님처럼 어려워하고, 녹는 얼음처럼 맺힘이 없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소박하고, 계곡처럼 트이고, 계곡을 흐르는 흙탕물 같습니다. --- p.48~49 남을 아는 것은 지혜이지만, 나 자신을 아는 것은 지혜를 넘어선 밝음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기는 데는 힘이 필요하지만, 자기를 이기려면 힘을 넘어선 강함이 있어야 합니다. 만족할 줄 알면 풍요로워지고, 힘써 실천하면 뜻을 이루게 됩니다. --- p.100 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내 삶을 보면 세상을 알 수 있습니다. 창문으로 하늘을 보지 않아도 우주의 질서를 알 수 있습니다. 멀리 돌아다닌다고 더 많이 아는 게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는 성인은 멀리 다니지 않아도 알고, 보지 않아도 본 것처럼 밝게 구분하고, 애쓰지 않고도 이룰 수 있습니다. --- p.138 안 되는 걸 억지로 하면 죽게 되고(殺勇),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용기를 가지고 하지 않으면 삽니다(活勇). 살용殺勇과 활용活勇은 좋고 나쁜 게 섞여 있어서, 하늘이 어느 것을 싫어하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성인도 하늘의 생각을 알기 어렵습니다. --- p.208 |
|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국가의 중요한 국정과제이던 시대였습니다. 부국강병의 열망이 중국 전역을 휘감았습니다. 전쟁이 일상이 된 시대 지식인의 자기 과제는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현실적 전략과 미래 비젼을 세우고 평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고통이 큰 만큼 지식인들의 대응도 깊고 넓었습니다. 노자는 이 시대를 깊고 넓은 눈과 마음으로 바라본 대표적 지식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정도 지식인의 열망이 타오른 시기 중 하나가 1,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입니다. 서구의 수많은 지성들이 전쟁 없는 세상에 대한 열망을 다양한 철학적 사유와 실천을 통해 정리해 나갔고, 그 결실 중 하나가 유럽연합입니다. 유럽은 최소한 유럽연합 내에서 전쟁이 없는 상태 정도에는 이르렀습니다. 북미의 미합중국, 유럽의 유럽연합 다음에 이루어질 국가, 지역을 넘어서는 연방이나 연합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지역은 동아시아입니다. 유럽의 평화 경험에서 보이지 않는 정신적 동질성은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입니다. 오래된 경전과 신화의 재해석은 국가와 민족의 틀을 넘어서는데 유용한 전략입니다. 저자인 김재형, 고석수, 천바이비를 비롯한 여러 동아시아의 형제들은 동아시아의 평화라는 꿈을 공유하며 오랫동안 만나왔습니다. 그 만남에서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 동아시아 고전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이 의미있는 전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만나면 먼저 동아시아 경전을 읽고 토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표면적인 차이가 있더라도 한문에 기반을 둔 텍스트를 같이 읽는 순간부터 깊은 마음의 세계, 도(道)와 덕(德), 중용(中庸), 인(仁)과 의(義) 라는 깊은 심층 의식 속에서는 깊은 형제 의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중일 세 언어로 쓰여지는 동아시아 경전 시리즈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고, 동아시아 도덕경은 그 꿈의 첫 결실입니다. 도덕경은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한 권은 노자께서 쓰신 우리가 눈으로 읽을 수 있는 도덕경입니다. 또 한 권은 읽을 수 없는 도덕경입니다. 어쩌면 도덕경은 읽을 수 없는 도덕경을 읽기 위한 마중물 같은 책인지도 모릅니다. 도덕경은 이런 논리를 ‘유(有)와 무(無)’ 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글자로 쓰여 지지 않은 도덕경은 도덕경을 함께 읽는 사람들 안에 있습니다. 이 책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은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북조선의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에서 읽혀질 책이 되길 바라는 기원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을 출판에 적용해서 현실적인 책으로 편집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언어를 재구성하고 다른 언어 사용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와 적절한 이해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책은 동아시아인들이 평화로운 삶에 대한 상상을 할 때 공유 지점을 찾을 수 있는 의미 있는 도구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