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1970년 1971년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1978년 1979년 1980년 옮긴이의 말 작고 싱싱한 꽃이 날마다 |
Simone de Beauvoir
시몬 드 보부아르의 다른 상품
咸貞任
함정임의 다른 상품
|
“난 당신을 많이 사랑하오. 나의 카스토르.”
- 사르트르가 죽기 전날 보부아르에게 파리 라스파이유 거리에 있는 보부아르의 아파트 서재는 사르트르가 살았던 아파트와 지척이었고, 둘은 늘 그곳에서 함께 읽고 글을 쓰고, 작업했다. 사르트르는 줄기차게 공부하고 쓰고 행동하는 보부아르를 늘 부지런하게 일하는 비버(프랑스어로 카스토르)에 빗대어 ‘카스토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사르트르는 첫 소설 『구토』를 ‘카스토르에게’ 헌정했다. 사르트르에게 있어 보부아르와 같이 책을 읽는 것,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고 산책을 하는 것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특히 노년의 사르트르에게는 그것이 세상을 접하는 가장 큰 통로였다. 죽음을 앞두고 눈이 잘 보이지 않던 그의 옆에는 그날의 신문, 잡지, 책을 읽어주며 사회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연인이자 동료 보부아르가 있었다. 사르트르는 나와 함께 아주 천천히, 긴 산책을 했다. 한번은 그가 내게 물었다. “이렇게 느리게 걷는 동반자가 있어서 지루하지 않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그가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기뻤다. - 212쪽 그들은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함께했음에도 평생 경어체로 대화를 나누었으며, 이 책에서도 줄곧 서로에게 정중하게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서로의 생각을 묻고 의견을 나누는 그들의 대화는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보여준다. 또한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부분은 지식인으로서의 사르트르의 모습이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의미하는 앙가주망engagement이라는 개념을 처음 책에서 이야기한 것이 바로 사르트르였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두 사람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당대 첨예한 사안마다 거리로 달려 나가 민중들 속에서 메가폰을 들고 함께 행진하며 투쟁한다. 사르트르가 죽기 직전까지도 전 세계에서 지지를 요청하는 호소문과 항의문이 왔고, 그는 그것을 숙고하며 지지문을 직접 작성하거나 서명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보부아르가 바라본 일흔이 넘은 사르트르는 몸이 약해지고, 시력을 잃어간다는 사실 앞에서 불안해한다. 자신의 시대가 지나갔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그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다음 세대가 꾸려나갈, 지금보다 더 나은 시대에 대한 낙관과 기대를 잃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지식인과 한 인간으로서 사르트르의 모습이 교차되지만 바로 이러한 모습이 그의 사상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고, 사르트르의 평생을 지켜봐온 보부아르의 눈으로 바라본 사르트르의 모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르트르의 마지막 10년을 보부아르의 시각으로 이야기한 이 책은 그들의 관계, 그들이 오랜 시간동안 공유했던 세계를 집약했다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하게 될 사람들에게. 보부아르가 보내는 긴 편지 전화요금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인 부분을 방치하고,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까지 알코올과 담배를 끊지 못하던 사르트르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프랑스의 지성 사르트르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 책에서는 사르트르가 생전에 교류했던 당시의 많은 명사들,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많은 이들과 관계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 노년의 사르트르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려지고 있다. 그 모습은 한 사람의 노년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면에서 때때로 잔인할 만큼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르트르는 물론 보부아르의 현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경우, 어떤 자리에서도 서로의 옆자리에 함께했다. 계약결혼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동시에 투쟁하면서 완벽히 하나의 삶으로 사는 방식이었고, 인간의 이해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마침내 두 사람이 함께했던 세계가 막을 내렸을 때, 아무리 유해가 나란히 놓이고 잿가루가 만나도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임을 보부아르는 깨닫는다. 그가 죽고 난 뒤에 과거를 회상하며 썼음에도 이 책은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긴박하고 불안에 가득 차있다. 이 책을 번역한 소설가 함정임은 그럼에도 보부아르가 마지막에 이르러 사르트르의 죽음을 현재형으로, 아니 미래형으로 쓰고 있다고 말한다. 마치 ‘매일 미지의 독자들이 그를 오늘로 불러내듯이. 자연스럽게 내일로 이어지듯이. 아름다움처럼.’ 이 책은 보부아르가 책의 서두에서 말했듯 사르트르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앞으로 사랑하게 될 사람들에게 남긴 긴 편지다. 아마도 그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남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