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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서문 돌봄자가 되다 1 시작 우리가 돌봄을 말하지 않는 이유 2 완벽주의 완벽한 엄마라는 불가능한 꿈 3 장애차별주의 장애를 비극으로 만드는 사회 4 기대 가진 적 없으나 잃어버린 아이 5 애도 우리가 작별을 고하는 방식들 6 자기 돌봄 돌보는 사람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7 자기 연민 고통의 순간에 나에게 친절할 것 8 공동체 함께일 때 번영하는 종 9 목적 매일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이유 10 기쁨 우리 눈에 담긴 세상 나오며 감사의 말 참고 문헌 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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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막 졸업하고 런던으로 이사 간 지 몇 주 되지 않은 어느 늦은 밤, 소식을 전해 들었다. 멜버른까지 장거리 비행을 해야 할 테니 억지로라도 잠을 자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뜬눈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데, 퍽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충격적이었으나 뭔가 다른 느낌이기도 했다. 엄마가 처음 자살 기도를 했을 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 그때부터 오랫동안 이 전화를 기다려온 것 같았다. 나는 언젠가 엄마의 부고가 들려올 것을 아는 채로 계속 그 전화를 두려워하며 살아왔다. 이제 기다림은 끝났다. 충격과 시린 고통을 느끼는 한편 나의 일부는 내심 수년간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엄마를 돌보는 건 이제 더 이상 내 일이 아니었다.
---「서문 돌봄자가 되다」중에서 엄마와 아들을 돌본 경험을 통해 나는 인간 정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면과 가장 감추고 싶은 면 모두를 목격했다. 나는 공포와 죄책감에 시달렸고, 내게 요구되는 것들에 억울하고 화가 났고, 가장 놀라운 기쁨을 맛보았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보다 더 열심히 사랑했고, 셀 수 없이 여러 번 주저앉아 울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서문 돌봄자가 되다」중에서 하지만 대부분의 돌봄자에게 돌봄은 삶의 나머지 부분과 똑같다. 때론 놀랍고, 때론 끔찍하고, 대체로 아주 평범하다. 문화적 담론은 이 사실을 인정하길 거부하며 대신 우리를 긍정의 아이콘, 선하고 감동적인 사람들 혹은 강렬한 고통 속에 사는 동정의 대상이나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 분류한다. 이는 돌봄자 역할을 하는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이 돌보는 사람들에게 매우 심한 짓이다. 돌봄자로 사는 게 쉽지 않고 더러 극단적인 어려움이 따르지만,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우상화되는 건 돌봄자의 역할을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만들 뿐이다. ---「1 시작 우리가 돌봄을 말하지 않는 이유」중에서 제스 목스햄은 모든 것을 새롭게 보기 시작한 어느 날에 대해 말해주었다. 주중에 오랜 시간 일하는 남편 제임스가 어느 주말 벤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었다. 둘은 럭비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제스는 부자가 ‘그냥’ 앉아만 있는 게 짜증이 나서 남편에게 왜 벤을 데리고 물리치료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제임스는 그를 돌아보며 “난 그냥 아들이랑 좀 놀고 싶은데. 럭비도 보고” 하고 답했다. 바로 그 순간 벤은 가능한 한 많은 걸 해줘야 하는 아이에서 평범한 꼬마로 바뀌기 시작했다. (…)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줄 수 있다면 우리 모두 괜찮을 것이다. ---「2 완벽주의 완벽한 엄마라는 불가능한 꿈」중에서 엄마와의 시간은 극도의 시련이 괴로움뿐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인 면도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괴로움과 긍정은 동시에 진실일 수 있다. 상황은 어려우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고, 두려우면서도 즐거울 수 있다. ---「4 기대 가진 적 없으나 잃어버린 아이」중에서 잉그리드 페텔 리의 책을 읽으면서 아서가 감각 세계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세계에서 얼마나 쉽게 즐거움을 느끼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풍선과 구름처럼 떠다니는 물체부터 수증기를 머금은 표면에 생기는 무지개, 밝은 색깔의 벽, 작은 방울 한 움큼, 반복적이고 조화로운 패턴까지. 아서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삶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무수한 즐거움을 매일 내게 보여준다. (…) 나는 아서의 눈에 비친 세상이 어떨지 자주 궁금하다. 아서가 천진하게 기뻐하며 섬세한 손길로 물방울을 흩뿌리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아서의 눈에는 세상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미친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상상할 따름이다. ---「10 기쁨 우리 눈에 담긴 세상」중에서 돌봄자들을 보살피는 건 사회라는 집단으로서 우리가 가진 책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막상 자신은 아무것도 받지 못한 채 고갈되고, 돌봄이 유발하는 어려움을 외면하는 문화에 지쳐 쓰러지는 일이 개인의 문제로 남겨져선 안 된다. 생애 말기 둘라 애나 라이언스가 말한 것처럼, 돌봄을 받는 사람들이 최상층에 있고, 바로 그 밑에 돌봄자가 위치하며, 그 아래로 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돌봄의 피라미드를 구축해야 한다. ---「나오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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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또 한번 ‘돌봄 공백’, ‘돌봄 위기’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우리 사회에서 돌봄이 위기가 아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사회는 책임이 없다는 듯 여성에게, 가족에게 전적으로 내맡겨져 있었던 탓이다. 돌봄을 ‘비상 상황에서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노동’으로 부르고 돌봄 종사자의 노고에 감사하는 것만으로는 이 오래된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비상 상황이든 아니든, 아프든 그렇지 않든, 장애가 있든 없든,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 모두에게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바야흐로 돌봄의 중요성이 말해지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돌봄은 ‘나 아닌 돌봄 노동자가 하는 일’로 여겨지곤 한다. 『우리는 모두 돌보는 사람입니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돌봄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저평가되어 충분히 조명받지 못해왔고,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돌봄과 돌보는 삶에 대한 기초 지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지식의 빈자리는 가엾게 여기거나 천사라며 칭송하거나 사회복지 예산을 축내는 사람으로 취급하며 존재를 납작하게 만드는 말들이 채워왔다. 저자 페니 윈서는 돌봄을 점점 더 테두리 바깥으로 몰아내는 차별 너머 돌봄의 실재를 보여주기 위해 오랜 시간 입속에 감춰왔던 이야기를 꺼내 보이기로 했다. 우울증을 앓던 엄마를 잃었다 더 이상 엄마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13년 후, 나는 자폐인 아들과 비장애인 딸의 엄마가 되었다 어린 시절 우울증을 앓는 엄마를 돌봐야 했던 저자 페니 윈서는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에 자살로 엄마를 잃었다. 물론 충격적이었고 비통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 내심 참아왔던 숨을 내쉬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13년 후, 큰아들 아서가 자폐 진단을 받았을 때, 엄마와 함께 관 속에 묻어두었던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일을 그토록 힘들어한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고 쉬어야 할 때마다 죄책감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엄마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아서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행복했다. 두 사람 모두 더없이 사랑했다. 그는 엄마와 아들을 돌보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해보려는 깊은 호기심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돌봄의 다채로운 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다양한 위치와 상황에 있는 돌봄자들을 만났다. 누구나 누군가를 돌보지만 여전히 돌봄을 말하지 않는 사회에서 왜 우리가 돌봄을 말하기 어려워하는지, 우리 사회는 장애와 만성질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돌보는 사람들이 겪는 깊은 좌절과 공포와 고통에 사회와 문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 돌보는 사람이 소진되어 쓰러지기 전에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이 책은 저자를 포함한 수많은 돌봄자들의 경험과 연구를 통해 돌봄 현장에 있는 이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돌봄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인간 삶이 다 그렇듯 돌보는 삶에도 그만큼의 시련과 기쁨이 있을 뿐이라는 담담한 진실을, 우리 사회에는 돌봄을 돌보아야 한다는 힘 있는 목소리를 전할 것이다. 누구나 삶의 어느 시점엔가 돌봄자가 된다 그럼에도 돌봄을 말하지 않는 사회에서 돌보고 돌봄 받을 우리 모두를 위하여! “이 책은 ‘돌봄자’라는 단어가 나를 가리키는 말인지도 몰랐던 십 대 때의 나에게 누군가 쥐여줬어야 하는 책이다.” 서문에 등장하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돌보는 사람에게도 자기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돕기 위해 쓰였다. 장애나 질병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으며, 아무리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삶에는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평균 수명이 늘어 늙고 아픈 채로 사는 기간도 길어진 현대에 우리 모두는 삶의 어느 시점엔가 돌보고 돌봄 받게 된다. 그 점에서 책의 제목 『우리는 모두 돌보는 사람입니다』는 사실 기술인 동시에 선언이다. 우리는 모두 돌보는 사람이었거나 돌보는 사람이거나 돌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 사실을 인식할 때 책 속 돌봄자들의 이야기가 보다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돌봄을 돌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다. 첫 장은 돌보는 사람들이 돌봄 경험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로 시작한다. 동정과 우상화의 이분법 속에서 돌봄자들은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만다. 2장에서는 사랑하기에 완벽하게 해내고 싶지만 사람이기에 끝내 실패하고 마는 돌봄자들에게 완벽주의를 놓아버려도 괜찮다고 다정히 권한다. 3장에서는 완벽주의를 강요할 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을 더욱 고립시키는 장애차별주의를 고발하고, 4장에서는 이러한 사회에서도 여전히 비교에 저항하고 참조점을 조정하며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5장에서는 돌보던 이를 떠나 보냈거나 돌봄으로 인해 변해버린 관계를 그리워하는 돌봄자들이 느끼는 애도의 감정을 설명하고 6장에서는 돌봄 책임 속에서 자신을 돌보는 일의 필요성과 방법을 말한다. 7장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돌보는 사람의 고통을 없애줄 수 없을 때, 이토록 중요한 일이건만 충분히 잘해내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때 자신을 책망하는 돌봄자들이 자신에게 조금만 더 친절을 베풀도록 안내한다. 8장에서는 그럼에도 인간은 혼자서는 해낼 수 없으므로 공동체를 꾸리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짚는다. 9장에서는 돌보는 삶이 주는 목적의식을 강조함으로써 돌봄이 결코 일방적이지 않음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10장에서는 돌보는 삶이 얼마나 기쁠 수 있는지 저자 자신과 동료 돌봄자들의 삶으로 증명한다. 책 속에서 돌봄자들의 삶은 저자의 말처럼 “때론 놀랍고, 때론 끔찍하고, 대체로 아주 평범”하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독자들은 멜트다운을 겪는 자폐인 아들을 끌어안고 우는 엄마가 되었다가, 아기가 울고 있는데도 어머니를 돌보느라 들여다보지 못하는 엄마이자 딸이 되었다가, 하늘 높이 두 팔을 뻗어 모래를 흩뿌리고는 모래가 만든 풍경을 즐겁게 바라보는 자폐인의 시선을 슬쩍 빌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장을 덮을 때면 충만한 삶이 대개 그러하듯, 돌봄자들의 삶도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고단할지언정 사랑과 시련이 함께하는 살아볼 만한 삶임을 알게 된다. 그럼으로써 돌봄을 돌보는 사회에 가닿아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저자 페니 윈서는 아직 ‘돌봄자’라는 단어가 우리를 가리키는 말인지 모르는 우리에게 자신이 간절히 필요로 했던 그 책을 기꺼이 쥐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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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시민들은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에 기대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돌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 탓에, 돌봄자 개개인은 자신을 돌볼 틈도 없이 모든 부담을 지게 된다. 돌봄의 공백을 채우고, 서로를 연결하는 일은 국가의 몫임에도 말이다. 저자 페니 윈서는 돌봄자로 살아가며 경험한 진솔한 마음의 이야기를 전함과 동시에, 돌봄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까지 꼼꼼히 짚는다.
“이 책은 ‘돌봄자’라는 단어가 나를 가리키는 말인지도 몰랐던 십 대 때의 나에게 누군가 쥐여줬어야 하는 책이다.”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의 탈시설을 결심했던 순간의 나 자신은 물론, 돌보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거나 살아가게 될 이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이들 모두와 함께 이 책을 읽고 싶다. -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