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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서설/지리산의 물고기, 이덕무 이야기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
鄭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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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가지 가운데 한가지도 능한 것이 없는 중에 더더욱 능하지 못한 것이 네 가지 있다. 바둑과 장기를 두지 못하고 소설을 볼 줄 모르며, 여색에 대해 말할 줄 모르고, 담배를 피울 줄 모른다. 그러나 이 네 가지 것은 비록 죽을 때까지 못하더라고 해될 것이 없다. 나로 하여금 자제를 가르치게 한다면 마땅히 먼저 이 네 가지 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들을 인도하겠다.
--- p.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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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편지글에 보면 '옛날에는 문을 닫고 앉아 글을 읽어도 천하의 일을 알 수 있었지요'라고 한 구절이 있다. 정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늘의 우리들이다. 인터넷의 시대에 세계의 정보를 책상 위에서 만나보면서도 오늘의 우리는 천하의 일은커녕 제 자신에 대해서조차 알 수가 없다. 정보의 바다는 오히려 우리를 더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할 뿐이다. 왜 그럴까? 거기에는 '나'는 없고 '정보'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가 소유한 정보의 양이 늘어갈수록 내면의 공허는 커져만 간다. 주체의 확립이 없는 정보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그만 시련 앞에서도 쉽게 스스로를 허문다. 이른바 거품 경제 속에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다 갑자기 닥친 잿빛 현실 속에서 그들의 절망은 너무도 빠르고 신속하다. 실용의 이름으로 대학의 지적 토대는 급격히 무너지고 문화는 말살되고 있다. 취직과 돈벌이와 영어가 삶의 지상 목표로 변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저주받은 세대'라고 되뇌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출세를 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소중히 여겨온 가치와 자존(自尊)도 송두리째 던져버릴 태세다. 그렇지만 그런가? 그 처참한 가난과 신분의 질곡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던 옛 사람의 그 맹목적인 자기 확신이 나는 부럽다. 독서가 지적 편식이나 편집적 욕망에 머물지 않고 천하를 읽는 경륜으로 이어지던 그 지적 토대를 나는 선망한다. 추호의 의심 없이 제 생의 전 질량을 바쳐 주인 되는 삶을 살았던 그 선인들의 내면 풍경이 나는 그립다. --- p.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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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의 글과 치열한 정신
젊은 한문학자 정민 교수(한양대 국문과)가 조선 후기 18세기의 문인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청언소품을 모아 엮은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이 도서출판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이덕무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66편 전부와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일부(163편)를 우리말로 옮기고 평설을 덧붙여 엮었으며 각 편마다 제목을 달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적었다 하여 지은 이덕무의 ≪이목구심서≫는 당시 연암 박지원과 초정 박제가 등이 여러 번 빌려가 수도 없이 인용했다. 그의 해박한 독서와 지적 편력, 사물에 대한 투철한 관심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책이다.
이덕무는 정조 때 규장각의 검서관(檢書官)을 지낸 인물로, 지독한 가난과 서얼이라는 신분의 굴레를 천명으로 알고 살았다. 그의 어머니와 누이는 영양실조 끝에 폐병을 얻어 세상을 떴고, 그는 추운 겨울밤 홑이불만 덮고 잠을 자다가 논어를 병풍 삼고 ≪한서≫(韓書)를 물고기 비늘처럼 잇대어 덮고서야 겨우 얼어죽기를 면했다고 한다. 이런 처절한 가난 속에서 이덕무가 집착한 것은 다름 아닌 책을 읽고 베껴 적는 일이었다. 그는 풍열로 눈병에 걸려 눈을 뜰 수 없는 중에도 어렵사리 실눈을 뜨고서 책을 읽었던 책벌레였다. '어릴 때부터 21세 나도록 손에서 일찍이 하루도 옛 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 방은 몹시 작았지만 동창과 남창과 서창이 있어, 해의 방향에 따라 빛을 받아 글을 읽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책을 보게 되면 문득 기뻐하여 웃었다. 집안 사람들은 그가 웃는 것을 보고 기이한 책을 얻은 줄을 알았다.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읽는 멍청이라 해도 또한 기쁘게 이를 받아들였다.' 이덕무가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에 대해 적은 <간서치전>(看書痴傳)의 한 구절처럼 그는 자신이 처한 가난과 신분의 질곡을 책을 읽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견뎌냈던 것이다. 정민 교수는 이덕무의 호한한 독서와 방대한 저작도 감동적이지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맑은 삶을 살려 애썼던 올곧은 자세라고 말한다. 옛글과 만날 때 오히려 내면의 충만을 느끼고 생기를 얻는다는 저자는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을 통해 이덕무의 글과 치열한 정신을 되살려낸다. 인터넷의 시대에 정보의 양이 늘어날수록 내면의 공허와 정체성의 혼란 또한 커져감을 경험하는 지금,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옛글을 통해 찾는다. 저자는 이덕무와 함께 세상살이의 이치, 자연의 아름다움, 군자의 면모, 선비의 길, 수신(修身)의 지혜와 자세, 지음(知音)에 대한 그리움, 책 읽는 즐거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미혹(迷惑)을 지적하고, 갈 길을 일러준다. 그 아름다운 잠언들을 읽고 있노라면 옛 선인의 정갈한 내면 풍경이 떠오른다. 옛사람의 맑은 정신이 그리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