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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원담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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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설

『계원담총』

시의 원류와 근래 시의 병폐
시의 풍교적 효용성과 이양연의 시
이양연의 딱다구리와 널다리 시
금강산 시의 수작
박은과 허난설헌의 시격
최립 시의 굳센 풍격
이안눌과 최립의 시격 비교
이규보와 박은의 시격 비교
이항복의 시격과 기상
박홍미 시의 풍격과 시참
역대 왕소군 시의 고하
남상교의 「유서팔영」 시
이제현, 신위, 조수삼의 버들솜 시
표절을 범한 옛 시 구절
우연히 같게 된 옛 시 구절
여러 기러기 시의 고하
정철을 애도한 권필의 시
옛 시 평가의 어려움
중국인이 경복한 김상헌의 시격
안동 김문 육창六昌 시의 성대함
김창흡의 청심루 시에 얽힌 이야기
유몽인의 시격
재앙을 막는 시와 부르는 시
재앙을 멈춘 정약용의 시
이희지의 시재
이정 시의 차운작
임진왜란 때 이호민의 시
김귀영의 칠보시
윤휴의 독창적인 재주
이명한이 놀란 강백년의 시
임금이 아낀 오도일의 시재
나그넷길을 읊은 작자 미상의 명구들
정유길의 충후한 시격과 일화
신유한 시의 호방함
임금이 칭찬한 채팽윤의 즉석 시
하늘과 사람을 감동시킨 단종릉 참배시
내가 지은 사릉 참배시
이광려의 시격
일본에서 이름난 이언진의 시재
이언진을 조문한 이용휴의 시
이용휴의 뛰어난 풍경 묘사
박지원의 고아한 한시
천한 종으로 시를 잘 쓴 이단전
시로 면천된 정초부의 한시
그밖에 신분이 천한 시인들
김택영의 역대 한시 평
선배들의 역대 제가 시평
신위의 「동인논시절구」 24수
안정복의 돈후한 시작품
세상에 이름난 임정의 시
허필의 해맑은 시풍
이희사의 분방한 시격
여종을 잃고 쓴 이희사의 한시
채제공의 호방하고 굳센 시
정범조의 재치와 순발력
여주 이씨 가문의 뛰어난 시인들
강세황의 시재
이기진 시의 풍격
당론의 폐해가 시에 미친 영향
사가의 호방한 시풍
이덕무의 노련한 솜씨
유득공의 고상한 시재
박제가의 호탕한 시풍
이서구의 해맑은 시격
김정희의 품격 높은 작품
이명오의 시재
정상관의 과부시
이학규의 아낄 만한 시재
이황중 시의 만당적 풍격
이만수, 홍의호, 홍석주의 연광정 시
조수삼의 선죽교 시
시문 모두 경지에 오른 이상적
울분이 담긴 강위의 시
중국에서 평을 받아온 『한사객시선』
홍기주의 대표작
정기우의 대표작
이중하의 대표작
여규형의 비범한 시재
이근수 시의 기상
한말 시단을 창도한 이건창과 김택영
김택영의 웅혼한 기행 시편
황현의 굳세고 치밀한 시체
김택영과 황현 시의 비교
동학 난리 당시 이기남의 시
윤희구의 굳센 시풍
차천로의 민첩한 솜씨
차운로의 정밀한 시풍
조신준의 시재
임창택의 시
한재렴의 시
박문규의 해박한 시재
백응현과 백기진의 시
폭포를 노래한 고금의 절창
이기 시의 불평한 기상
이건방의 시격과 대표작
정만조의 시격과 대표작
정병조의 시격과 대표작
조병건의 시풍
박풍서와 김영한, 이범세의 인품
박풍서의 대표작
김영한의 대표작
이범세의 대표작
박치형의 특별한 시재
근래의 시승 보윤의 시
홍수에 떠내려간 성천의 작은 산
신좌모의 솜씨
정현덕의 호방한 시격

원문/ 찾아보기/ 지은이 · 옮긴이 소개

저자 소개11

李昇圭

일제 강점기 한학자이자 교육자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字)는 윤약(允若), 호(號)는 창동(滄東), 간암(艮菴) 또는 남곡(藍谷)이다. 어려서부터 부친 이사욱(李思彧)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초기 국권 회복과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신문기자,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신문 지면에 조선 한시와 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여러 편 연재하였고, 조선어연구회 설립에 참여하여 한글 연구와 수호에 힘썼다. 보성고보 교사로 있으면서 일제 강점기 한문 교과서의 기준이 되는 교재를 만들고, 휘문학교에서 25년간 교편을 잡는 등 교육자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시화로 『계원담총』
일제 강점기 한학자이자 교육자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字)는 윤약(允若), 호(號)는 창동(滄東), 간암(艮菴) 또는 남곡(藍谷)이다. 어려서부터 부친 이사욱(李思彧)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초기 국권 회복과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신문기자,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신문 지면에 조선 한시와 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여러 편 연재하였고, 조선어연구회 설립에 참여하여 한글 연구와 수호에 힘썼다. 보성고보 교사로 있으면서 일제 강점기 한문 교과서의 기준이 되는 교재를 만들고, 휘문학교에서 25년간 교편을 잡는 등 교육자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시화로 『계원담총』 외에 『동양시학원류(東洋詩學源流)』가 있으며, 신문에 연재한 시화로 『계산시화(桂山詩話)』 등 3종이 있다. 시집 『간암만록(艮庵?錄)』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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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교육원 연수과정을 졸업하고, 한양대 국문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논문으로 「조선 후기 소품문의 유희성 연구」가 있다. 『화암수록』, 『상두지』를 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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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娟

중국 산동(山東) 광요현(廣饒縣) 출생. 한양대 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8~19세기 북경 유리창 오류거 서점과 조선 지식인」 등의 논문을 썼다.

왕연의 다른 상품

한양대 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 재학 중이다. 〈이덕무의 『윤회매십전』에 나타난 지식의 편집 양상과 그 의미〉 등의 논문을 썼다. 『화암수록』을 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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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波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재학.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야간과정(신규 15기, 심화 16기)를 이수했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수료.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교육원 연수과정에 재학 중이다.
한양대 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 재학 중이다. 〈민담 〈구렁덩덩 신선비>와 〈두꺼비 신랑>의 비교〉 등의 논문을 썼다. 『금오신화』와 『화암수록』을 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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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의정부 출생.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목포대학교 대학원 국제차문화과학 협동과정에서 「조선시대 황차의 음용 양상과 전승 연구」로 석사학위를, 「조선시대 문헌에 나타난 차의 약리적 활용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에 실은 7편의 연구논문을 비롯하여 「『다신전』의 출전」, 「초의차 제다법과 특징」 등 다수의 연구논문이 있다. 2020년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와 함께 『한국의 다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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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瑄

중국 천진(天津) 출생. 한양대 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논문으로 「『망촉련집』 연구」가 있다. 『상두지』를 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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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紫星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수료.

鄭珉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선 지성사의 전방위 분야를 탐사하여 한문학 문헌에 담긴 깊은 사유와 성찰을 우리 사회에 전해온 인문학자이자 고전학자. 저서로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살핀 《비슷한 것은 가짜다》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과 문헌을 파고든 《호저집》 《고전, 발견의 기쁨》 《열여덟 살 이덕무》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미쳐야 미친다》,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우리 한시 삼백수》 《한시 미학 산책》 등이 있다. 청언소품집인 《점검》 《습정》 《석복》 《조심》 《일침》, 조선 후기 차 문화사를 총정리한 《한국의 다서》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선 지성사의 전방위 분야를 탐사하여 한문학 문헌에 담긴 깊은 사유와 성찰을 우리 사회에 전해온 인문학자이자 고전학자.

저서로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살핀 《비슷한 것은 가짜다》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과 문헌을 파고든 《호저집》 《고전, 발견의 기쁨》 《열여덟 살 이덕무》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미쳐야 미친다》,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우리 한시 삼백수》 《한시 미학 산책》 등이 있다. 청언소품집인 《점검》 《습정》 《석복》 《조심》 《일침》, 조선 후기 차 문화사를 총정리한 《한국의 다서》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산문집 《체수유병집-글밭의 이삭줍기》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어린이를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지었다.

조선에 서학 열풍을 불러온 천주교 수양서 《칠극》을 번역해 제25회 한국가톨릭학술상 번역상을 받았고, 서학 연구의 연장선으로 초기 교회사를 집대성한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를 저술해 제5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대상을 받았다.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 《역주 눌암기략》 《역주 송담유록》 등 서학 관련 주요 문헌을 역주해 펴냈다.

오랜 시간 다산 정약용을 연구해 《파란》 《다산과 강진 용혈》 《다산 증언첩》 《삶을 바꾼 만남》 《다산의 재발견》 《다산어록청상》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등 역사적·문화적·개인적 맥락에서 다산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되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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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143*220*30mm
ISBN13
9791155506233

책 속으로

“(…) 근래의 시는 두 가지 병폐가 있다. 평탄하게 서술함은 갑작스레 이루는 것에서 잘못되고, 아로새김은 경박한 기교에서 잃고 만다. 전체 작품 안에서 단지 한 연(聯)의 빼어남만을 다투다보니 ‘청(靑)’을 가지고 ‘백(白)’에 견주느라 구절만 있고 전체 글이 없게 되어, 이 때문에 옛날과의 거리가 날로 멀어지게 되었다.”
---「1. 시의 원류와 근래 시의 병폐」중에서

옛사람의 시를 평하는 데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고금의 풍격과 가락이 변한 것이고, 둘째는 작자의 성격이 저마다 다른 것이다. 셋째는 처한 바의 정경(情境)이 각기 다른 것이고, 넷째는 옛사람이 뜻을 깃들여 깊이 감춰둔 곳을 뒷사람이 말미암아 간파할 수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취하고 버리는 주견이 같지 않은 점이다. 이렇듯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는데도 경솔하게 붓을 내려 단정 지어 말한다면, 참람하지 않으면 망령되게 될 것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8. 옛 시 평가의 어려움」중에서

우리나라의 규모는 악착스러운데다가 편협하여, 진실로 문벌이 비천한 자 중에서 비록 세속을 뛰어넘는 자태와 무리에 우뚝한 재주를 지닌 자가 나오더라도 곧바로 세상길의 억압하는 바가 되어 능히 그 포부를 펴지 못하고 끝내 궁하게 되어 한을 머금고 죽기에 이른다. 나라가 쇠약해져 망한 것이 진실로 이 때문이다. 이것이 연암씨가 발분하여 「양반전(兩班傳)」을 짓고, 또 발분하여 「허생전(許生傳)」을 지으며, 또 발분하여 「호질(虎叱)」을 지은 까닭이다. 백가지 기예가 모두 그러하니, 하물며 시에 있어서이겠는가? 이제 특별히 신분이 비천한 자들의 시를 들어 보여 세상의 공정한 안목을 가진 이에게 나아가 물어보려 한다.
---「43. 천한 종으로 시를 잘 쓴 이단전」중에서

우리나라는 당론이 둘로 갈린 뒤로부터 같으면 무리 짓고 다르면 공격하는 생각이 마침내 고질을 이루어, 터럭을 불어가며 흠결을 찾느라 힘을 남기지 않았다. 숙종과 경종의 연간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참혹함이 극심하였다. 경사(經史)를 해석함에 이르러서도 혹 한 글자나 반 구절이라도 예전 풀이와 다를 경우 바로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지목하여 무리 지어 일어나 공격하면서, 안으로는 정치권력을 결속하고 밖으로는 주자를 높인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사람의 정신을 속박함이 지극히 참혹하면서도 가혹하였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학문은 마침내 말라비틀어진 몸뚱이가 되어 진부함을 서로 답습하여 반쪽만큼도 자유롭게 연구하는 사상이 없었다. 설령 큰 학자가 그 사이에 나오더라도 그 기염을 두려워하여 감히 새로운 주장을 펴지 못하니, 고작 훈고를 암송하고 찌꺼기를 주워 모으는 데 그쳤을 뿐이었다. 어찌 창의적인 견해로 풀이하고 분석하여 이전에 밝히지 못했던 것을 확충할 수 있었겠는가?
유학은 말할 것도 없고 시문에 이르러서도 또한 그러하였다.
---「59. 당론의 폐해가 시에 미친 영향」중에서

영조 ·정조 연간에 이르러 풍기가 한 차례 변화하니, 유학 이외의 학자들이 얼마간 옛 습속을 깨뜨리고 새로운 견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문장은 연암 박지원에게서 지극해졌고, 과학은 다산 정약용에게서 지극해졌으며, 시는 사가(四家)에게서 지극해졌으니, 예전의 비루함을 벗어던져 새로운 길을 따로 열었다고 말할 만하다. 하지만 그래도 당시의 무리들이 미워하는 바가 되어 혹 쫓겨나서 바닷가에서 죽었고, 혹 실의하여 세상과 만나지 못하였으니, 나라가 쇠망함이 어찌 하루아침, 하루저녁의 일이겠는가.
---「60. 사가(四家)의 호방한 시풍」중에서

헌종과 철종 이후 한말(韓末)에는 운수가 지극히 막혀서 문예 또한 따라서 쇠미하여졌다. 혜환 이용휴가 ‘어찌 세도와 관계됨이 아니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오직 영재(寗齋) 이건창(李建昌)과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이 여기에 구애되지 아니하고 함께 고문(古文)을 창도하니, 마치 장경성(長庚星)이 빛을 드리운 듯 환히 빛났다.

---「80. 한말 시단을 창도한 이건창과 김택영」중에서

출판사 리뷰

저자 이승규의 일생

저자는 어려서 부친에게서 한학을 익혔다. 20대 초반에 상경해 성균관에 입학한 후엔 일제의 국권 침탈을 목도하며 근대 학문과 민족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재학 당시 독립운동가들과 교유했고,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빼앗기자 민족 지도자들과 함께 국권회복운동 전면에 나섰다. 합방 후에는 만주 한국사관학교(신흥무관학교 전신) 설립에 참여했으며, 고향에 돌아온 뒤에는 지역 유지들과 힘을 모아 4년제 소학교인 옥성학교(玉成學校)를 설립했다. 이후에도 여러 방면으로 조국 독립을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1920년 [동아일보]가 창간되자 기자로 입사해 언론 활동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1920년에는 보성학교 교사로 자리를 옮겼고,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 전신) 설립에 참여했다. 1922년에는 휘문학교로 자리를 옮겨 후진 양성과 조선어연구회 및 집필 활동을 활발히 진행했다.

한편 1931년 친일 성향의 조선유림연합회 설립 총회에 총재 자격으로 참여했으며, 1936~1939년 조선총독부 직속 명륜학원 강사를 겸직했다. 1942년과 43년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경학원잡지(經學院雜志)』에 「조선시학고(朝鮮詩學考)」를 잇달아 발표하는 등 그간과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드러난 친일 행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경학원 내 친일 세력과도 오래잖아 결별의 수순을 밟았다.

해방 후에는 전조선문필가대회에 추천 회원으로 참여했으며, 전국유교연맹을 결성하면서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47년부터 6.25 발발 때까지 서울시립농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을 양성하다 귀향했고, 1954년 3월 1일 7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의 저술들

그는 문필가이자 시인으로 신문 지면을 통해 한국 한시의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소개했다. 그의 저술은 다양하고 풍부하다. 먼저 ‘창동시집(滄東詩集)’이란 부제가 달린 『간암만록(艮庵?錄)』에 240제 347수의 자작 한시를 남겼다. 필사본 『계원담총』 뒤에도 『간암만록』이란 같은 제목 아래 30제 41수의 한시가 따로 남아 있다. 시화로는 『계원담총』이 대표작이고, 이밖에 『동양시학원류(東洋詩學源流)』와 『대동시화집성(大東詩話集成)』이 있다. 따로 『계산시화(桂山詩話)』, 『시단금설(詩壇金屑)』, 『일사시화(逸史詩話)』 등의 3종 시화를 신문 연재 형식으로 집필하기도 했다. 보건대 이승규는 무엇보다 특별히 시화 방면에 큰 성과를 남겨 일제 강점기 1930년대 시화사에서 우뚝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교과서로는 『중학한문독본』(박문서관, 1920)을 남겼다. 보성고보 교사 시절인 1920년에 이광종(李光鍾)과 함께 쓴 것으로, 일제 강점기 이후 한문 교과서의 기준이 된 의미 있는 책자다. 그의 산문 중에는 『정다산선생전』과 『이충무공전』이 단연 눈길을 끈다.

『계원담총』, 근대 시화사 끝자락의 정채로운 시론

『계원담총』이란 책의 제목은 한시 문단의 여러 작가와 작품 및 고사를 총합한 이야기 묶음이란 의미다. ‘계원’은 종로구 계동(桂洞)에 있던 저자의 처소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신라 최치원의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의 용례에서 알 수 있듯 문원(文苑), 즉 문단(文壇)의 뜻도 담긴 중의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이제 『계원담총』이 품은 시론의 핵심과 시화집 구성 및 그 내용의 특징을 요약해 짚어본다.

__시관(詩觀)에 대하여

이승규는 시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았다. ‘성정지정(性情之情)’을 얻은 바탕 위에 ‘견사(遣事)’와 ‘속대(屬對)’, ‘추자(錘字)’와 ‘결향(結響)’이 제각기 온당함을 얻어야 함을 주문했다. 즉, 서사는 간결하게, 대구는 온당하게, 글자는 노련하게, 소리는 고상하게 놓여야 비로소 한 편의 시가 혈맥이 살아 움직이고 수미가 갖추어져 생명력을 부여받게 된다. 하지만 근대의 한시들을 보면 서둘러 이루려다가 너무 밋밋해지고, 재주를 부리려다 기교에 빠지고 마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전체 작품의 연결과 구성을 따지지 않고, 한 연(聯)의 공교로움만 다투느라 전편의 완성도를 잃고 마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시관(詩觀)을 통해 자신이 『계원담총』에서 시를 선별한 기준을 비교적 분명히 제시한다.

__평시(評詩)의 기준에 대하여

시를 평하는 데 염두에 두어야 할 다섯 가지 측면도 언급했다. 첫째는 시대별로 풍조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각 시대마다 그 시대 특유의 취향이 있으므로, 현재 취향으로 옛 시를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둘째는 작가별 개성의 차이다. 저마다 장단점이 있고, 색깔이 다르기에 한 가지 기준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 셋째는 각각의 시편이 지어진 정황이 다른 점이다. 그때 그 의경(意境) 속에 놓여보지 않고서 주관적 판단에 따라 멋대로 평가할 수 없다. 넷째는 옛 시의 감춰진 행간을 뒷사람이 헤아리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당시 무언가 뜻이 있어 한 말을 문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쌍방의 감수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다섯째는 취사선택의 기준이 같지 않은 점이다. 이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평가 또한 달라지고 만다.

__조선 후기 및 근대 시단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선

『계원담총』은 전체적으로 일관된 순서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큰 주제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제가 시인의 풍격과 대표작을 시대 순으로 예시하여, 시사(詩史)를 통시적으로 살피려 노력했다. 인용한 매 작품 끝에 단 작가의 촌평은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명확히 짚어내 평자의 균형 잡힌 선시(選詩)와 시평의 안목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계원담총』의 가치는 조선 후기와 근대 및 당대 시단에 대한 충실한 보고를 담고 있는 데서 더욱 빛난다. 이는 이전 시기의 시화들과는 결을 크게 달리하는 부분이다. 아울러 선별한 작가들의 구성으로 보면, 역대 시화에서 다루지 않았던 재야의 시인을 소개하려 애쓴 흔적이 뚜렷하다. 한시의 미학 가치가 퇴조하던 시기에 전통적 미감과 안목으로 펼쳐 보여준 한시사 정리는 그래서 더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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