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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EPUB
eBook 별 헤는 밤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EPUB
교보문고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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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1.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시)
序詩(서시)
自像(자화)상
少年(소년)
눈 오는 地圖(지도)
돌아와 보는 밤
病院(병원)
새로운 길
看板(간판) 없는 거리
太初(태초)의 아츰
또 太初(태초)의 아츰
새벽이 올 때까지
무서운 時間(시간)
十字架(십자가)
바람이 불어
슬픈 族屬(족속)
눈감고 간다
또 다른 故鄕(고향)

별 헤는 밤

2. 拾遺作品(습유작품)
*유학 이전 습유작품
山林(산림)
黃昏(황혼)이 바다가 되여
慰勞(위로)
八福(팔복)
慰勞(위로)
病院(병원)
못 자는 밤
흐르는 거리
肝(간)
懺悔錄(참회록)

*유학 시절 습유작품
힌 그림자
사랑스런 追憶(추억)
흐르는 거리
쉽게 씨워진 詩(시)


3. 窓(창)
*두 번째 원고 노트
黃昏(황혼)
가슴 1
가슴 2
가슴 3
山上(산상)
陽地(양지쪽)
山林(산림)
南(남)쪽 하늘
빨래

가을밤
谷間(곡간)
겨을
黃昏(황혼)이 바다가 되여

할아바지

風景(풍경)
달밤
鬱寂(울적)
寒暖計(한난계)
그 女子(여자)
夜行(야행)

4. 나의 習作期(습작기)의 詩(시) 아닌 詩(시)
*첫 번째 원고 노트
초 한 대
삶과 죽음
래일은 없다
조개껍질
고향집
병아리
오줌쏘개 디도
창구멍
짝수갑
기와장 내외
비둘기
離別(이별)
食券(식권)
牡丹峯(모란봉)에서
黃昏(황혼)
가슴 1
가슴 2
종달새
山上(산상)
거리에서
空想(공상)
이런 날
午後(오후)의 球?(구장)
陽地(양지)쪽
山林(산림)
가슴 3
꿈은 깨여지고
蒼空(창공)
南(남)쪽 하늘
빨래
비ㅅ자루
해ㅅ비
비행긔

谷間(곡간)
아이ㄴ 양
굴뚝
무얼 먹구 사나

참새

편지
버선본

사과


아츰
겨을
호주머니
黃昏(황혼)
거즛뿌리
둘 다
반듸불

할아바지
만돌이

나무

5. 산문
달을 쏘다
별똥 떨어진 데
花園(화원)에 꽃이 핀다
終始(종시)

윤동주 소개
작품 해설
시그림집 참여 화가들

저자 소개 2

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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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건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6년 『세계일보』에 「벽화 속의 고양이 3」을, 2002년 『시평』에 「수락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섬세한 언어와 깊은 사유로 사회역사적인 상상력에 바탕한 서사적 서정성을 길어 올리는 시창작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대산문화재단에 재직하며 고려대, 한양대, 동국대 등에 출강하고 있고 『대산문화』 주간, 『문학나무』 『우리문화』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1967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건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6년 『세계일보』에 「벽화 속의 고양이 3」을, 2002년 『시평』에 「수락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섬세한 언어와 깊은 사유로 사회역사적인 상상력에 바탕한 서사적 서정성을 길어 올리는 시창작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대산문화재단에 재직하며 고려대, 한양대, 동국대 등에 출강하고 있고 『대산문화』 주간, 『문학나무』 『우리문화』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저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편저 『아버지, 그리운 당신』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 『이용악 시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청록집― 청록집 발간 70주년 기념 시그림집』 『이용악 전집』(공편), 『절반의 한국사』(공저) 등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공동시집, 공저, 편저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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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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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UB(DRM) | 18.57MB ?
ISBN13
9791159096297

출판사 리뷰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별 헤는 밤』
윤동주는 시를 쓰기 시작한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줄곧 학생 신분이었고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손꼽힌다. 문학청년 윤동주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작품만 쓰도록 강요하는 군국주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시대와 불화하며 잃어버린 한국어로 시를 썼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직접 실천한 것이다. 그는 이 절대적 양심의 기준을 조정하거나 바꾸지 않고 끝까지 지키려 했다. 여기서 윤동주의 시 전반에 흐르는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비롯되었다. 따라서 그의 삶은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자기성찰의 행위를 지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동주에 대해 우리 문학사는 ‘일제 암흑기의 한국시를 지킨 정신의 횃불이 된 시인’이라고 위치를 매김하고 있다. 또한 그의 시를 읽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성찰하고 실천을 꿈꾸었던 시인’ 또는 ‘자기성찰의 시인’이라고 기억하고 응답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윤동주에게 찾아온 것은 감옥과 혹독한 고문, 그리고 죽음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시대의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로서의 그의 절대적인 의지와 순연한 정신은 살아서 전해지고 있다.

절망 속에서 부끄러움을 고백한 시인, 윤동주
내 이름도, 우리말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에 문학은 사치였다. 그럼에도 윤동주는 절망 속에서 묵묵히 고통을 견디며 계속해서 시를 썼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낸 그의 시에는 식민지 상황에서 시 쓰기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 시가 쉽게 써진다는 부끄러움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어둠을 이겨내겠다는 의지 또한 오롯이 녹아 있다. 비록 윤동주는 시로써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했지만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그가 남긴 시가 단순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시문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빛나는 부끄러움인 것이 그 증거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윤동주의 시를 읽고 그를 기억한다.
항일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광복을 6개월 앞둔 2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펴낸 『별 헤는 밤』에는 그의 자필 시집에 실린 시부터 습유작품, 그리고 원고 노트에 실린 시와 산문까지 모두 실었다. 일제 암흑기의 한국문학에 정신적 등불을 밝혔던 그의 시는 혼란스러운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앞길을 비추는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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