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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 병동의 콜라 도난 사건
빈한승빈전 초인종이 울렸다 디저트 식당 잉어와 잉여 남우 공방 눈, 꽃 피다 추천사_전영태(문학평론가·중앙대 명예교수) 해설_이승하(시인·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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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해진 식빵 사이에 시들시들해진 야채, 유통기한이 코앞인 햄을 끼워 세모형으로 잘라 접시에 놓으면 왠지 뿌듯하다. 재료들은 흔하고 보잘것없지만 겹쳐서 세워두면 샌드위치만의 풍성한 아우라가 감도는 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 우뚝 선 이인삼각을 보는 것 같달까…, --- p.33
꿈과 소망, 공상이나 막연한 계획 등 인물이 생각하지만 현실화하지 않은 모든 것을 우리 인생 행정소에선 허구라 부른다. 이 허구들 역시 폴더에 차곡차곡 저장되는데 파일이 실행될만한 열정과 시간과 행동을 꾸준히 투여해야 현실로 다운로드가 가능해진다. --- p.57 삶에 난입하는 대부분의 일은 시작과 끝을 알려주지 않고 끼어든다. 시작하느냐 마느냐 선택의 문제도 아니다. --- p.59 초인종이 울렸다. 그녀는 몸을 한번 뒤척였을 뿐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가볍고 얕은 아침잠 속으로 다시 미끄러져 들려는 찰나 안방 문이 열렸다. 그녀는 다이빙을 제지당한 선수처럼 불쾌함을 느끼며 무슨 일이냐고 쏘아붙였다. --- p.72 맛을 즐기기 위해 나는 좋아하는 것일수록 아껴 먹는 편이었다. 엄마 말로 하면 김장을 김치찌개 만드는 데만 몽땅 써버리면 한겨울 먹을 김치가 없고 여친 말로 하면 새로 산 옷도 일주일만 매일매일 입고 다니면 다시는 보기도 싫어진다는 말과 같았다. 좋아하는 것일수록 막 먹어서 무감해졌을 때의 서글픔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 p.112 기억을 더듬었다. 깨어있을 때 조차도 잠 속에 있는 것만 같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가에 쌓였던 졸음이 날려 켜켜이 부서지는 것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어딘가 아주 가까운데 꽂혀 있는데 찾지 못하는 책처럼, 그가 누구인지 기억날 듯 말 듯 내 마음을 졸였다. 빛이 비추는 풍경보다 빛이 만드는 잔상을 보는 듯 하던 눈길, 모호한 목소리…… 현시의 일을 떠올리는데 왜 이리도 안간힘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글쎄- 이곳에선 현시의 일이 꿈처럼 여겨지나보지.” --- p.157 나는 헤엄쳐 산조에 담긴 인간을 보았다. 믿을 수 없었다. 진흙바닥에 눈을 비비곤 다시 공기통 속의 인간을 보았다. 낚시모자며 복장, 챙겨 신은 장화까지도 잉어 낚시를 나왔을 때의 나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낚인 건 분명, 나였다. --- p.176 그것까진 이 스마트폰에서 검색이 안돼요. 모든 삶이, 물어서 답을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모든 존재들이 왜 살고 있겠어요? 편히 죽어서 천국에 가 있겠죠. --- p.183 사내는 수백개의 방문을 열어 보았다. 그 안에 있던 것들이 열린 문틈으로 흘러나와 지상으로 흘러들었다. 그것은 향기처럼 투명한 꿀처럼 세상을 적셨으나 세상은 알지 못했다. 간혹 냄새 맡거나 소리 듣거나 피부로 느끼는 사람은 있었다. 그것의 편린이 누군가의 잠결을 스치면 꿈이 됐고 다른 이의 머리칼에 닿으면 영감이 됐으며 두 눈을 뜬 사람의 뇌리를 지나치면 백일몽이 되었다. --- p.264 월계수가 된 다프네 역시 올림포스라는 가상 공간의 요정이 아니라 실재하는 세계의 인간이었을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일어났을 수 있을 법한 일이 왜 신화-환상이라는 형태로만 남아 있는 것일까? 식물학 역사 어디를 뒤져봐도 인간이 식물화됐다는 사례는 없으니 말이다. --- p.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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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풍자로 얽어낸 21세기 앨리스의 래빗홀
우리는 누구나 앨리스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원리와 법칙도 모른 채 지내며 몸이 커지기도 하고, 현실 직시로 작아지기도 한다. 나를 저격하는 카드 여왕의 공격에 쫓기기도 하고 정체불명 고양이의 조력으로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이상한 나라’보다 더 이상한 것은 거울의 소용돌이를 지나는 ‘나’일지 모른다. 그런 ‘나’를 응시하려면 현상의 현미경과 타자를 향한 망원경 뿐 아니라 나의 내면을 살피는 만화경이 겹쳐져야 제대로 된 ‘나’의 지점이 나타난다. 내면의 만화경이란 시공간을 초월한 꿈, 환상, 추억과 소망의 중층 구조를 시각화한 ‘허구’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허구를 통해 보는 ‘나’는 모호하고 신비로우면서 낯설고도 두려운 것이어서 대면을 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이 소설집은 의식과 무의식의 대결, 꿈과 현실의 혼란이 반복되며 숨은그림찾기보다 어려운 진실 찾기의 여로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도망쳐도 자꾸만 꼬리를 밟아 뒤쫓아 오는 꿈에서 잉어를 낚는 건지 잉어에게 낚인 건지 헷갈리는 주객의 전도 〈잉어와 잉여〉, 쓰디쓴 생을 거듭 견뎌낼지 찰나의 달콤함과 맞바꿀지 주저하며 머무는 선택의 지연 〈디저트 식당〉, 무의식의 꽃을 의식 차원에서 피워내고픈 욕망의 반복되는 변주 〈눈, 꽃피다〉는 꿈의 작동 원리이며 독자는 작가가 설계한 허구에 하나씩 빠져들어 가시적 실재에 눈 감고 초현실적 실체에 눈 뜨게 된다. 이 작품집의 소설들이 허망한 일장춘몽으로 그치지 않는 것은 콜라 도둑을 잡아 직장 내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미녀 병동의 콜라 도난 사건〉, 도배 괴담을 통해 냉엄한 현대사회의 관계 지형도를 노출하며 〈초인종이 울렸다〉, 실수로 놓쳐버린 ‘남우’라는 추억을 되찾아 오는 〈남우 공방〉 생생한 현실과 풍자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성의 계단을 착실하게 밟아 몽유의 꼭대기까지 비약하는 이 소설집의 작품 세계는 코지 미스터리부터 서스펜스 드라마, 마술적 사실주의까지 장르적으로 풍성하며 등장인물 또한 조선 시대 나무꾼 〈빈한승빈전〉에서부터 이 시대 쇼호스트 지망생까지 다종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책의 독자는 작가가 총천연색으로 구현한 허구의 전시관에서 즐거이 거닐다 문득 저 앞에서 뒷모습을 보인 채 나를 기다리는, 이상하게 낯설고 이상하게 익숙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태풍의 눈이 고요하듯 허구의 안정된 정적 속에서 꽃과 같이 피어오른 ‘나’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미로의 회전은 멈추고 거울 속 소용돌이는 다른 차원을 잇는 길로 재편된다. 그 때 이 책의 마지막 장은 허구의 전시관 출구가 아니라 독자만의 새로운 여정의 입구, 즉 ‘이상한 나라’에서 ‘더 이상한 나라’로 떠나는 회전문이 될 터이다. 길을 완전히 잃어야 비로소 다른 길을 찾는 것처럼, 꿈에서 헤매본 자만이 더 깊은 차원의 현실과 마주할 수 있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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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입체적 설계와 상상의 총체적 디스플레이
마음껏 꿈꾸고 싶고 엉뚱하게 공상하고 싶다면 『허구의 전시관』을 통해 그런 바람을 충족시켜 보라. 끝없는 상상과 무한한 환상의 자유로운 부유 또한 이 소설집의 탐독을 통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짜릿한 기대감으로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의 단순한 범주를 뛰어넘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에 낯설면서도 어느새 그것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 전영태 (문학평론가, 중앙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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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이후 이만큼 엉뚱하고 재미있는 소설이 나온 적은 없었다. 설혜원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조니 뎁 주연의 『가위손』에 못지않은 블랙코미디를 연출하였다. 전대미문의 질병인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무시무시하지만, 눈에 꽃이 피는 이 희한한 질병은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지 않은가.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종횡무진 발휘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독자는 한편으로는 황당무계함을 느낄 것이고 한편으로는 기상천외한 이야기 전개에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 이승하 (시인, 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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