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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크로스백을 멘 여자아이는 어딘지 모르게 뚱한 얼굴로 가게에 들어왔다.
“복원 좀 맡기려고 하는데요.” 하나로 올려 묶은 다갈색 머리와 로봇 캐릭터가 그려진 운동화,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 키 작은 아이는 많게 봐야 열 살이나 열한 살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제품을 의뢰하러 왔다면서 손에 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거요?” “저희 엄마 아빠를 맡기려구요.” “……뭐라고?” “엄마 아빠요. 정지윤이랑 최준수인데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쳐다봤더니, 여자애는 또 같은 말을 해야 하는 거냐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는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에 봤을 복원소의 간판을 생각했다. 가족복원소. --- 「가족복원소」 중에서 “그럴듯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혹시 다단계 아니죠? 미리 말해두는데, 저는 빚밖에 없으니 데려가도 손해입니다.” “다단계가 사기꾼 같나요? 다단계의 하부 조직원도 시간과 그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심만 충분하다면 부자가 될 수 있어요. 물론 그 시간과 인내심이 충분하지 못해 다단계 조직이 무너지는 게 더 빨라서 문제지만. 천재라던 아인슈타인도 주식 투자에선 실패했거든요.” “그렇다면 웅녀 씨에겐 시간과 인내심이 충분하다는 이야기인가요?” “충분하냐고요? 넘쳐서 감당할 수 없어요.” “넘쳐서 감당할 수 없다고요? 누가 들으면 영생이라도 하는 줄 알겠어요.” “맞아요. 세상에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손에 꼽을걸요?” “아니 그러면 웅녀 씨가 정말 단군신화 속의 웅녀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웅녀가 내게 손가락으로 브이(V) 자를 펴 보이며 웃었다. “넵! 제가 바로 그 단군신화 속에 등장하는 웅녀랍니다.” --- 「사랑의 유통기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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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오늘을 창작하는 작가들의
다채로운 여섯 장르 이야기들 창간호의 처음을 여는 「가족복원소」 는 한 획 차이로 가‘족’복원소가 되어버린 가죽복원소의 해프닝 같은 이야기를 다룬다. 가족을 복원해달라고 당돌하게 가게를 찾은 소녀는 어떤 해답을 들을 수 있을까? 복원하고 싶은 것과 복원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복원하지 않아야만 하는 것들을 작가는 따뜻한 손길로 다정하게 짚어준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글자 그대로 사랑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는지, 상상력으로 밀어붙여 보여준 작품이다. 오천 년 전에 만난 적 있다며 남자를 반가워하는 여자는, 대체 언제적부터 그를 사랑했던 걸까. 소설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사랑’이라는 무형의 무모함과 무목적성을 절감한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다 바쳐 노래한 작은 것들의 이야기, 「작은 것들의 레퀴엠」. 어두운 밤 톡톡 잘려 나간 손톱의 시선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스물두 살 어린 소녀를 만나 확장되고 끝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빨려 들어간다. 「연기수업」은 AI 배우가 등장한 시대에 ‘연기하는 인간’의 가치를 독특한 시선으로 보여준 매력적인 SF 소설이다. 입력된 정보대로 연기하던 AI 배우가 어느 날 연기가 배우고 싶어졌다. AI 배우가 의도치 않게 흘린 눈물은, ‘연기’일까 아니면 ‘오류’일까. 진정한 인간성에 대해 탐색해볼 시간을 줄 것이다. 한 여자는 비몽사몽간에 목격한 장면을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달빛을 등지고 낚싯대에 바늘을 꿰고 있는 사내의 실루엣. 한 여자의 자백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한 걸음씩 그러나 거침없이 희미한 기억의 퍼즐을 모조리 찾아낸다.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드러나는 그 충격적인 실루엣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달빛 속의 악몽」에서 만나본다. 축축하고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검정 비닐봉지. 낯선 사내와 함께 우리 집에 불쑥 쳐들어온 저 검은 봉지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흰 살 생선」 속 작가가 만들어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다 보면 독자는 별안간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기이한 결말을 만난다. 이토록 매력적인 장르소설이라니! 독자들이 매달 기다리게 될 또 하나의 즐거움 ‘이달에 선정되면 다음 달에 출간된다’는 전무후무한 장르소설 공모전 『이달의 장르소설』이 발표되자, 반신반의하는 시선들도 적지 않았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말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번갯불로 구운 콩 맛이 어떤 맛일지 궁금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6월 30일 드디어 공언한 대로 『이달의 장르소설 창간호가 출간되었다. 독자들은 번갯불에 구운 콩 맛을 보듯 일찍이 경험한 적 없는 장르소설의 상찬을 맛보게 되었다. 여기 담긴 여섯 편의 단편소설은 제각각 다른 장르의 토양에서 자란 콩나무들이다.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SF, 호러, 판타지. 이 여섯 장르의 콩나무들이 줄기를 뻗어 잭을 상상도 못 한 놀라운 세계로 유혹했듯 독자를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달의 장르소설』은 매달 만나는 즐거운 모험이자, 한 달에 한 번 점심값으로 책식을 하는 또 다른 식사 한 끼가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 『이달의 장르소설』은 더 많은 작가들과 독자들이 만나는 광장이 되기도 할 것이다. 연말에는 광장에 모인 독자들이 『이달의 장르소설』 중 최애 장르소설을 선정하게 되며, 그렇게 뽑힌 작품들은 『올해의 장르소설』로 출간되어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이달의 장르소설』 창간호에는 「가족복원소」-이필원(드라마), 「사랑의 유통기한」-정진영(판타지), 「작은 것들의 레퀴엠」-범유진(호러), 「연기수업」-표국청(SF), 「달빛 속의 악몽」-설혜원(미스터리), 「흰 살 생선」-박상호(스릴러), 이렇게 여섯 편의 소설이 실렸다. 독자를 위로하는 따뜻한 드라마부터 한여름 밤을 소름 돋게 만들 호러, 상상력의 끝을 보여주는 기발한 판타지 등 여섯 장르, 여섯 작품을 엄선했다. |